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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임금님

내 아이에게 전할 마음에 대해서

by 글짓는맘

마트에 가면 사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너무 갖고 싶어 하고 마침 가격도 저렴해서, 장난감을 자주 사 주는 것도 아닌데 아이의 기를 죽이기 싫다는 이유로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곤 했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샀던 장난감들은 아이가 갑자기 마음에 들었던 만큼 금방 싫증을 내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건에 대해, 소유에 대해, 더 나아가 행복에 대해 아이에게 어떤 마음을 알려줘야 할지 고민되는 요즘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임금님에 나오는 곰 임금은 많은 물건과 많은 일에 지쳐서 언덕에 있는 낡은 집 삼층에서 지내기로 한다.

발코니에 앉아 치즈 샌드위치를 먹으며 기차소리, 자동차 소리,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임금은 '이곳에서는 인생이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한다.

임금은 가지고 온 마차를 팔고 말들을 들판에 풀어주고 임금의 자리까지 다른 동물에게 준다.

임금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함께 지내자는 임금의 말에 이렇게 낡은 집에서는 못 살겠다는 여왕은 다시 궁전으로 되돌아가지만 결국 왕비는 임금의 낡은 집으로 와서 함께한다.


많은 것을 가져야만 좋은 것이 아니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체가 행복함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하지만 천 원 한 장이 아쉬웠던 나는 아이들에게 꼭 낡은 집에서 샌드위치를 보면서 따뜻한 햇볕을 쪼이는 것도 행복할 수 있긴 하지만 부자로 풍요롭게 살아도 순간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


아마 곰 임금은 그래 본 적이 없어서, 가난해 본 적이 없어서 새롭기 때문에 잠깐의 낡음과 햇볕과 꽃과 샌드위치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샌드위치와 과일을 마음껏 살 돈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좋은 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순수한 아이들 동화에 너무 비판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나의 20대가 생각났다.




나의 아버지가 돈을 좀 더 벌어보겠다고 부자가 되어보겠다고 마음먹고 했던 일들이 나의 가족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돈에 쪼들렸고, 멀쩡한 집을 팔아 셋방을 찾으러 다녔고, 내 용돈은 내가 벌어서 써야 했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어느 더운 여름날, 혼자 집에 있었는데 누군가의 '똑똑' 소리에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구두까지 맞춰 신은 덩치 좋은 두 남자는 내게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저벅저벅 집 안으로 들어와 빨간딱지를 여기저기 붙여댔다.


'어, 저건 텔레비전에서 보던 건데?'라는 생각에 멍하니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다가 '아, 여기가 지금 우리 집이구나.' 지금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에 퍼뜩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학교 공부를 빨리 마치고, 돈을 버는 일이 유일하게 내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이었다. 외국의 영어교육시스템을 배워 오고 싶어서 영어를 전공하고 있었지만 이제 유학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어떻게 해서든 영어를 잘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외국을 갈 수 없다면 한국에서 영어 연수를 하자는 생각에 외국인 교수와 말을 할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말을 했다. 영어로 말할 기회만 찾아다녔다. 그리고 졸업을 하기 직전에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돈을 많이 줄 것 같은 학원을 골라 다니면서 잘 가르치는 척을 하면서 면접을 봤다. 속으로는 떨려 죽겠는데 겉으로는 멀쩡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했다.


누구에게도 집 안의 사정을 솔직하게 말해본 적이 없었다. 괜찮은 듯,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지내던 것이 점차 마음의 습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는데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지만 그 당시의 인간관계며 나의 일상생활은 바닥을 쳤다. 하지만 어디에서건, 누구에게 건 나의 속이 곪아가고 있다는 것은 보일 수밖에 없었고 내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몰랐다.


나의 가족은 가족이라는 끈을 간신히 붙잡고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했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는 서서히 해결되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조금씩 상처가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겪는 상황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끄집어내는 것이 그토록 어려워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솔직한 마음을 보이는 것이 그토록 힘이 들어서 나 스스로를 힘든 상황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이제는 내 마음을 안다. 멀쩡하게 잘 살다가 갑자기 코딱지 만한 집에 살려니 창피한 마음이 들었고, 부끄러웠고, 싫었다. 친구 하나 집 안에 들이기가 눈치 보였고, 내가 이런 집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무시받을까 봐 싫었고 그래서 누군가 나를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말을 하면 그 사람을 경멸했고 그런 나 자신을 경멸했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고 잘 사는 척을 했다. 있는 척, 아무것도 없는 데 있는 척을 했다. 돈이 없는데 돈이 없다고 말하기가 무서웠다. 야근을 하고 타고 갈 차가 없었는데 동료의 차를 태워준다는 말에 괜한 자존심이 상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싫어서 괜찮다고, 택시 타고 가면 된다고 얘기를 하고 택시 콜을 불렀는데 택시기사가 길을 헤매 한 시간 동안 밖에서 오들 오들 떨면서 서 있었던 어느 겨울밤이 있었다.


그 시절의 경험 때문일까,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힘든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자꾸 안정적인 것만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내가 있었기에, 그 시기를 헤쳐 나왔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조금은 단단해진 내가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정말 전해 주고 싶은 것은

힘이 들 때 그 시기를 버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다.


힘들어 죽겠는 그 순간 갑자기 빛처럼 떠오르는 어느 날의 즐거운 기억. 어느 숲 속의 놀이터에서 바람에 날아갈 정도로 신나게 그네를 탔던 신나는 기억. 그 기억 하나를 심어주기 위해 오늘도 아이들과 놀이터를 쏘다니고 씽씽이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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