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는 예보를 흘려듣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예보가 맞지 않으면 실망할까 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치우며 밖을 내다보니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눈송이들이 눈앞을 꽉 채워 천천히 내리는 것이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눈송이들은 점점 더 굵어져 땅에 하얗고 소복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조금 내리다가 그칠까 봐 한기가 드는데도 거실 커튼을 양쪽으로 묶고 네 식구가 나란히 큰 창 앞에 앉아 눈 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은 당연지사 언제 눈사람 만들러 나갈 수 있냐고 묻기 시작했다.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눈이 올까? 확신은 없었지만 눈이 쌓이면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자고 약속하고 놀이를 하고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걸까. 한없이 눈이 내리더니 기어코 눈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내다보니 참 예쁘다. 들어오는 입구 길이 얼지 않을까, 밖에 세워둔 차는 괜찮을까 염려는 신랑에게 맡겨두고 그저 '좋다~ 좋다~' 바짝 조여 두었던 나사를 반쯤 풀어본다.
설경 앞에 커피 한잔을 들고 앉으니 꿈꾸던 Winter happiness가 여기 있었다. "여기에 벽난로까지 있으면 완벽한데" 마음과 감성은 이미 Holliday Season 한복판이다.
난 여기 이대로가 좋구만. 하루 종일 이 앞에 앉아 멍도 때리고, 책도 읽고, 뒹굴 거리며 너무 행복할 것 같은데.
내 옆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아무리 추워도 눈밭에서 눈사람을 만든 추억 하나는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나. 집안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지만 충만한 아이들 사랑으로 주섬 주섬 나갈 채비를 한다. 혹여나 이 산골에서 감기 걸려 열이라도 날까 봐 싸매고 또 싸맨다. 바지가 꽉 끼어 불편하다 했지만 그래도 덜 추운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에 수긍해주는 6살 첫째. 역시 이만하면 다 키웠다 싶다. 서울에서 본인이 챙겨 온 장갑까지. 완벽하다.
한참을 옷을 끼워 입혀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가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뭉쳐지다 말고 흩어지고 마는 작은 눈덩이를 흩뿌리며 논다. 눈사람 따위 안 만들어져도 그만, 폭신한 눈을 만지는 것 자체가 좋은가보다.
눈사람 만들러 나가서 눈사람이 돼버릴 뻔 한 둘째는 엄마와 함께 낮잠을 청하고,
눈사람 만들기 인생 미션을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첫째는 아빠랑 남아 기어코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을 크게 굴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머리, 몸통 붙여서 인증사진까지 완벽하게 찍고 들어온 아이. 사진 속 아이의 얼굴 표정은 목표한 것을 성취한 만족감으로 어느 때보다 환하다.
눈이 그치고 나니 그제야 뿌옇게 안보이던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눈을 소복이 맞아 하얗게 변해버린 산은 또 그 모습 그대로 운치가 있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에 군데군데 전등 하나씩 달아준 우리만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상상 속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