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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19. 2024

19/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 왜 쥐고 있어? 

세 번째 멜랑꼴리아. 


 최근에 이사를 갔다. 평수를 넓히기 위해 좋은 입지 등 몇몇을 포기하고 짐을 바리바리 싸서 왔다. 이사 직전에 버릴 수 있었던 것들을 이사 직전 당시에는 그러질 못했다. 불가능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포기 못한, 그러니까 어딘가에 매여 있다는 어떤 상태에 있다는 말이다. 짐이 많은 것이 아니다. 짐을 쌓아두고 있는 정신상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유튜브에서 정신과 의사가 말하길, 우울해지면 모든 것을 떠나서 그저 방정리부터 하란다. 사실 그 어떤 처방보다도 명쾌 솔루션 같아서 그 말을 듣고 실천해 본다. 막상 버리려고 하니 버리지 못한다. 추억이 있어서, 언젠가 써야지 싶어서, 예뻐서, 아까워서, 누구 줘야지 하면서 둔다. 어린 시절부터 굽이굽이 극복하지 못하는 나의 자아가 곳곳에 서서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이 짐들을 보면서 알 수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라고 말해도 놀러 온 지인들은 놀란다. 아직, 산더미 같은 책, 산더미 같은 악기와 미술도구들이 차라리 버려달라고 소리 지르는 한쪽 방구석을 봤다면 말이다. 그런데 나의 세 번째 멜랑꼴리아가 올 무렵에는 온 집안을 쓰레기더미로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의 방이었고, 그다음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을 그렇게 했다. 20대 시절에는 하숙을 딱 석 달 한 적이 있었는데, 종종 나의 방에 놀러 온 친구에게 정말이지 충동적으로 '오늘은 방 빼는 마지막 날이니까 놀러 와!' 하고 호기롭게 편의점에서 캔맥이며 과자며 노트북에 볼만한 영화며 신나게 함께 들어갔다. 하숙집 아주머니도 내 친구를 알아서,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평소에 내가 잘 정리 안 하는 것을 알고 있던 친구도 오랜만에 놀러 간 나의 방을 보고 놀랐다. 침대 밑이며 책상 밑이며 본가에서 야금야금 가져온 자잘한 소품, 정리 안 한 책들, 여하튼 그 모든 것이 너무 많이 어질러져 있었다. 그래도 재미있게 놀았고, 나는 바보같이 (같은 게 아니라 바보였다)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 보니, 내 친구가 내 짐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있었다. '너를 부려먹으려고 초대한 것은 아니었는데'라고 멋쩍게 말했지만, 그래도 미안해서 점심을 맛난 것으로 사줬던 기억이 있다. '아니야, 재미있었어. 물건을 종류별로 분류하면 어렵지 않아. 그래도 네가 고생하는 거니까 제발 정리는 미리미리 해.'라고 말해줬던 친구가 지금도 무척 고맙다. 사실 너무 오래전 일이고, 현재는 오히려 너무 뜸해서 서먹한 사이가 되었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나는 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모른다. 그 산더미만 한 짐이 작은 하숙방에서 나왔는데, 그걸 분명히 부모님이 차로 실어다 주셨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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