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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20. 2024

20/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 집 몬스터

 방을 잔뜩 어지럽히고 살았던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엔 집을 통째로 어지럽혔던 기억을 적어본다. 나는 꼬리가 길었다. 문을 닫고 다니지 않았고, 무엇인가 가지고 놀면 그대로 두고 다른 놀이를 했다. 아무리 온 가족의 잔소리를 들어도 정말 심하게 고쳐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각이 없었다. 유령처럼 의식이 돌아다니느라 몸뚱이는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 다니는 형국이었다. 그래도 잔소리가 있어서 무의식적으로는 치웠을 것이다. 그런 기억도 없었겠지만. 그러던 어느 날, 한 달에서 석 달 이상 잠시 타국에서 홀로 일 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러 엄마가 다녀오신다고 했다. 그 무렵 나는 부모님의 집에서 살고 있었고 20대 후반을 향하고 있었다. 직장 때문에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추석연휴에 앞뒤로 휴가를 붙여서 따라가겠노라고만 말하고, 그 전의 몇 달을 나 혼자 집에서 살았던 것이다.

 내 기억에 한 번도 시간 들여 나를 위해 요리한 적이 없다. 아마 밥솥에 밥을 하고 반찬을 꺼내먹다가 차츰 라면을 먹었던 것 같다. 설거지 몰아서 하기는 기본이여, 빨래는 그나마 좋아하는 영역이어서, 세탁기에 넣었다가 말렸다가 하면서 살고 있었다. 밤새 티브이를 봤고, 겨우 일어나 출근을 하고 돌아와서는 또 인터넷을 하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거의 혼자 지냈다. 약속을 잡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동굴이 필요한 겨울곰처럼 집에 있는 생활이 길었다. 그 와중에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나는 짐더미에 매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추석 연휴가 다가올 무렵 나는 호기롭게 가스 밸브를 잠그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다녀왔지만, 정리는 하고 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계신 네팔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와서 시간이 지나서 엄마가 돌아오셨다. 그리고 너무 놀라서 3주 내내 집을 치우시고 며칠을 앓아누우셨다. 내 기억은 엄마에게 약이나 물 심부름, 혹은 식사를 차려드리는 일 정도뿐이다. 지금도 미스터리인 것이, 왜 엄마는 치우는 내내 한마디 하지 않으셨던 것일까? 내내 치우느라 고생했다. 정도만 언급하셨을 뿐, 치우는 도중에도 나랑 같이 하자, 이러지 않으셨다. 사실, 엄마는 네팔에 가기 전부터 나에 대한 걱정이 있으셨다. 가긴 가야 하는데, 나를 두고 가자니 걱정이요, 또 마냥 걱정하기엔 성인이고 알아서 직장도 다니고 (이후에 그만뒀지만) 참 복잡한 심경이셨을 것이다. 아마 내 안에 폐허가 있다는 사실을 집 상태를 보고 아셨으리라. 그래서 치우는 내내 미루고 미룬 말 한마디를 꺼내셨겠지. 상담을 받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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