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by 더 로사 The ROSA

일요일 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면서 방 안을 부드럽게 감쌌다.


아이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깊이 잠든 지수와

그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커피를 내리며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참 좋다.'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너무 평온한 고요함에

불안과 걱정이 들었을 텐데

요즘의 나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앞도 잘 보이지 않고,

그로 인해 어딘가가 계속 아프고,

가끔은 서럽고, 한심한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점심 무렵, 우리 가족은 공원에 갔다.

공원 한쪽에 있는 놀이터에 아이는 신이 나서 달렸다.

나와 지수는 한쪽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지수에게 물었다.

“요즘 어때?”

지수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아직도 정신없는 하루지 모.

근데… 당신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해.”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엔 혼자 버티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한 공간에 같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지수의 말을 듣는데,

가슴 어딘가의 찌르르한 울림이 느껴졌다.

나는 지수의 손을 꽉 잡았다.

아기같이 작고 보드라웠던 그녀의 손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그동안 혼자 감당해 온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우리는 거실에 앉아 조용히 TV를 보았다.

특별한 이야기도, 특별한 사건도 없는 하루였지만

나는 오늘 하루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완벽한 가장도 남편도 아빠도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조금씩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


문득, 얼마 전 면접이 생각났다.

쉬는 동안 무엇을 했냐는 질문이었다.

‘지속 가능한 삶과 관계를 위해

가족과 일, 나 자신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랬다.

그 대답은 지금의 나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했다.


티브이를 보던 지수가 내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서 살자. 영원히"


나는.

지금,

여기 있는 우리 가족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라는 걸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 엔딩 메시지

누군가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이제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남편이고, 아빠이고, 그리고 김민수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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