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몬은 곰팡이가 좋아요

당신의 놀이터는 어디인가요?

by 글짓는맘

남편은 골프를 좋아한다. 매일 새벽 5시 50분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머리를 대충 손질하고 부스럭거리며 옷을 입고는 주방 베란다에 있는 쓰레기 한 봉지를 들고는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골프 연습을 하러 가는 것이다. 남편은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거의 일 년 동안 빠짐없이 아침에 나가는 것을 보면 골프가 좋기는 좋은가 보다.


글쓰기가 좋아서 아침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끄적거리는 나와 같은 마음일까? 이번 주말에는 드디어 필드로 나간다고 한다. 골프 한 번 치는데 무슨 준비물이 그리도 많은지. 골프웨어만 해도 그 종류가 다양하고, 골프공 수십 개, 골프채야 당연하고, 또 뭐가 있더라. 자동차의 트렁크가 골프에 관련된 물건으로 한가득이다. 주말 아침 일찍 나간다는데, 아직 하루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기분이 들떠 보였다.


남편이 처음으로 라운딩을 하러 가는 날 새벽. 이것저것 물건들을 챙기느라 콧노래를 부르며 혼자 바쁜 남편이 갑자기 얄밉게 보여서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아유, 자기 취미에 빠져서 평일이고 주말이고 자기 혼자 돌아다니는 남편을 둔 아내가 속이 터지기는 하겠다, 주말에 하루 나가는 것도 나 혼자 하루 종일 아이들을 봐야 하니까 힘들어서 짜증 나는 데, 이제야 이해가 좀 가네.” 나의 말에 콧웃음을 치는 남편. “처음으로 하루 가는 건데 뭘 그거 가지고 그래.” 나는 남편의 말에 성질이 났다.


남편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골프를 직장 동료들과 신나게 치고 있을 그 시간에, 나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그네를 스무 번쯤은 밀어주고 미끄럼틀을 오십 번쯤 타는 걸 지켜봐 주고 앞에서 아이들을 받아주고 있을 것이다. 모래투성이가 된 아이들의 엉덩이를 탈탈 털어주기도 하면서. 그래 맞다, 처음으로 필드에 나가는 하루이다. 남. 편. 에게는. 나에게는 평일 내내 아이들과 보내다가 주말에 겨우 남편과 시간을 나누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기회를 골프에게 빼앗긴 것 같은데 말이다. 남편은 자기를 응원해주지 않는 내가 조금은 야속한가 보다.


왜 나만 아이들을 돌보느라 동동거리는 거지? 누가 하라고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의 돌봄에는 평일과 주말 없이 늘 똑같은데, 나는 화가 났다. 나도 애들 신경 쓰지 않고 밖에 나가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남편이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편에게 나는 화가 나는 걸까? 조금이라도 미안한 기미가 있으면 그래도 괜찮은 마음이었을 것 같은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러 가니, 너는 알아서 잘 지내라’라는 이런 태도 때문에 나는 짜증이 났던 걸까? 나는 남편의 ‘태도’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이다.


‘토요일에 혼자 나가서 미안해. 대신 내일은 하루 종일 내가 아이들 볼게. 자기 하고 싶은 거 생각해 봐.’라는 말을 나는 듣고 싶었다. 남편에게 골프장은 아이들의 놀이터 같은 곳일까?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놀이기구를 타는 것에만 집중하고, 모래놀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놀이터 말이다. 어찌 보면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각자만의 놀이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림책 [시몬은 곰팡이가 좋아요]의 주인공 시몬은 곰팡이를 참 좋아한다. 음식을 모아 곰팡이가 필 때까지 기다리린다. 시몬은 곰팡이가 멋지고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곰팡이는 더러운 것이라고 하면서 상한 음식을 모조리 치워버린다.

시몬은 엄마 몰래 엄마가 좋아하는 원피스를 허수아비에게 입혀놓고는 엄마한테 원피스가 하나도 예쁘지 않아서 원피스를 버렸다고 말한다.

다음 날, 시몬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는 시몬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는데..
그곳은 바로 쓰레기장이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는 쓰레기장 여기저기를 다니며 신나하는 시몬의 표정과 고를 쥐어짜고 있는 엄마의 표정이 대비가 되어서 웃음을 안겨주었다.


아이들의 놀이터, 나의 놀이터, 남편의 놀이터. 각자가 원하는 놀이터 장소는 다르지만 '즐거움' 하나만큼은 공통이다. 우리는 모두 즐거움을 추구한다.


나의 놀이터는 어디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의 놀이터는 컴퓨터가 있는 이 곳,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공간에 있는 책상인 것 같다. 나는 이미 매일 나의 작지만 넓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니 나도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더 이상 투정 부리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겠다. 언젠가 우리 서로 같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그날을 꿈꾸며, 남편에게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라고 기분 좋게 다녀오라고 말해줘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