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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by 로사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 걸어가고 있는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잠바를 손에 들고 책가방을 맨 채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엄마 미소를 띠며 지켜보았다. 그 때 아이가 우뚝 멈춰 서더니, 잠바를 흙길에 주저 없이 내려놓았다. 정말 예쁜 잠바인데 망가지면 어쩌나. 괜히 내가 더 걱정이 되었다. 아이는 잠시 멈춰선 채 책가방을 다시 고쳐 메고 잠바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어갔다. 나는 한참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 모습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내려놓음’이었다. 내 눈에는 손에 든 잠바가 너무 소중해보였지만, 그 아이에게는 책가방을 고쳐 메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혹은 모르는 채로 양쪽 손 다 가득히 들고 있으려 했던 미련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둘 다 잃고 나서야 후회하곤 했다.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라고 한다. 언어치료 일을 하며 매일 그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순수함’이라는 단어만으로 아이들을 정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단순하게,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때로는 현자의 백 마디 말을 능가하기도 한다. 지인에게 이 깨달음을 전하면서, 내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건강, 돈, 명예, 커리어, 어느 것 하나 내려놓으려 하지 않던 고집스런 ‘나’를 먼저 내려놓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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