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권태 성숙'
얼마 전에 유퀴즈에 김창욱 교수님 편에서 익명의 사연자의 '최근 무엇을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고민에 대해 김창욱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가 너무나 공감이 되어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우리는 보통 일을 할 때 열정의 시기로 시작을 한다. 이때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은 열정이 영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열정은 식고 열정의 크기에 비례하여 권태의 시기가 온다. 권태의 시기에 우리가 또 흔히 하는 두 번째 착각은 권태가 영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권태의 시기는 언젠가는 또 지나가고 성숙의 시기가 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정의 시기가 떠오르고 권태의 시기가 떠올랐다. 권태가 끝나고 성숙기에 접어들었는지에 대한 100%의 확신은 없지만 내 중심에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생겼음은 안다. 쉼을 부르짖으면서 치열하게 덜 힘들게 살려고 노력하면서도(이 표현이 심히 웃기지만 이 또한 정신 차리고 노력해야 하는 무언가이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은 다 챙겨서 한다. 이전만큼 헤프게 덤벼들지는 않지만 배움에 대한 금전적 시간적 투자도 여전히 한다. 그러고 돌아서서 또다시 쉼을 이야기한다.
쉼은 결국 멘탈을 좌우하고, 멘탈에 좌우된다
나에게 쉼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내가 쉼의 시간을 갖는 것과 나를 뒤쳐지게 하는 게으름을 과감히 구별하는 것도
쉼의 시간에 재충전을 위해 몰입하는 동안 일에 대한 조바심을 눌러내리는 것도
나는 나에게 맞는 쉼으로 내 잠재력을 깨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도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멘탈 싸움이다.
꿈은 꾸되 주어진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상황에 눈 가리며 마음을 앞세우지 않고 주어진 여건과 그 안에서의 삶에 자족하고 순간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 것.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은 인정욕에 휘둘려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맡기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나와 그분만 아시는 내 인생의 단계들을 인정하고 자축하는 것. 이것들이 가능해져야 비로소 평안한 쉼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수 있고 그래서 쉴 수 있고 함께라서 특별한 쉼이 되고 혼자라서 더 잘 쉴 수 있는 상태의 멘탈이 되려면 사람들의 보이는 모습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작은 성공들을 인정하고 축하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에 집중하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난 후에 더 단단해진 '나'로 확실한 성공을 거두는 경험이 반복되어야 한다. 처음엔 나 스스로도 긴가민가 할 것이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한 후에는 이렇게 살면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어디가 끝인지 몰라 나를 쉬지 못하게 했던 밑도 끝도 없는 '성공'이라는 것의 정의도 성공과 닿아 있는 것인지 아무 상관없는 것인지 막연하기만 했던 '행복'에 대한 욕망도 결국은 내 안에 만족에 이르는 척도가 그리고 답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아는 것'이라는 말 대신 멘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그저 '아는 것' 이상의 '잡는다' 혹은 '기준을 세운다'라는 조금 더 능동적인 의미를 담고자 했던 의도가 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닌 노력이 필요하고 의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쉼이라는 것이 말이다.
뭐 이렇게까지. 쉼이 뭐라도 되는 양. 내 맘의 목소리를 따라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는 이 글의 의지적 질척거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