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 이후,
늘 그렇듯 계기는 같았다. 수요의 변동성에 의한 공급의 과잉, 거래 가격 하락. 봉지에 담긴 바지락은 할인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 깨진 곳도 없고, 선도도 좋았다.
순두부, 봉골레, 바지락 해장라면!
더 생각 할 것 없이 바구니에 담았다. 기분 좋다! 반값에 신선한 바지락! 마늘과, 양파도 샀다. 발걸음이 가볍다. 일단은, 점심에 해 놓은 불고기를 먹어야 하니, 사온 식품들은 아담한 냉장고에 차곡히 넣었다.
공간이 조금 부족해, 문을 열면 불빛이 나오는 근처에 바지락을 넣었었나 보다. 탄산수는 냉장고 문에, 양파는 야채칸에 넣었다. 마늘을, 젠가하듯 된장통 위에 쌓고나서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바지락의 위치 같은건.
피곤해 일찍 잠든날의 새벽, 비척비척 물을 찾던 나는 전날의 탄산수가 떠올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 슥, 무언가 움직이는 감각이 눈에 잡혔다. !! 순간 놀란다. 냉장고에 바퀴벌레류의 벌레가 들어갔었던 경험이 되살아 났다. 꼭 그럴 필요까진 없었지만, 대다수의 미포장 식품을 버렸던 기억. 냉장고를 구석 구석 살폈지만, 이상은 없었다. 괜히 모든 야채들을 하나씩 건드려 보았지만 움직임이 없다. 이상하지만...., 목마르다.
산책을 마치고 나서, 아침 준비를 했다. 정신이 그제야 청명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새벽의 감각 경고를 따르는 내 눈에, 바지락의 움직임이 보였다.
바지락은 어떻게 빛이 비춘다는 것을 알아 챈 걸까?
알 수 없었지만, 냉장고의 노란 빛을 받은 바지락이 천천히, 너무 느리지는 않게 자신의 촉수를 껍질 속으로 넣고 있었다. 몇은 이미 촉수를 넣었고, 몇은 아직 천천히 움츠리고 있었다. 비지락은 어둠속에서 촉수를 뻗고 숨쉬고 있었나보다.
뻘인듯 편안하게.
냉장고 문을 열때마다, 호다닥, 호다다닥. 귀여웠다.
아! 귀여웠다.
아침 메뉴로 차마 봉골레를 만들 수 없었다. 단백질이 부족한 야채볶음을 해먹었다. 그래도 바지락을 살려야겠다는 마음까지는 아니었다. 바지락을 차마 튀겨버리지 못한 토요일 오후, 약속장소인 부천으로 향하며 어떤 계기 때문이었는지, 바지락의 촉수가 뿅 뾰옹 생각났다. 젖은 흙 사이로 새 싹들이 돋아나듯, 산호초 사이로 말미잘 촉수 같은 것들이 통 통 튀어 나오듯. 좁은 봉지 안에서 일제히 촉수를 뻗고 숨을 쉬던 모습은 참 귀여웠지. 란 생각이 그들을, 죽이는건 잔혹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에 닿았다.
허나, 흔들리는 전철에서 나는 핑계를 찾고 있었다. Circle of life*라고, 인간은 원래 육식과 채식을 하는 동물이고, 채식을 한다고 해서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불합리 하더라도 이건 자연의 흘러가는 방식일 뿐. 살릴 방법은 없는 거라고, 그들을 살릴 방법은 없다고. 이미 되 돌이킬 방법이 없는 일이라 되뇌이는 내게 전철은 친절히 안내해줬다.
"이 기차는 동인천, 동인천행 급행 열차입니다."
개봉은 환승역이고, 손님들은 알아야 하니까, 그들의 목적지를. 그리고 나도 알아야 했나보다. 1호선은 바다에 닿는다는 것을. 생각이 닿은 순간, 귀엽게 뻗어 올려진 촉수가 양심에 닿았다. "아... 나는 핑계를 찾고 있었구나."
방법이 있으니, 필연이 아니다. 습관적인 귀찮음이 끝끝내 엉겨붙었다. 그래도 내일, 오늘은 이미 출발 했으니, 내일. 생명에 대한 긴 생각의 피로함과 인천까지 가야 하는 여정의 피로함 내일로 미뤘다.
약속에 갔다가, 돌아갔다. 늦은 밤 그들은 조금 둔해져 있었다. 아... 생명력을 다해 가는 걸까?, 나쁜 맘이 퍼졌다. 그래도, 내일, 아마 괜찮을거야.
느지막한 일요일 오전 아침. 냉장고 안의 작은 활기는 이미 사그라 들어있었다. 촉수들은 거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몇 몇은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2시간여 되는 여정을 견딜 수 있을까? 아마 힘들겠지. 사체를 유기하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렸어야 했다.
피식자에 대한 포식자의 마음은 이다지도 잔인한건가?... 나의 문제인가?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이라며 쉽게 체념했고, 쉽게 팬을 꺼내들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당겼다.
어차피!와 귀찮음, 개수에 대한 효용성 판단, 바지락 값보다 큰 교통비. 목숨 자체보다 클 수 없는 생각들, 어디에서 나는 안심하고 잔인해 진걸까. 수이도 작은 양심을 뭉개 버렸다.
주제에 미안해 제대로 해감도 하지 못했다. 잔인함이 한도초과라, 레시피처럼 달그락 거리며 박박 문질러 씻을 수 없었다. 대충 헹구고 급하게 물만 버리고 팬에 던져 넣었다. 시간이 만드는 공백이 무거웠다. 무서웠다.
한 두 개 말끔하던 껍질이 깨져 있었다. 너무 급했다. 만들어진 봉골레에선 모레가 씹혔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간간히, 모레가 씹혔다. 잘게 깨져버린 껍데기도 씹혔다. 내가 급하게 던져 버린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이건 너무 사소해 기록될 필요 없는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귀여운 생명체들의 생명을 산채로 기름에 튀기고 끓는 물에 쳐넣었다. 포식자는 피식자에 대해 원래 이다지도 무감한 것인가? 무감각해도 되는가?
어미사자는 고아가 되어버린 가젤을 왜 보호 했던 것일까? 감동적인 짧은 영상 이후 언젠가, 어린 가젤은 도시락처럼 먹혀버리고 만걸까?
바지락은 귀엽다.
그래서 더 가엽다. 하지만 난 그런 바지락을 튀겼다. 때론 삶고,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라며 팬을 예열하며 더 높은 온도에서 튀겨댔다.
살아 있는 바지락을 사오는 건, 이제 그만 두기로 했다. 먹는 것까지를 그만두지는 않겠지만 그러기로 했다. 위선이더라도.
바지락 선지자는 이미 알았던 걸까. 물을 쏘고 사라져간 바지락의 껍데기 무늬는 어떤 모양이었지?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을 더듬었다.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 .
"인식과 인지는 존재를 압도하지 못한다."
* 애니메이션(뮤지컬) 라이온 킹의 주제곡중 하나. 다른 가사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은 없었지만(안들렸지만) 자연의 대순환 느낌을 잘 설명하는 단어인것 같아 좋아한다.
Suvo Adhikary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0763525/
연작으로 작성한 글인데, 몇 년 째 마무리는 짓지 못하고 있네요.
참고로 글의 초안을 작성한 22년 6월 이래로 3년간, 생 바지락을 사지 않고 있습니다. 먹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1. 바지락과
https://brunch.co.kr/@rosedaystory/1
2. 행복과 평화
https://brunch.co.kr/@rosedaystory/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