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의 후예

프롤로고(prólogo)

by 모든 한국학

시가 나를 찾아왔다.

-『시』,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ㅣ스페인 사람이자 마드리드에서 온 루이스ㅣ


토요일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임애서 2003년 12월, 나는 두 번째 외국인 학생을 만났다. 뉴요커라는 멀더가 손전화는 거의 없고 인터넷이 잘 안되는 데 세상의 중심이라던 뉴욕으로 돌아가고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여운이 그때까지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듯, 이 외국인은 붉은 악마 응원단복이 연상되는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한국인 친구와 함께 토요일 한국어 수업을 신청하러 왔을 때 내가 거기 있었다. 처음 레벨테스트 같은 인텨뷰를 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왔다는 루이스는 한국말을 이미 잘했다. 나의 말을 듣고 대답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한국말로 '언제'가 무슨 뜻인지를 한참 생각하던 첫 번째 학생과는 이미 다른 차원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모 대학 어학당에서 중급 과정을 밟고 있단다. 대화에 막힘이 없을 정도로 이미 공부가 돼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나는 속으로 '스페인에서 온 사람이라니'를 계속 중얼대고 있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스페인의 이미지는 단편적이다. 1년 전에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축구경기에서의 심판과 선수들, 아니면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마드리드' 도시의 이미지, 거의 미지와의 조우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미지의 스페인 사람은 이미 독학으로 한국어를 중급까지 구사하고 있었는데, 어학 카페의 한국어 수업을 찾은 이유는 한국어 대화 연습이 필요해서란다. (아 그렇군요.) 첫 대면이 그가 입고 있던 붉은 자켓 만큼이나 강렬했다. 갓 초급 단계를 벗어난 멀더하고 정확하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던 나로서는 유창한 루이스의 한국말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한국어를 공부한 것일까가 궁금해졌다.


돈 키호테(Don Quijote)를 아냐고 묻는다.


나는 루이스의 전화 번호를 받고 이메일 주소도 알려달라고 했다. 그가 이메일 주소를 불러 주는데... 산초_키호테란다. (Sancho-Quijote) '산초 키호테' 라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한 두 단어의 이상한 조합은 무엇인가...' 키호테라는 철자를 받아 적을 때 약간 헤맸다. Q는 왜 소문자로 q로 쓰게 되었나? 다른 글자들은 소문자나 대문자나 비슷한데! 게다가 영어 철자만이 유일한 외국어 알파벳으로 강박을 가진 나로서는 키호테의 '호'발음은 'ho' 여야 맞는데 'jo'라고? 순간 적응이 안 된 탓이다. 유럽에서는 <j> 발음이 <ㅇ>에 가깝다. 나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쳤으나 밖으로 내뱉지는 않으며, 여러 번 철자를 확인하고 수정하다 보니 그제야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지 떠올랐다. 내가 "『돈 키호테』의 '키호테'도 철자가 이러냐"고 물었다. 루이스는 갑자기 예전 지인을 만난 사람처럼 표정이 환해지더니 "네!" 이러면서 아까보다 더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돈 키호테(Don Quijote)를 아세요? 라고 묻는다.


돈 키호테를 아냐고?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소설 제목이라면 안다. '그 이름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거예요'라고 내가 대답했다. 세르반데스의 돈 키호테_ 어느 말이 제목인지 작가 이름인지 구별이 안 되는 나이에 필수로 읽은 청소년 판 돈키호테. 『동키호테』에서 『돈키호테』로 어느 사이 『돈 키호테』로 바뀌어왔다. 그 작품 제목의 변천사를 누가 연구한다면 또 한 사회의 변화가 보일 수도 있겠다. 나보다 윗 세대는 지금도 주인공 이름이 '동키호테'로 네 글자가 이름이라고 알고 계신다. 나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중남미 문학 작품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다, 학교 교과 문학에서 일정 부분 세계 문학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어서 제목의 변천사, 오류를 수정할 기회가 있었다. 돈 키호테의 돈(Don)은 신분을 나타내는 말, 더군다나 주인공의 본명도 아니고 별명이다.

무엇인가 더 얘기를 이어가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첫 장만 읽고 책을 덮은 기억뿐이었지만, 그래도 한 장이라도 읽은 덕분에 '산초가 돈 키호테의 부하인 것은 안다' 하니 루이스는 더 크게 웃었다. 내가 '이메일 주소가 (문학 작품의 등장인물로 삼은 것이) 매우 재미있다'라고 하니, 내 말은 아랑곳없이 루이스는 신이 난 듯 질문을 이어간다. "그러면 키호테 경이 타고 다니던 말 이름도 알고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경'이라는 말까지 안다면...이런 생각과 아니 내가 (그 졸리는 소설의) 말이름까지 기억할리가 없잖아요? 이런 표정으로 나의 답을 기다리는 그를 보니 희한하게 한 단어가 떠오른다. '로... 어쩌고인가?' 라고 하니 '로시난데' 란다.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달려드는 말을 탄 돈 키호테와 그 옆에 같이 있는 망토같은 것을 걸친 부하 산초. 그게 아마 내가 가진 돈 키호테의 이미지다.

그는 나를 보고 스페인을 많이 안다고 한다. 소설 주인공 이름을 기억한다고 스페인을 아는 것은 아니지 않냐. (외국인이 춘향이와 방자와 이 도령을 안다고 해서 한국을 다 아는 것은 아니듯이...)라고 당시 나의 까칠함으로 대구를 하니... 이 외국인 또 그게 그렇게 반가운 반응인 듯 뭔가 계속 대화를 이어갈 태세였다. '돈 키호테가 사랑했던 여자 이름은요...' 그쯤에서 나는 못 들은 척하고 티 나지 않게 그의 말을 덮었다. '담당이 정해질 때까지 2주 정도 시간이 걸리니 그때쯤 여기로 다시 오시면 된다'라고 대화를 중단시켰다. 미지의 땅에서 날아온 루이스와의 첫 퍼즐 맞추기를 끝냈다. 문학 작품 제목도 아니고 등장인물 맞추기라니...그는 대화가 끊어져서 아쉬운 듯 하였으나 다행히 그쯤에서 돌아섰다.

나는 이 만남이 꽤나 흥미로웠다. 그가 써놓은 이메일 주소를 다시 보며, 내가 나의 이메일 주소를 'bangja_leemongryong 방자 이몽룡'이라고 이름지을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마드리드에서 온 루이스는 자신의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세르반데스에 대한 존경이 대단하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처음 만나는 외국인에게 신변 잡기를 물어보지 않는 편이라, 그가 문학을 전공하였을까? 하고 상상해 볼 뿐이었다.





*프롤로고(prólogo): 서문, 들어가는 말, 시작하는 말

*커버: 스페인, 라 만차 (La Mancha), 본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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