바쁨에 쫓겨 아빠가 늙어버렸다.

by 가리영

아빠~ 하고 부를 때마다 아빠는

"아빠 지금 바쁘다"라고 말했다.


아빠~~~ 하고 더 길게 부르면 아빠는 짧게

"바쁘다"라고 다시 말했다.



아빠는 늘 바쁘신 분이었다.


매일 언제 나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8시 반쯤 들어오셔서

9시 뉴스를 보면서 저녁식사를 하셨다.

그리고 다시 잠깐 주무시고

새벽 1시에 차를 끌고 나가

아빠가 받아야 하는

물건이 있는 공장 하 차장 앞에

첫 번째로 차를 대 놓고

밤새 차에서 쭈그려서 주무셨다.


내가 자라온 동네에서 아빠는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아빠를 따라올 수 없었다. 남들이 따라오지도 못할 만큼 빨리 나가 부지런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빠의 셔츠 앞 주머니에는 늘 돈이 두둑하게 한가득 들어있었다.


절대로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아빠의 다짐은

아빠를 쉬지 않고 일하게 만들었다.

남들이 20개를 지게에 짊어지면

아빠는 25개를 짊어지는 사람이었다.

무쇠다리 무쇠팔, 손바닥은 솥뚜껑만큼이나 크다.


돈을 포대에 한가득 담아와 밤새 세지 못하고 잘만큼 벌어온 사람

무릎이 닳아지도록 일을 해온 사람

산 꼭대기라도 지게를 지고 올라가서 배달을 했던 사람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김밥을 먹으며 일했던 사람

배운 게 없고 아는 게 없지만 일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한 사람




그런 아빠가 늙어버렸다.



여전히 덧니를 드러내며 웃는 미소는

어린 시절 내가 봐온 아빠의 웃음인데

얼굴에 주름이 내려앉았다.

열심히 살고 싶은데

몸이 잘 따라오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껏 걷고 싶어도 자꾸 쩔룩거리게 된다며

발을 힘겹게 끌면서 걸어오신다.


바쁘다고 말했던 아빠의 말은

이제는 외롭다

그리고 심심하다로 바뀌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빠의 말속에

몸은 약해졌지만 마음은

쉬지 않고 일했던 시절의 열정이 담겨 있다.

무엇인가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쓸모가 없어진 사람 같아서

슬프다는 아빠의 말


아빠 이제 좀 쉬어~ 천천히 하루를 보내봐

라고 말하지만 멍하니 방에 누워있다 티브이만 보니 바보가 돼버린 거 같다고 말한다.

책을 좀 봐봐요 했더니

눈이 안 보인디야라고 말한다.

산책을 해봐요라고 말하니

무릎이 아픈디야 ~


하루가 무위 하게 지나가는 것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자신 스스로가 이 세상에 이제는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삶이 헛헛하다고 하신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산 거 같은데

남은 게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인정받지 못하는 나이가 돼버려

지금까지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진다고 말하셨다.


이제는 아빠가 묻는다.


딸 뭐 해?라고

아빠의 부름에

아빠 나 바빠라고 말한다.


아빠가 뭐라고 뭐라고 말하려고 하면

아빠 나 지금은 바빠서 이따가요~

라고 말하며 끊는다.


아빠가 바쁘다고 했던

그 나이가 지금 내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엇갈린다.

서로가 찾을 시기에

우리는 바쁨이라는 속도에 쫓기느라

서로를 미처 쳐다보지도

머물지도 못하고 달려간다.


그러다 나 또한 문득 멈춰 서서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가야 할 때

어디를 가야 할지

방향도 목적지몰라서 하루가 외로울 때


그때 아빠를 다시 부르면

아빠는 대답을 해주실까........?


..................


아빠의 전화가 오면

시간을 두고 잠시 멈춰서 들어드려야겠다.




# 바쁨이라는 삶의 속도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첫 번째 아빠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기

두 번째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치기

세 번째 여보~ 나왔어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오늘도 수고했다고 말해주기

네 번째 거울 속 나에게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며 웃어주기

다섯 번째 오늘 하루를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인사하기

여전히 귀여운 우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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