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일에 그를 처음 만났다. 첫만남은 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너와 대화해보고 싶다고 나는 개톡을 보냈었다. 나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좋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내가 결정한 것에 나는 애정을 느끼고 책임을 진다.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처음에는 놀라기도 했지만 꾸준한 대화를 통해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추측을 바탕으로 내게 조금씩 다가왔던 것 같다.
내가 와인 모임에 대해 물어봤 듯이 그는 여수 여행을 물어봤고 연락을 해왔다.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질문을 이어갔다.
혼밥하기 좋은 집을 추천해달라는 말은 그의 신중한 질문이었다. 혼밥이 아니라 사실, 그것은 나와 같이 밥을 먹기 위한 의중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같이 밥을 먹어야 감정이 생긴다.
어차피 남자는 나와 함께하기 위한 것일테니까. 이기적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 아닌 배려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곳에서는 결국 그를 좋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간은 분위기를 담고 있고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모든 기억은 공간과 함께 저장되며, 기억을 끄집어 낼 때도 우리는 공간을 통해 회상한다.
그래서 특정 장소에는 특정 기억이 쉽게 재현된다.
대화를 주고 받다보니 그의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생일을 묻지 않는다.
나에게 생일은 항상 힘든 날이었다. 괜한 생일 같은 게 있어서 울적한 경우가 더 많았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생일은 더욱 비참한 날이다.
카톡으로 공개되는 오늘 생일인 친구, 친하지 않은 사람은 부담없이 생일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지만 예전 친했던 사람에게는 어떠한 문자도 연락도 없다. 그들에게 나는 오히려 더 먼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생일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의 개인적인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언제나 딴 얘기를 한다. 우주, 별, 과학, 역사를 이야기한다.
나에게 시공간은 늘 지금 여기가 아닌 저 먼 나라 먼 이야기가 된다.
그는 전갈자리라고 말한다. 별자리 운세를 얼른 들어가 본다.
근데 전갈자리를 보기도 전에 나의 물병자리 운세에 더욱 관심이 가서 눈을 떼지 못한다.
물병자리는 상당한 지성파이며 수줍음과 인내심 또는 활기차고 괴상한 두가지 형태 중 하나이다.
그들은 꽤 매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정직하고 지적이고 논리적이며 독립성이 뛰어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혼자서 자신의 삶을 충전하는 시간도 즐기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하는 편이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출세욕 같은 것은 없는 반면 워낙 능력이 출중하여 주변으로부터 주목을 받는다. 대부분 물병자리는 인류의 미래를 몇 발 앞서가는 지성이 넘치는 계몽적인 인간을 만들어냈다.
내 별자리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되자 그제서야 그의 별자리를 찾아본다.
전갈자리는 열정적이고 친절하며 교육을 잘 받고 훌륭한 대화를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틀에서만 그것을 지키기를 바라며 공개적으로는 숨거나 관심의 중심이 되는 것은 피한다.
감정적이어서 쉽게 상처를 받는 편이나 훌륭한 자기애와 카리스마 및 직관력을 갖고 있다.
차분해 보이지만 직관력이나 분석이 뚜렷하고 사람들과 함께 방향을 잡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근면성실하고 자신의 일을 위해 노력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던히 꾸준히 노력한다.
12자리 중에서 가장 정력적인 전갈자리이지만 성욕을 자제하는 면에서도 뛰어나고 자신을 조절한다.
가까워지기 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자신을 보호해주는 사람에게 커다란 신뢰감을 느끼고 헌신적이다.
나의 물병자리 해석이 놀랍도록 정확한 것을 보니 아마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도 전갈자리의 해석과 일치하리라 추측해본다.
그러고 보니 그는 생각보다 예리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그런 주도면밀함을 숨겼기에 내가 잘 느끼지 못하였던 것 같다.
나는 관계의 끈을 내가 쥐고 있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사실은 알게 모르게 그의 당김이 있었다.
잉크가 물에 젖듯 서서히 물드는 색감처럼 그는 그렇게 나를 길들인 것 같다.
그것이 더욱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그는 push를 한 것이 아니라 pull을 한 것이다.
항상 그와 같이 길을 걸을 때도 나는 내 갈길 만 보지만 그는 전방 후방 측면을 다 예의주시한다.
그리고 내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살짝 방향을 틀어 에스코트 해준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진심은 충분히 느껴지고 행동하지 않아도 그의 정성은 알 수 있다.
전갈자리의 해석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대단한 정력가라는 것이다. 단지 자제할 뿐이라니.
그러고 보니 첫 입맞춤에서 그는 예상외의 기술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feel 이 아니라 technic 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그는 키스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부드럽고도 미주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감각적인 키스로 심장은 엑셀레이터를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