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관계는 신비 중의 신비로운 영역이다

by 리나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자 그는 내게 소설책을 추천했었다.

‘나스타샤’라는 책인데 유명 철학과 교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낸 자전적 연애소설이다.

지금의 나이에 연애소설의 감정선을 탐닉한다는 건 그만큼 그가 순수하다는 뜻일까? 외롭다는 뜻일까?


나는 사실 연애소설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너무나 남녀관계가 피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문학적 맥락은 이해하겠지만 그것을 이상화할만큼 순진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리는 나의 연애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늘 가던 교보문고 서점이었지만 한국소설 코너는 둘러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G섹션에서 나스타샤를 찾아들고 늘 그렇듯 중간의 아무 페이지나 과감히 열어본다.


‘ 남녀관계는 신비 중의 신비로운 영역이다.’


한 문장을 발견하자마자 나의 뇌에서는 이야기가 비로소 소설로 탄생하고 있었다.

나는 책 읽기를 바로 중단하고 그 이야기를 놓칠세라 서슴없이 뇌가 시키는대로 문장을 받아적는다.


남녀관계는 가장 신비로운 영역이다.

나는 한 번도 여자로부터 개인적인 만남을 먼저 제안받은 적이 없었다.

고작해야 비지니스적인 관계로 의례적인 식사를 한 것 정도가 전부였다.

도대체 그녀는 나에게 무슨 의도로 어떤 생각으로 접근을 하는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로 그녀는 책과 영화를 빌미로 들었으나 나는 모종의 시험일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미쟝센이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은 메타포가 될 것 이었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엔트로피의 증가를 반대로 돌리는 테넷의 인버전 처럼 그녀의 심리구조는 알 수 없는 코드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함수 값을 찾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한다.


그녀의 첫인상은 다소 예민한 듯 날카로웠다.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듯 하나 하나의 단어에 스스로 정한 의미를 부여하여 설명하였다.

정제되지 않은 직설적 표현법은 은유를 거부하고 직관을 뛰어넘었다. 거침없는 지식의 향연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도 그녀의 신상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다.

만남 전에 가졌던 의문은 만나고 나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고 서로의 의중은 비밀의 문에 굳게 닫혀있었다.


긴장 속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시험이 끝난 것 같은데 결과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성적표 같은 답변이 날라왔다. 아니 답변이 아니라 그녀는 질문을 한다.

내 생각을 묻는다.


질문이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상대에게 신뢰를 표현하는 형식이 된다.

나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 어느 정도는 합격인 것 같다.

다시 용기내어 나는 전화를 하고 나 또한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로 한다. 그녀는 내 질문을 다 듣기도 전에 답변을 성실하게 자기 나름의 친절로 이야기해준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거침이 없고 의견을 주저하지 않는다.

후로도 대화는 가끔씩 이어졌으나 아직은 느리고 답답한 그런 수준이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분위기는 무언가 몽환적이고 미스테리한 것이 있다.

직설적인 화법과 달리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서사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다.

언어의 일차적 정의를 넘어서는 다중의 함축적 구조를 나는 알아내야 했다.


단어란 개념적인 추론, 형이상학적 접근이지만 몸짓은 실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형이하학적 경험이다.

불편한 소통과 달리 나는 감각의 충수를 통해 더 많은 몸짓을 관찰하고 해석하였다.

무심코 그녀는 돌연 나의 손을 잡는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의 도발은 강한 자성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빙하의 퇴적층에 굳게 잠들어 있던 나의 화학적 페로몬을 방출하였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그녀를 느낀다.

와인에 술취한 것인지 입술에 도취한 것인지 알 지 모를 농염한 아로마는 깊은 바디감과 함께 혀를 보라색 핏빛으로 물들였다.

마치 포도주를 뿌리는 성전 미사처럼 신성한 의식은 계속되고 나는 이제 그녀를 성녀로 추앙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