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말 한마디
“아빠는 회사 안 다녀?”
저녁식사시간.
밥을 입에 넣은 지후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지수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아빠 아직 눈이 아파서 집에서 쉬는 중이야. 아빠 회사 나가면 좋겠어?”
지후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아빠 아직 눈이 아프구나. 나도 열나면 유치원 쉬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지?"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많이 아파?"
"아프진 않은데, 아직 잘 안 보여."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계속 집에 있는 거야?"
아이의 말에 순간
어딘가 안에서 탁,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식탁을 떠났다.
욕실 문을 닫고, 세면대에 두 손을 짚었다.
계속 집에 있는 사람.
딱히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었다.
아프니까 요양 중이라고 적당히 둘러대도 됐다.
하지만 계속 집에 있냐는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나는 지금, ‘쉬는 중’인가,
아니면 ‘버려진 중’인가.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심지어 내 가족에게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쓸모없어지는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아이를 재우고
나는 조용히 서랍 속 노트를 꺼냈다.
병원에 있을 때 지수가 챙겨준 거였다.
'그냥 아무 말이나 써봐. 가끔은 끄적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어'
그 말이 생각나,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걸 꺼내 들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펜을 들고 날짜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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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2일
“아빠는 계속 집에 있는 거야?"
아무렇지 않게 건넨 지후의 말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아니, 사실 많이 속상했다.
아빠가 된다는 건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만 있는 거냐는 아이의 질문에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잘 모르겠다.
눈이 다친 게 원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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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로 나왔을 때,
조용히 소파에 앉아있던 지수와 눈이 마주쳤다.
나오길 기다렸던 눈치였다.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지후 말에 마음 상했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매일 아빠가 있으니까 좋은가 봐."
지수 옆에 앉았다.
"나도 지후도 그냥 당신이 여기 있어서 좋아."
그 말에,
마음 어딘가에 부드러운 바람이 스쳤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고,
나는 여전히 느리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