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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싫어

당신의 감정은 안녕한가요?

by 글짓는맘

싫다고 생각했던 그 상황들도 따져보면 좋은 점이 꼭 하나쯤은 있었다. 싫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내게는 가장 어렵고 싫다고 생각되는 것이 감정조절이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또는 너무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나의 감정을 티 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결혼 후에는 시댁 가족과의 인간관계,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는 동네의 아이 친구들 엄마를 편하게 대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육아도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어리든 적든 그동안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느꼈기에 아이들 과의 관계에 있어 감정조절이 쉬울 리가 없다.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행동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가 나오고, 화가 나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침착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이에게 화를 퍼붓기도 하고.. 또 어떨 때에는 기분 좋아서 마냥 상냥하게 아이를 대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감정이 파도를 타고 있으니 이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을 리가 없었다.


엄마의 감정을 눈치 보는 아이로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이들만큼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내가 그러지를 못했으니 감정 표현에 자유로운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이들까지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나 자신이 미친 듯이 싫었다.


“사람들은 내 속마음을 알까? 모르겠지?

다행이네. 모두 다 싫어하는 게 내 속마음이니까.

이제 내가 몇 살이지?
엄마 아빠는 나더러 맨날 너무 어리대.
또 어떤 때는 다 컸대.

그냥 지나가고 싶은데
안녕 인사하라고 하는 거 싫어.

가 버려! 아냐! 가지 마!

내가 싫다고 해도 내 곁에 있으면 안 돼?
내가 싫다고 해도 나를 사랑해주면 안 돼?

이 두 마음 모두 진짜 내 마음이야.

[모두 다 싫어] 중에서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싫은 사람이 있어도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라는 말로 포장하고 싫은 내 마음을 돌봐 주지 못했다. 그것이 싫어도 부모가 하라고 하니까 어른이 하라고 하니까 했었고, 먹었고, 하지 않았다.


내가 거부의 의사를 밝히거나 반항을 하면 항상 혼이 났었기 때문에 싫다는 나의 감정이 잘못된 것인 줄 알았다. 나에게도 싫은 것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싫다는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나는, 가슴속에 ‘다 싫어! 하기 싫어! 다 싫어 죽겠어!’라는 외쳐지지 못한 말이 한 곳에 고여 있다가 누군가에 의해 또는 어떤 상황에 의해 그 부분이 건드려지면 터지곤 했다.


어떤 것이 싫은데 그것이 내 생각에는 ‘도리이니까 해야 한다’고 느껴졌을 때, 누군가가 내게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 상황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나인데 마치 내가 그 중심에서 푹 꺼져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살기 위해 ‘싫다’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기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해왔던 것들 중에서 의무감에 했던 일들을 그만두는 또 다른 결심이 필요했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했던 행동을 멈추었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 늘 신경을 쓰고 살던 나였기에 하루아침에 신경을 딱 끊기란 어려웠지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육 개월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서 점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누가 어떻게 볼까 봐 머리를 감지 않고서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던 내가
시간이 바쁘고 급한 날은, 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이 밖에 나가자고
하는 날에는 대충 머리를 매만지기만 하고 밖으로 나가기도 하는 일상이 되었다.


예전에는 나의 거절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에 굉장히 민감했다면 이제는 나의 거절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은 상대방의 것이고 그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 가지의 변화가 더 있는데,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의 허락 없이 상대방이 그 선을 훅 넘어서 마음이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하면서부터는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모든 것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면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았을까..라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지만 내 아이들만큼은 지금 이 순간부터 감정에, 감정 표현에 자유로운 아이들로 살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싹트고 있다.


싫다는 감정은 그저 다양한 감정들 중에 하나인 것이고,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든 행동이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마음이 강한 사람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것도 알게 되듯이 말이다.


나는 이제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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