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곱하기 아이 <사춘기 소녀>
13.
<사춘기 소녀>
아마도 임신의 호르몬 때문인지 모르지만, 최근의 나는 날씨 흐린 독일이나 스웨덴의 거주민처럼 무표정이 디폴트 모드라는 것을 거울을 보고 깨달았다. 응? 난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좋은 일이나 유쾌한 대화가 있으면 웃지만, 다시 기본 모드로 돌아가면 차분해지다 못해 깊은 우물에 침잠한 기분이다. 원래 예민하고 진지한 성격(내 주변 사람들은 많이들 안 믿겠지만)이 돌아왔을까. 이럴 때는 쓴 음식들을 먹어줘야 하는데 말이지. 빨간 진로 소주, 더블샷 에스프레소, 보드카 오리지널, 드라이진, 쓴 와인, 99프로 카카오. 죄다 못 먹는 것 투성이군.
사실 시니컬한 취향 때문에 사춘기 때 살짝 힘들었었다. 나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내가 화가 난 줄 알고 말을 못 걸었다고 하고, 치과에 자주 가서 의사가 왜 이렇게 이가 상하나 봤더니 내가 엄청 신경이 예민해서 그게 치아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좀 더 무던하고 무딘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나의 심금, 그러니까 마음속에 악기는 잎새에 스치는 바람에도 현이 웅웅 울어대는 아주 예민한 녀석이다. 그래서 영화 보고도 자주 울고, 뮤직비디오나 음악에 취하는 울보였다. 게다가 쓸데없는 기억력이 있어서, 드라마를 보면 인물이나 대사를 몇 년이나 지나도 기가 막히게 머릿속에서 재생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가 섭섭하게 하거나 친구와 다퉜던 순간들이 너무 생생하게 시간이 지나도 드라마 마냥 스쳐서 잊기가 힘들어 뒷북 상처를 받곤 했다. 한참 그럴 때는 정말 살이 하나도 없이 말랐었다. 그래서 좀 더 철이 들고 안정된 마음 상태가 유지가 되는, 나이 먹어감이 참 좋다.
나이 먹고는 점점 덜 그렇고 자잘한 기억력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일은 적어졌는데, 요사이 들어 다시 섬세해져서 다소 고민이다. 신랑과도 별 일 아닌 것으로 서운해서 투닥거리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정말 임신성 호르몬이 나를 사춘기 소녀로 되돌린 것은 아닐는지. 이런 나의 심리 상태 때문에 아가가 조마조마할까 봐 걱정인지라 좀 더 호탕한 대장부처럼 마음을 넓게 갖고자 애써봐야겠다. 이럴 때는 코미디 영화가 정말 내게 큰 힘이 된다. 주성치 영화도 오랜만에 봤는데, 다른 재미있는 영화들이 더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