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작은 친절

by 글짓는맘


이 그림책은 글자가 없다.
사과, 누군가에게 건넨 빨간 사과 하나가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친절의 시작이었다.



아이들을 대할 때 나는 얼마나 친절한 부모인지를 생각해보면, 아침마다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밥 먹는 아이를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고, 나갈 때 기다려주지를 못해서 아이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얼른 아이를 재우고 내 일을 좀 하고 싶은데 밤 12시가 다 되도록 잠에 들지 못하고 졸려하면서도 계속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려다가 결국 아이를 울려서 재운다.


머릿속으로는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 순간이 되면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고, 나도 모르게 내 뜻대로 따르지 않는 아이들이 원망스럽고 그런 나 자신에게 좌절한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이것밖에 안 되는 엄마인가. 나는 엄마 자격도 없다, 정말.' 하고 자책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 퍼진다.


그런 날이면 잠자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눈물이 터지고, 내가 잘해야지, 내가 잘해야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냐는 자책이 물밀듯 밀려온다.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한 엄마가 되어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감정이 바닥을 칠 때, 가장 필요한 건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친절 하나이다.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인데 사람이니까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다. 잘 되지 않지만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자.


나 자신을 향한 친절은 결국 어느 순간 외부로도 향할 것이고, 그런 작은 친절이 모이고 모여 내가 사는 이곳을 밝혀줄 것이다.


그동안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친절함에 감사한다.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살포시 옆으로 비켜줘서 내각 설 자리를 주었던 이름 모를 사람,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아이가 무서움에 빽빽 울어댈 때 비타민 하나를 쥐어주며 따뜻한 손길로 아이를 도닥여준 간호사 선생님, 회사를 퇴사하던 날 짐을 들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려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는데 그런 나를 회사 정문까지 바래다준 야근을 하던 동료들.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부모님의 친절함.


모두 다 사람이다. 사람 때문에 웃고 울고 다시 희망을 가진다. 작은 친절 하나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그 연결이 확장되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귀찮았다. 매일 똑같은 일상, 아이와 하루 종일 복닥거리고 하루 종일 살림을 하고, 매일 같은 아이 친구들의 엄마를 보는 상황들이 귀찮고 지루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삶을 귀찮아하지 않아야겠다. 적어도 귀찮다는 이유로 해야 하는 그 어떤 일을 미루지는 말아야겠다.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대충 하면 내가 전해 줄 친절함과 내가 받을지도 모르는 친절함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친절함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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