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신부
“그 꽃을 찾아오너라”
요정의 왕 오베른(Oberon)은 불화에 빠진 여왕을 골려주기 위해 요정 퍽(Puck)에게 마법의 꽃을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그 꽃의 약효는 아주 강력하다. 잠자는 사이 꽃의 즙을 눈에 떨어뜨리면 잠에서 깨어 처음 본 것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장난꾸러기 요정 퍽은 무식하고 천한 아테네의 직공 바텀(Bottom)을 당나귀 머리가 달린 반인반수 괴물로 바꾸었다. 여왕 티타니아(Titania)는 마법에 걸려 당나귀 머리로 둔갑한 아테네 직공을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셰익스피어가 쓴 ‘한 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에서 큰 소동이 일어난다.
마법에 걸렸다고는 하지만 여왕 티타니아는 어떻게 당나귀 머리를 한 반인반수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당나귀의 커다란 귀, 텁수룩한 털, 이빨이 툭 튀어나온 입을 보지 못한 것일까? 마법 때문에 그 모든 허물을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사랑스러운’이라는 술어에 들어맞지 않는 속성과 특징은 모조리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순간 모든 인지 기능이 마비되었을 수 있다(Emcke, 49).
사랑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쳐와 아무 준비도 안 된 사람의 전 존재를 사로잡아 버린다. 옆에 있는 사람이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 그러나 사랑만큼 아름다운 오해도 없다. 흔히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콩깍지야 말로 그 사람만이 가진 특별함에 대한 나만의 발견이라고 오히려 자부한다. 사랑은 그에게 숨겨진 특별함을 발견하는 순간 시작되고, 그 특별함이 평범함으로 변하는 순간 끝난다. 따라서 오래도록 마음 깊이 지속하는 사랑은 늘 특별함과 함께 한다(심강현, 40%).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묘약에 눈이 먼 것처럼 행동한다. 요한계시록은 반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한다. 흔히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과 구별하여 아가페(agape)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은 신적인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을 구분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을 네 가지로 표현하였다. 에로스(eros)는 남녀 간의 사랑, 필리아(philia)는 우정, 스톨게(storge)는 가족 간의 사랑, 아가페(agape)는 희생적인 사랑이다. 이 모든 사랑은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스 신들은 인간과 똑같이 분노, 질투, 갈등, 싸움 등을 하는 신들이다. 희생적인 사랑은 그리스의 신보다 사람이 훨씬 더 잘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초대 교회는 그리스의 희생적 사랑(agape)을 빌려 와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였다. 하나님은 독생자라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시는 희생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에로스, 필리아, 스톨게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에로스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신약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에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사랑을 아가페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에로스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영적 간음죄를 범해도 하나님은 길이 참으신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겠다고 단언하셨다(요 13:1).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이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에 정당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일방향의 사랑은 응석받이(spoiled child)만 만들 뿐이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받는 것에서 나아가 사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어떤 대상을 다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속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마법에 걸려있는데,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어떠한가?
남의 약점과 결점만 콕콕 찍어 험담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그 모든 것에도 사랑을 실천하는가?
Emcke Carolin, ‘혐오 사회’(Gegen Den Hass) E-book, 정지인 옮김, 서울 : 다산초당, 2017년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E-book, 서울 : 을유문화사,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