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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line Dec 15. 2023

퇴사 후 창업 준비를 시작하다

출근이 기다려지는 삶

회사를 관두고 한 달이 되던 날.


퇴사를 꿈꾸며 적었던 버킷리스트에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만 보기'가 있었다.


동작구 김영삼도서관에 가 책들을 구경했다.


건물은 큰데 마음에 드는 책이 없어 읽을 게 없었다.


그렇게 손으로 아무 생각 없이 책등을 훑다가, '돈과 시간의 자유를 위한 책'을 발견하고 뽑아들었다.


린 스타트업, 제로 투 원 같은 스타트업 필독서는 아니었다. 

작가 본인의 컨설팅 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창업 책이었다.


그럼에도 책에 나오는 사업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들을 읽으니 두근거렸다.


고등학교 때 꿨던 사업가의 꿈, 대학생 때 창업하겠다며 개발을 배웠던 때를 떠올렸다.


대학생 때 친구와 팀플을 하던 도중이었다.


지각을 자주하던 친구와 택시 값이 비싸다던 얘기를 하다가 합승을 하면 어떨까 얘기가 나왔다.

밤 늦게 잠은 오지 않고 그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랐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왠지 될 것 같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친구와 창업동아리를 하면서 사업계획서도 쓰고, 창업경진대회도 나가고, 설문조사도 했다.

개발 수준이 그냥 개의 발 수준이었던 나는 컴퓨터 공학 선배한테 코딩을 배워보기도 했다.


창업은 내가 항상 도전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성격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재밌었다.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 나간다는 게, 두근거리고 설레이고 기대가 됐다.


결국 그 창업동아리는 친구와의 불화로 막을 내렸지만 말이다.

나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정파가 안맞아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이명박 대통령이랑 생일이 같고,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랑 생일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 둘이 같이 창업을 했다고 생각해보라 (출처: 뉴시스)



아무튼 옛 추억에 젖었다가 현실을 직시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스스로에게 물었다.


퇴사한 지 한달 째였고, 이직을 할지 말지 고민이었다.


이직한 나를 상상해 보았다.


'출근이 기다려지지 않는 날들이 반복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그저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하고 시간만 축내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대학교 때부터 '수처작주'가 내 좌우명이었는데, 그러나 전 회사에서는 나는 예전과 같은 열정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일에 전념하지 않는 내가 싫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싫증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이유는 한 두가지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회사에서 돈 받고 일한다면 그런 건 다 감내해야 한다.


싫증이 난다고 일을 안할 수 있나? 아니다.

회사에서 원하는 일만 하나? 아니다.

동기부여가 안된다고 일을 안할 수 있나? 아니다.


혹시라도 내 회사면 그래도 열심히, 재밌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출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떤 큰 비전이 있다거나 대박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뭐라도 하고 싶었다.


창업 준비를 시작한 지 한달 째.

어떻게 되었을까?


첫 1~2주는 대학생 때 택시 합승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그날처럼 가슴이 뛰어서 잠도 자지 못했다.

빨리 실행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전 회사에 다닐 때 3개월 동안 모든 걸 쏟아붓고 번아웃이 왔던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끝이 없는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웃긴 것이, 몇주가 지나니 금방 적응이 되어 두근거림도 잦아들었다.

긴장감이 사라지니 나태와 게으름이 다시 일상 틈틈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팀원을 구하기도 했다.


이런 팀 상상함 ㅎ. (사진: 드라마 '소셜네트워크' )


그러나 열정 레벨이 맞지 않거나 혹은 동상이몽을 하고 있는 팀원과 함께 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팀원은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싶었는데 나는 함께 할 코파운더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팀원은 나갔고, 나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렇다고 혼자 하는 개발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첫 회사에서는 월급은 많지 않았어도 일하는 게 즐거웠다. 출근하는 게 기다려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나 혼자하는 창업이 망하면 스타트업에 다시 들어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그때를 반추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것 같다.


이제 막 성장해나가는 그런 서비스였다.

다른 한 서비스는 아예 제로 베이스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웃을 때도 슬랙으로 웃으라고 하는 이상한 회사였지만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좋았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에너지가 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지금은 애써 같이 할 사람을 찾고 있지는 않지만, 네트워킹을 하거나 지인의 지인을 통해 나와 맞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면 함께 즐겁게 일하고 싶다.


발품도 팔아보고 이것저것 새로운 것도 시도해보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면서 말이다.






막상 시작해보니 딱히 출근이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회사도 그냥 다니듯이 창업도 그냥 하는 것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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