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일

by 더 로사 The ROSA

이력서를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 내 이름 석 자가 어색했다.

경력란을 적으려 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일은 정말 내 것이었을까?’

문장을 고치고,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당신, 다시 일하고 싶으면 해. 안 해도 괜찮고.

난 지금 이 상태도 좋아.”

지수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두려웠다.


내가 정말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맞을까?

지금의 나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날 오후, 면접을 보러 갔다.

작은 스타트업 기업이었다.

면접관은 내 이력서를 보고 물었다.

“공백 기간이 꽤 되시네요. 그동안 어떤 걸 하셨나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육아와 회복의 시간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식했다’고 말해야 할까.

어느 말도 당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었죠.”

면접관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잘했어.

다시 나가본 것만으로도,

괜찮았어.”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지만,

오늘은 내가 나에게 해줬다.


집에 도착하니,

지수가 아이와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지수는 나를 보며 물었다.

“어땠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뭐… 떨어졌겠지.

근데 이상하게 기분은 괜찮더라.”


지수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힘내줘서 고마워.”


잠든 가족을 확인한 후 거실로 나와 컴퓨터를 켰다.

이력서를 열었다.

이번에는 빈칸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공백기: 2025년 7월~9월

가족 돌봄과 개인 회복의 시간.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했고,

지속 가능한 일과 가정의 균형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꽉 채워진 경력란을 보며 뿌듯함이 느껴졌다.

keyword
이전 16화15. 내 삶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