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내다
그를 보내기로 했다. 아쉬울 때 떠나보내기로 했다. 아무 말 없이 떠날 채비를 하는 그를 보니 마음이 먹먹해지며 같이 보낸 십 년의 세월이 꿈결처럼 아스라이 스쳐 지나간다.
십 년 전 늦여름, 우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처음 만났다. 아침마다 눈부신 햇살이 창밖으로 쏟아졌다. 사월까지 눈발이 흩날리던 미시간의 추운 겨울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새로운 땅에서의 모든 순간이 미지의 세계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적당히 편안하게 살아온 내게, 미시간에서의 유학 시절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모든 욕망을 잠시 접어두고, 오직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에어컨도 없는 빨간 벽돌 기숙사는 마치 오래된 포로수용소 같았다. 여름이면 너무 더워 시원한 곳으로 피신해야 했고, 겨울은 황량하고 길었다. 낡은 차에 시동을 걸고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느라 발을 동동 굴렀고, 얼어붙은 철 계단은 미끄러워 난간을 잡고 조심스럽게 오르내렸다. 윤기 없이 푸석한 얼굴, 제멋대로 자란 머리카락, 헐렁한 티셔츠 아래 숨겨진 십 킬로는 더 늘었을 듯한 몸매…. 거울 속 나는 타이트스커트와 하이힐을 즐겨 신던 나와는 전혀 달랐다.
안식년을 맞아 일 년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게 되었다. 집을 구하는 과정은 마치 현실과 이상이 부딪히는 무대와 같았다. 힘겨웠던 미국 생활에 대한 작은 보상을 바랐던 걸까. 비용을 절약하자는 남편과,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내 바람이 맞섰다. 결국 내 의견이 받아들여졌고, 나는 마침내 꿈꾸던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흰 벽면과 큰 유리창, 아기자기한 꽃들이 있는 작은 정원이 있어, 미국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기를 꿈꾸게 만드는 예쁜 집이었다. 냉장고, 가스레인지, 세탁기 등은 모두 빌트인으로 갖춰져 있었지만, 식탁과 소파 같은 가구는 없었다. 첫 한두 달 동안은 근처의 가구 전문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곳은 완전 신세계였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은은한 커피 향이 스며든 미국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고, 넓은 전시 공간에는 처음 보는 개성 있는 가구들이 세련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오랜 시간 머물렀던 그곳은 나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은은한 빛을 발하며 나를 사로잡은 그의 존재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우리는 자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그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세월이 흘러도 그와 함께한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구릿빛 피부와 탄탄한 몸매를 가진 그가 집에 오자 집안에 생기가 돌고 안정감이 감돌았다. 그때부터 그는 삶의 동반자가 되어 묵묵히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의 곁에 서 음식을 만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바쁘게 달려온 일상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새로운 공간과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가 새롭고 설레었다.
꿈같은 일 년이 지나가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는 나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왔다. 집에 온 사람들이 흘끗흘끗 그를 보며 한 마디씩 던지곤 했다.
“어디서 이런 멋진 식탁을 구하셨나요?”
묵직하고 너른 원목 상판, 그 아래를 떠받치는 정교하고 튼튼한 다리는 한눈에 봐도 작품 같았다. 장인의 손길이 수없이 닿았을 것 같은 나무의 결과 은은한 향기는, 마치 담쟁이넝쿨이 우거진 오래된 대학 도서관이나 숲 속 통나무집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다. 나도 그도 나이를 먹었다. 한때 빛나던 그의 피부는 이제 거칠어지고, 상처와 주름이 깊게 새겨졌다.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카락을 감추고 싶듯이, 그의 상처도 가리고 싶었다. 현대적인 가구와 가전제품으로 채워진 아파트에서, 그는 어색하게 도드라졌고, 사람들은 그를 두고 수군거렸다.
“너무 크고 무겁지 않아? 요즘은 작고 가벼운 게 대세야.”
그를 보내기를 망설이며 갈등하는 내게, 누군가의 말이 그럴듯하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거야’. 그렇게 나는 십년지기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용달차가 도착하고 두 사람이 들어와 그를 싸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천으로 먼저 감싼 뒤, 테이프로 몸통을 조심스럽게 감는 그 장면이 마치 장례식처럼 숙연했다.
“어디로 가나요?”
“한남동 카페로요.”
중후한 연륜을 품고 더 멋지게 빛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햇살 좋은 날, 한남동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친다면, 우리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눌 것이다.
용달차의 뒷모습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서서히 사라져 간다. 그와 함께한 젊은 날의 추억도 기억 저편으로 스러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