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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명의 삶

<잘 생김을 주의하라>

에스겔 23 : 1~21

by 봄날의 소풍

<잘 생김을 주의하라>

에스겔 23 : 1~21

4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말씀을 해석해 보자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오홀라, 오홀리바라고 이름 불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비유다. 원래부터 행음하고 더러워진 여자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취해주시고 자녀를 낳게 해 주셨다. 호세아, 보아스가 생각이 났다. 더럽혀지고, 버려진 여자들을 구원해 준 인물들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 같다. 애굽에서 욕망에 취해 이 여자들을 탐하던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랑과 용서, 구원의 하나님이 보인다. 그리고 기생 라합이 생각났다. 기생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용감하게 순종하여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집이 구원을 받았으며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는 예수님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 되었다. 태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원래 인간은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행음했던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아닌가. 중요한 건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삶인 것이다.

11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의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의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의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세상의 그 어떤 음란물보다 더 적나라한 내용이 오늘 말씀 같다. 동생(오홀리바, 예루살렘)이 언니(오홀라, 사마리아)의 참혹한 결말을 보고도 더 음욕을 행했다고 하니, 미련한 것인지 욕망이 이성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인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음욕의 상대들은 잘 생기고 늠름한 데다가 심지어 몸매는 나귀에, 정력은 말에 비유되었다. 중요한 건 그들이 먼저 오홀리바를 유혹한 게 아니라 오홀리바가 사절을 보내 가면서까지 음행에 대해 적극적 이적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등진 감각적, 세속적 타락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는 죄의 습성이 있다. 유혹해서 음행으로 쾌락을 누렸지만, 그녀들에게 돌아오는 건 증오, 조롱과 버려짐이라는 결말이다. 육신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끝에는 저주와 허탈함, 비참함이라는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배운다. 그런데 꼭 이런 내용을 성적으로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로몬의 '아가'서가 떠올랐다. 아가서에는 에스겔의 내용과는 정 반대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나온다. 가장 은밀하고 원초적인 곳. 침실... 읽고 묵상하기가 거북했지만 죄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에스겔 말씀에 숙연해진다.

주님!! 죄인이었던 저를 신부로 맞아주시고 자녀 삼아 주심에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과 더 깊이 교제하며 주 안에서 살고 싶습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세상의 화려함과 성공은 심판과 허무함으로 맺음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날마다 주님 주시는 말씀을 만나와 메추라기처럼 간구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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