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0일,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작디작은 아이는
내 품 안에 쏙 들어왔다.
태어난 지 이틀 째,
아기 얼굴이 좀 노랗게 보였다.
순간 엄마의 촉,
‘황달인가?'
그냥 느낌뿐일까 싶었지만 이게 왠 걸,
아기는 오후가 되자 황달이라는 의사 소견으로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채 광선 치료를 받았다.
제발 나의 느낌이 틀렸으면 하는 그 순간
하필이면 정확하게 느낌이 맞아떨어진다.
며칠을 병원에서 더 보내고
아이의 황달 수치도 떨어져서 함께 집으로 왔다.
그때부터 아이의 상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소똥’이라고 불리는 노란 딱지가 많았고,
피부는 검붉고 거칠거칠했다.
아직 신생아라서,
태지가 다 떨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 눈에는 아이의 피부가
약해서 그런 것만 같아 보였다.
아이의 면역력을 위해
모유를 먹이려고 애를 썼지만
아이는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쉽게 우유가 나오는 젖병만 찾았고,
결국 아이는 분유로 갈아타게 되었다.
모유를 먹이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이유식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해 먹이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대망의 이유식 첫날,
한참동안 불린 쌀을
곱게 갈아서 흰 죽을 만들었다.
한 입, 두 입, 세 입을 먹는데
입 주변이 빨개지는 것이었다.
쌀은 알레르기가 없다고 했는데
쌀을 처음 먹어서 그런가?
그다음 날도, 또다시
울긋불긋한 반점들이
입 주변, 목 주변으로 올라왔다.
'어머나,
밥은 먹고살아야 하는데
쌀에도 알레르기가 올라오면 어쩌지?'
병원에서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진단을 내리지는 않지만
아토피인 것 같아요.
아이가 좀 더 커야
알레르기가 괜찮아질 거예요.'
라고 했다.
이제 아이와 내가
온전히 겪어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쌀, 찹쌀, 감자, 애호박...
마음을 아무리 강하게 먹어도
막상 음식을 먹고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는
울긋불긋한 알레르기 반응을 볼 때면
마음은 늘 들쑥날쑥 하기 십상이었다.
'혹시 목이라도 부어서
숨을 잘 쉬지 못하면 어쩌지?'
노심초사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왜 이럴까.’
애호박 하나도 마음껏
먹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너는 알까..
나는 어쩌다가 이토록
피부가 연약한 아기를 낳았을까..
내가 일을 하느라 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서
아이의 피부가 이렇게 여린 걸까..
아이의 상태에 대해 예민한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유난한 엄마로 비춰졌다.
나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예민한 엄마로 비춰질 뿐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들리는 말을 차단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나의 마음을 지켜야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었고,
나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