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무너지게 아팠다. 어깨의 통증은 등 그리고 겨드랑이를 타고 가슴 앞까지 아리게 아팠다. 뼈를 갉아내는 듯한 통증이었다. 허리를 타고 내려와 골반까지 뒤틀리면서 아팠다. 종아리까지 내려온 날은 통증이 왼쪽 몸을 타고 내려와 비틀어 짜듯이 내 몸을 괴롭혔다. 몸이 비틀어지는 통증과 함께 한 발 한 발을 디딜 때마다 발 뒤꿈치가 으악--!! 비명이 나오게 아팠다. 아이를 챙기기 위해 집에서 어쩔 수 없이 걸으면서도 너무 아픈 날은 무릎으로 기어 다니고 싶었다. 그러다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가 쪼여들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기도 했다.
아픔을 참으며 겨우 버티며 지내는 내 모습을 큰 아이는 오랜 시간 지켜봐야 했다. 하루는 통증이 돌고 돌다 배가 아파 침대에 잠깐 누워있었다. 아이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에게 부탁이 담긴 말을 했다.
"엄마~ 많이 아파요? 괜찮아요? 엄마~~ 아프지 마요~~ 엄마~ 절대로요~~ 알았죠?"
- 어 엄마 지금 조금 몸이 또 아파. 조금만 누워있다 일어날게.
그렇게 겨우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자려고 누우려고 할 때 큰 아이가 다시 와서 말했다.
" 엄마~ 아프지 마요~~ 진짜로~~! 아프면 안 돼요! 알았죠?"
아이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했다.
- 응.. 엄마도 안 아프고 싶은데 유난히 요즘 아프네.. 그래 안 아프도록 노력할게.
근데 엄마 너무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아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했다.
" 그것도 그런데.. 엄마가 오래 살아야 해요.."
-엄마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해서 아프지 말라고 하는 거야?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효심처럼 느껴져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입술을 다물고 있다 조심히 입을 열어 말했다...
"사실은.. 엄마가 안 아파야 엄마가 루아를 오래 돌볼 수 있잖아요..
나중에 나도 결혼도 하고 그러면 아내도 있고 그리고 자식도 낳을 건데...
나도 내 가족이 생길 건데... 나는 루아를 그러면 그때 잘 돌볼 수 없잖아요...
내 가족이 먼저이지... 그러다 보면 루아를 챙길 수 없을 거 같아요..
엄마 아빠가 아프면 그리고 아무튼... 아프면.....(아이는 그다음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러면... 내가 루아 돌봐야 하잖아요...
나도 내가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데... 루아를 돌보는 것까지는
엄마 아빠처럼 루아를 챙겨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어요..."
아이의 말에는 오랜 고민이 담겨있었고 그 고민이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인생을 위한 솔직한 마음의 말이었다. 아이의 진심은 그랬다. 엄마가 자주 아프고 힘들어하자.. 엄마가 오래 못살고 먼저 떠나면 어쩌지?라는걱정을 했다. 엄마가 떠나고 아빠가 나이가 있어 멀리떠나고 아픈동생이 남겨지면 자신이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10살 아들에게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동생을 키우며 병원에 다니느라 그리고 숨이 넘어가듯이 아픈 날은 잠을 자지 못하고 돌보느라 매일 지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을 자신이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을 것이다. 내가 아픈 아이를 키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쩌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딸아이를 키우며 보내는 시간이 큰 아이에게는 버거워 보이고 힘겨워보였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엄마가 오래 살아야 한다. 아픈 동생을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 살면서 챙겨줘야 한다라는 것이 아이에게는 안정적인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자주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에 큰 아이는 불안해했다.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는 어쩌지?라는 걱정을 미리 할 수밖에 없었다.
미처 내가 챙기지 못한 10살 된 아들의 마음이었다. 어른인 부모도 이겨내기 힘들었던 장애아이의 가족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어쩌다 아들에게까지 짊어지게 만들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도움반엄마에게 이 이야기를하니 나에게 꼭 알아야 할 게 있다며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발달장애, 지적 장애 아이들은 3가지 삶의 목표 방향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스스로 독립을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치료과정을 통해 정상적으로 성장한다. 이 방법은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한다. 어쩌면 기적을 바라는 일 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처럼 발달장애. 지적장애의 경우에는 최대 발달연령이 10살이라고 하니 기본적인 먹고 자고 배출하고 눈을 뜨고 살아가는 정도의 생활은 어쩌면 가능하겠지만 일반적인 성인의 독립적 성장은 어려울 것이다. 아직 엄마라는 말도 하지 못하는 무발화의 언어자애를 가진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 나와 남편이 없으면 이 아이는 8차선 도로 한가운데 놓인 어린아이일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어떻게 치일지 모르는 세상 가운데 아이는 덩그러니 살아갈 것이다.
두 번째는 좋은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것이다. 좋은 보호시설이란 있을까? 아직 그런 곳을 알아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사실 나는 그런 곳이 진짜? 있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여자아이로서 성범죄의 타깃이 되진 않을지 그리고 진짜로 이 아이를 부모처럼 보호해 줄 위탁 보호자가 있을지 아무튼 아직은 상상하고 싶지 않고 고민해보지 않은 부분이다. 되도록이면 남편과 내가 아이가 자라고 나이가 먹을 때까지 돌보면서 부모의 품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편은 우리의 미래의 꿈이나 소망이 어쩌면 둘째 아이의 온전한 삶을 위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 무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이가 성인의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미리 생각하고 교육하고 키워가야 하니 알아보자고 하는 중이다.
세 번째는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건강한 부모로서의 보호자가 있는 아이의 성장이다. 가장 실현가능성이 있고 꼭 실천해야 하는 방법. 아이를 돌보는 나와 남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장애아이와 그리고 큰 아이에게 가장 좋은 삶의 목표 방향인 것이다.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었을 때 큰 아이는 힘들어했고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어린이처럼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아픈 나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큰 아이에게 장애 동생으로 인한 걱정을 짊어주고 싶지 않아 졌다. 나를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인지 알고 효심이라고 오해하던 나의 생각 어딘가를 크게 내리치는 순간이었다. 내가 지키지 못한 건강상태로 아이에게 두려움을 주었구나.
성장하는 동안 앞으로 해내가야 할 버거운 학업과 사춘기에 느낄 인생에 대한 여러 생각에 버거운 고민을 더해준 못난 엄마가 되었다. 아이에게 미안하면서도 그제야 일부러라도 나를 챙겨야 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내가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이 삶의 무게를 아들에게 전해주지 말자. 아이의 인생이 조금 더 가볍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마가 되야지라는 다짐을 갖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건강을 챙겨야 한다. 한 발을 내딛기도 어렵게 살기보다는 씩씩한 발걸음을 걷는 엄마가 돼야 한다. 조금씩 나를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 있을지 둘째 아이의 육아라는 버거움의 틀에서 벗어나 내 몸을 챙겨야 한다는 의지를 갖게 했다. 아픈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온전하게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돌보지 못한 나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챙기며 점점 건강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규칙적인 운동이나 건강식의 식단이 챙기기는 어렵고 의지가 약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건강이 탄탄하고 흔들리지 않는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정을 세우는 삶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쓰고 노력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