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하면서,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업 육아를 하면서 나는 어느 순간 안갯속에 서 있는 것처럼 막막해졌다. 거대한 산을 앞에 두고 느끼는 거대함과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막막함. 지나갈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순간에는 한없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면 안된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잔소리에 나 자신에게 무척이나 실망을 하고 매일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미안해했다.
온종일 아이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다가 밤을 맞이하는 나의 일상에 지쳤기 때문일까, 책이라도 좀 읽고 글이라도 좀 끄적여 보겠다고 새벽같이 일어났는데 갑자기 나를 찾는 아이들의 소리에 '그래, 엄마 여기 있다, 여기 있어..! 내가 하긴 뭘 해..!' 하고 포기해버리는 내 마음 때문에 이토록 답답한 것인가.
결국 다 나 자신 때문에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화를 어디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화를 내버리면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육아도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돼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퇴근한 남편의 '애들 잘 놀았어? 오늘 어땠어?'라는 한 마디에 '응, 잘 놀았어.'라고 대답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잘 놀고 있음' 뒤에는 수없이 많은 화와 울음과 짜증과 포기라는 단어가 숨겨져 있음을 나와 아이들은 알고 있다.
내가 왜 답답한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육아에 온 힘을 쏟아부으면서 아이들이 잘 커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서투름과 잘못을 이해하고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행여라도 누군가 나의 육아에 대해 한 마디를 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했다.
일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핑계로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찾았을 뿐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고 일하는 엄마들을 마냥 부러워하고 경력이 단절된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기만 했을 뿐이었다.
이 모든 답답함과 화는 인정하기 싫어서 외면했던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책 속의 소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렵고 슬픈 마음을 꺼내어 빈 병에 넣어둔다. 잠깐만 넣어두려고 했던 그 마음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내버려 두었고, 그래서 그 병은 점점 더 무거워졌지만 소녀의 마음은 더 이상 두렵고 슬프지 않고 안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 속에 넣어둔 마음을 꺼내고 싶어서 마음을 꺼내려고 했지만 어떻게 해도 마음은 꺼내지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호기심이 많은 작은 아이가 소녀의 병 속에 있는 마음을 톡 꺼내 주고 마음은 소녀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무섭고 싫은 마음을 외면하고 싶은 나도 책 속의 소녀처럼 그 마음을 병 속에 담아두지는 않았을까. 우리 모두는 어쩌면 각자만의 슬픔을 병 속에 묻어둔 채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모른 척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언젠가는 나의 화를, 나의 슬픔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것밖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육아를 하면서 벌컥벌컥 올라오는 화도, 답답해 죽겠는 그 마음도 모두 나의 마음임을 인정한다. 나에게서 나온 그 마음들을 더 이상 아이 때문에, 남편 때문이라는 핑계로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는 그 순간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아이와 나,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