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영 글쓰는한량 Jun 03. 2018

읽으면 보이는 것들

좀 살아본 언니의 소확행-글 쓰는 한량

하루에 한 권씩 60일 동안 60권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여기서 ‘-본 적’이라는 과거형 표현을 쓴 것은 이제는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루에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한 스케줄은 아니다.

내가 직접 해보니 여러 가지 방법적인 노하우만 있다면 가능하다. 일단 시간을 확보하고 온 신경을 모아 읽기에 몰입하면 된다.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달여간 60권의 책을 읽고
                    내가 일일 일독을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     


일일 일독을 하다 보니 집착이 생겼다. 바로 숫자에 대한 집착이었다. 숫자는 인간에서 묘한 쾌감을 준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앞자리 수가 바뀌는 그 순간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숫자는 모호함을 단숨에 극복하게 해주는 명쾌함을 주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유용한 수단이 된다. 나 역시 숫자의 도움을 받아 글쓰기에 잘 활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 숫자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읽기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공부를 위해서,

누군가는 자기계발을 위해서,

누군가는 시험을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지적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아마 이외에도 여러 가지 책을 읽는 이유가 존재한다. 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미친 듯이 책에 의지했다. 필요에 의해 읽게 되니 읽고 싶은 책도 바로바로 눈에 들어오고, 무엇보다 원하는 주제의 책도 쉽게 찾아졌다.


절실하니 술술 읽혔다.

실연의 슬픔이 온몸을 휘감고 있을 때 세상의 유행가 가사가 온통 내 얘기인 것처럼 책의 사례나 내용이 모두 다 내 얘기인 것만 같았다. 이렇게 몇 권의 책을 단번에 읽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내일은 어떤 책을 읽을까 이런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슈퍼모델 이소라는 사과를 정말 좋아해 사과를 먹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뜬다고 한다. 나 역시 내일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책을 만날까라는 설렘으로 아침을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하루 한 권씩 읽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비슷한 책들을 계속 읽어나갔다.


한참을 읽었더니 책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연속해서 읽으니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가 눈에 들어왔다.

점점 비슷하거나 중복되는 부분의 책 내용은 대충 훑어보았다. 이렇게 읽게 되니 일일 일독이 가능해졌고, 어렵게 느껴졌던 일일 일독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무려 10권의 책을 읽은 나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하루에 두 권의 책을 읽었던 날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 ‘10’이라는 숫자가 주는 포만감과 자랑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일일 일독을 60일 만에 포기했을까?


일일 일독의 오류는 도전 한 달이 지날즈음 점점 올라오기 시작했다. 매일 한 권씩의 책을 한 달가량 읽다 보니 하루하루 권수를 채워나가는 쾌감도 있었지만 반면 매일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한 권을 읽고 다음 책을 고를 때 나도 모르게 다음날 하루에 읽을만한 ‘책을 사냥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내가 이러려고 책을 읽었나,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것 역시 일일 일독의 고비이고, 이것을 잘 견뎌야 한다고 진정한 일일 일독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책 읽기는 권수에 의지하기보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잘 적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일 일독에 숨어있었던 오류에 조금씩 빠지고 있을 즈음 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저는 여느 독서가들과 비교해봤을 때 독서량이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겁니다. 매번 읽은 책들을 메모해놓은데 통계를 내보면 일 년에 읽는 책이 서른 권에서 마흔 권 사이입니다. 한 달에 세 권 정도 읽는 건데 독서량이 많은 건 절대 아니죠. 대신 저는 책을 깊이 읽는 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습니다.(중략) 파도타기를 해보지 않았지만 책 읽기는 파도타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파도타기는 잘하면 아주 재미있지만, 잘못하면 물만 먹고 말 겁니다. 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떤 책은 찍어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은 흘려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은 문맥으로 읽어야 하는데, 그게 안 잡히면 책이 재미없는 겁니다."             


                                           - <책은 도끼다> 박웅현     


광고하는 인문학자로 불리는 박웅현 씨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광고계에서 주목받는 크리에이터이다. 광고판이라는 치열한 영역에서 하루하루 피 말리는 작업, 마감과 싸우지만 책 읽기만큼은 소홀히 하지 않아 그가 쓴 책은 출간되자마자 항상 베스트셀러를 랭크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은 다른 독서가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양의 책을 읽는다고 고백했다. 자신은 많이 읽진 못하지만 깊이 읽는 편이라고 말하며 독서법에 맞춰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따라 다양한 독서법을 적용해 책 읽기를 한다고 했다. 책에 따라 찍어도 읽고, 흘려도 읽고, 문맥에 따라 읽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것이 잡히지 않는 책은 재미가 없는 책이라고 표현했다. 자신만의 천천히 꼽씹는 독서법으로 지금의 창의적인 광고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박웅현 님의 책은 결코 하루에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책 안에 이미 수십 권의 책이 녹아있는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예시로 나온 책들을 함께 읽어가면서 읽어야 한다.


다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다독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다독은 필수 불가결하다. 하지만 이 방법을 계속해서 나가는 것은 권수에 매몰되어 책 읽기의 진정한 맛과 목적을 잃어버릴 위험이 다분히 잠재되어 있다.     


책을 읽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 보니 많은 권수를 읽거나 오랜 기간 독서를 한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많은 권수를 읽는 사람은 분명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 독서인구 증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책을 읽은 것이 대단한 업적으로 찬양받거나 그 방법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일이다. 그들의 독서법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그것으로 일해 독서와 책 읽기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을 잃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조건 많은 책을 읽는 것은, 권수에 의지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다.


책은 읽은 양이 아닌'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가지 독서법들이 유행하고 있다. 독서법만을 다룬 책들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독서인구가 절벽이라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해볼 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시중에 나오고 있는 독서법을 실천하기 전에 내가 왜 책을 읽어야 하고, 무엇 때문에 책 읽기를 하려는지 신중하게 고려해보았으면 한다.  


책 읽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읽기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그 자체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얻은 지식과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좋은 콘텐츠를 재생산해내는 그런 독서를 해야 한다.     


책 읽을 때 절대 권수에 매몰되지 말자.


책의 내용을 곱씹을 시간도 없이, 기계적으로 또 다른 책을 손에 들지 말자. 읽었으면 그것을 곱씹고 이것을 나의 경험과 지식에 어떻게 녹여낼까를 고민하자.          


당신의 책읽기를 응원합니다

글쓰는 한량




이전 03화 진작 쓸 걸 그랬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