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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25. 2015

다산의 악연

다산과 서용보 

다산과 악연을 맺은 사람들 몇 명이 있다. 그중에 서용보라는 사람이 있다. 


서용보는 다산 보다 다섯 살 위였다. 그는 18살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37살에 경기도 관찰사를 지냈다. 그때 혈기 왕성하던 다산이 정조의 명을 받아 암행어사로 경기도 일원을 둘러 보았다. 서용보는 관청에서 관리하는 곡식을 가난한 백성들을 구휼한다는 핑계로 빌려준 다음 되받을 때는 높은 이자를 쳐서 폭리를 취하였다. 그리고 풍수지리설을 들먹이며 마을 땅을 흉지라고 속여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한 다음 자신의 땅으로 만들었다. 다산은 백성을 수탈하던 서용보의 죄상을 낱낱이 기록하여 보고하였고, 서용보는 파직되었다. 그때부터 서용보는 다산에 대하여 앙심을 품었다. 얼마후 서용보는 복권되어 43살에 판서, 한해 뒤에는 정승이 되었고, 이후 20년간 삼정승을 두루 역임했다. 


젊었을 때 맺은 악연은 다산의 일생을 괴롭히는 요인이 된다. 7년 후 신유사옥 때 다른 모든 사람은 다산의 무죄함을 이야기해도 당시 좌의정이었던 서용보만큼은 결코 다산을 풀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다산은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18년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정식으로 사면 복권되지 않은 다산을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혈기방장하던 다산도 이제는 57세로 할아버지가 되어 본가인 마현으로 올라왔다. 


63세 나이에 영의정에 등용된 서용보는 근처에 사는 다산에게 안부 서찰을 보냈다. 

“해배 되셨으니 조정에서 일하셔야 할 텐데…"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다산의 집에 원수같이 여기는 서용보가 안부 인사를 물으니 그 뜻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였다. 그 후로도 서용보는 다산에게 안부 인사를 몇 번 더 보내었지만, 다산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산은 서용보의 뜻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다. 다산의 생각과는 달리 서용보는 이제 세월이 흘렀으니 서로 화해하기를 소원하여 먼저 손을 내밀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자존심이 센 다산은 결코 서용보에게 굽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후 해배된 다산의 학문과 학식을 생각하고 등용하여 쓰자는 여론이 일지만 서용보는 그의 재임용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다산 역시도 해배된 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고 싶어하는 뜻을 그의 시 여러 편에 보인다. 그렇지만 영의정 서용보의 반대에 막혀 그의 뜻은 이룰 수 없었다. 


생각건대 화해의 손을 내민 서용보의 손을 잡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19세기 초, 급속도로 내리막 길을 걷는 조선의 브레이크 역할을 조금은 감당하지 않았을까? 비록 다산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대목은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다. 나라를 생각하고 조금만 고개 숙였으면 어찌 되었을까? 만일 다산이 재임용되었다면, 사랑하는 제자 이학래 같은 사람도 등용되었을 것이고,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배신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긴 서용보 같은 자와 손을 잡았다고 해서 반드시 일이 잘 풀려지리란 보장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산의 절개나 지조를 더럽히는 정치적 야합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두고 이러쿵저렁쿵 말하는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인생사를 뒤돌아보면 이러한 안타까움들이 있을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있을 때 잘해! 오늘이라는 시간에 조금만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면 아마도 개인사든, 정치사든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순진한 기대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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