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책을 들었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창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책에 대해서 그리고 쁘리모 레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부끄럽다는 말을 쓴 것은 이 책이 주는 무게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책을 잡는 순간 다시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굉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서경식씨는 쟈이니치(재일조선인)로 일본에 살면서 아버지로부터 민족정신을 잃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도 흔들림없이 버티던 형제들은 한국에 유학을 온다.
큰형인 서승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작은형 서준식은 같은 대학 법학부에서 법을 공부하였다.
당시 3선을 노리던 박정희 정권은 '학원에 침투하여 박정희의 3선 저지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한 북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두 형을 체포, 구금, 고문을 자행했다.
고문을 견디다 못한 큰형은 분신자살을 시도하여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면회를 다녀온 어머니는 큰형의 일그러진 얼굴에 가슴을 쥐어 뜯었다.
“그 앤, 화상을 입어 귀도 없더라."
마루를 치고 통곡을 했을 때 작가인 서경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형은 각각 17년과 19년 옥중생활을 마치고 1988년, 1990년 출옥해서 서승은 대학교수로, 서준식은 인권운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런 그가 아우슈비츠에 2년 동안 수감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쁘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를 찾아간다.
쁘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서 토리노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다.
그는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에 저항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다.
평균 생존 기간 3개월이란 아우슈비츠에서 그는 무려 2년을 버티고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인간’의 실체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 속에서 글을 쓴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는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그런 그가 1987년 돌연 자살을 선택하였다.
서경식은 그의 삶과 죽음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역사 속에 저지른 비열한 범죄를 참회하지 않고 있는 일본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쟈이니치로서
이런저런 교묘한 언사로 자신들을 미화시키고 있는 그 땅에서 서경식은 고민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철저히 부정하고, 뻔뻔하게 자신이 피해자라고 오히려 역공하는 저들 일본인의 모습은 놀랍게도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그는 단지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인과 히틀러만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의 일본인들의 야비한 모습만을 고발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죄 된 속성을 고발하고자 함이다.
역사를 조금만 정직하게 들추어보면 히틀러 같은 무리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남을 해하려고 온갖 술책과 공격을 일삼다가 모든 것이 탄로 나면 뻔뻔하게도 자신은 그런 적 없다 말하고
당신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가 상상일 뿐이라고
증거가 있으면 가져와 보라고,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변호만 일삼는 무리는 우리 주변에 여전히 존재한다.
서경식은 역사의 저편과 현재의 이편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한다.
운명처럼 다가온 이 책은 나에게 도전한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란 무엇인가?"
8.15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이 책을 꼭 한번 정독을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