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일 전날 밤의 일기
밤이 깊어간다.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고, 기세를 부리던 무더위와 출렁이던 거리의 물결도 잔잔해졌다. 한 시간 후면 특별한 생일을 맞는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생일이다. 60년 전에 태어난 날과 같으면서도 다른 날이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지만, 오늘은 그 숫자가 유독 무겁고 낯설게 느껴진다. 어떤 감정의 조각들이 내 안에 스멀스멀 차오른다.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감정 중 가장 오래 남고 마음에 깊이 각인되는 것을 꼽으라면, 나에게는 ‘슬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는 밝고 경쾌한 음악보다, 깊이 슬픔이 묻어 있는 음악을 좋아한다. 해피엔딩보다는 살짝 어긋난 결말에 가슴이 아픈 영화가 더 큰 여운을 남긴다.
어릴 때 나는 잘 울었다. 한 번 눈물이 나면, 봇물 터지듯 계속해서 울었다. 하굣길에서 친구와 헤어질 때도 눈물이 날 것 같았고, 학년이 올라가거나 졸업할 때도 슬픔은 어김없이 날 찾아왔다. 미국으로 떠날 때 찍은 공항 사진을 보면, 눈이 퉁퉁 부어 있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대학교 친구는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때 내가 특별히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달콤한 슬픔을 친구처럼 곁에 두고 즐겼는지도 모른다.
사소한 이별 앞에서는 쉽게 슬픔에 빠졌던 내가, 큰 이별 앞에서는 담담하려고 노력했다. 미국에 간 지 4년 만에 건강하던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마음먹고 나서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영원히 곁에 있을 것 같았던 후배와의 작별도 그랬다. 그들이 떠난 후에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심했는지 깨달았다. 마음이 칼에 베인 듯 쓰렸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별을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나는 스칼렛 오하라처럼 슬픔을 내일로 미루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일 카드 한 장 쓰기도 어려웠고, 일기도 써본 적 없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 안에 얽혀 있던 여러 감정, 그중에서도 꾹꾹 눌러 담아왔던 ‘슬픔’을 떠나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와의 이별을 적으며 처음에는 눈물 때문에 글을 쓰기 힘들었다. 하지만 글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아픈 기억과 슬픔이 글 속으로 옮겨져 그 안에서 점점 작아졌다.
글쓰기는 나를 변화시켰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용기가 생겼다. 후회와 상처를 글로 추억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자정이 지났다. 내 인생의 봄과 여름도 지났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 맞이하는 스물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60이라는 숫자가 너그럽고 우아하게 느껴진다. 혼자 놀기 좋아하고 숫기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글을 쓰면서부터 변화를 느낀다.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렀던 슬픔의 근원을 찾아가고 있다. 서른, 마흔, 쉰을 넘어 예순에 이르는 동안, 사람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중심에서 비켜 앉아도, 미루어 두었던 꿈을 향해 열정을 쏟아부어도 예순은 괜찮은 나이다. 아직 달콤한 슬픔이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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