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무렵,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봉순이 언니'책을 끝까지 다 읽고도 책을 또 뒤적인 밤이 있었다. 동생과 2층 침대를 나누어 쓰고 있었는데, 나는 첫째라는 이유로 2층을 차지했다. 그래서였을까, 몸이 허공에 붕 뜬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참 동안 잠자리를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내일 학교에 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잠이 안 오지?'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정신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져 갔고 깜깜한 밤에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뜨고 있었다. 애써 잠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들지 않는 잠 때문에 걱정을 하다가 학교에 늦을까 봐 갑자기 눈물이 하기도 하다가 결국 억지로 눈을 감고서야 겨우 잠이 들곤 했다.
그런 나의 수면문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없어지기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니 고학년이 되면서 낮에 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 밤이 되면 피곤해서 잠자느라 바빴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은 바빠야 하나보다.
첫째와 둘째 아이는 모든 에너지를 전부 다 써야 잠을 자는 스타일인데,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그것을 몰랐다. 그저 '잠을 잘 자지 않는 아이' '잠이 없는 아이'로만 생각했지 왜 그런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하고 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잠이 들 때까지 봐야 하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졸려 죽겠는데, 책 읽을 힘도 없는데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책을 들고 다니며 읽어달라고, 놀자고 보채는 아이를 결국 울려서 재웠던 날이 부지기수였다.
조금 더 지켜봐 줄 걸, 이왕 잠 안 자는 거 책 한 권 더 읽어줄걸 하는 후회가 나중에야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이 얼른 아이를 재워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아이가 잠을 일정하게 자기 시작한 시기는 유아 기관을 다니기 시작한 3살 후반부터였고,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는 거의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
'안 잔다고 했을 때 조금 더 놀아줄걸..!'
잠이 오지 않는 오늘 밤에 굳이 잠을 자야 할 이유가 아이들에게는 없다. 어른들에게야 절대로 그렇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내일이란 그저 먼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별 낚시의 잠이 오지 않는 동물친구들도 그런가 보다. 잠이 오지 않는 하늘의 토끼가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잠을 자지 않는 동물 친구들을 별 낚시로 하나씩 건진다. 하늘에 모두 모인 동물친구들은 달 위에 걸터앉아 또 잠이 안 오는 친구가 누가 있나 하고 별 낚시를 내리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빨리 자라는 엄마의 성화에 억지로 잠을 청하곤 했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오르다가 한 페이지 가득한 노란 별빛에 감탄을 하며 내 마음도 책 속의 동물친구들과 함께 별밭에서 뒹굴면서 놀다가 갑자기 졸려진 동물친구들을 하나둘씩 집으로 돌려보내고 토끼도 잠이 드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하품이 쏟아졌다.
역시 잠이 없는 둘째 아이도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야 잠이 드는데, 이제는 나도 요령이 생겼는지 아이가 졸리긴 하는데 잠에 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날이면 나도 그 시간을 아이와 함께 즐겨본다. 책도 읽어주고, 밖에 불이 켜진 집이 몇 집이나 있는지 세어보기도 하면서. 그러다 보면 오히려 아이는 내가 억지로 잠을 재울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자연스럽게 잠에 빠져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날 밤이면 가끔은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는다. 이렇게 타닥타닥 글도 써보고 영화도 보면서 그 시간을 즐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