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에서 그 진위를 의심할 수 있는 것은 흔적(跡 자취)이고, 그 옳고 그름을 분변할 수 있는 것은 그 실상(實 사실)이다. 때문에 그 사건을 논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 흔적(跡)에서가 아니라, 반드시 그 실상(實)에 기인해야만 한다. 그 흔적(跡)을 가지고 진실로 의심은 할 수 있다. 그러나 흔적은 사실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오직 있는 그대로의 사실 안에서만이 존재한다. 그런즉 의심이 간다고 해서 실상을 확인할 수 없는 흔적(跡)만을 가지고 어찌 실상의 진위 여부를 따질 수 있겠으며, 실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그 진위를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그 실상(實)의 진위 유무를 알아야 비로소 그 흔적(跡)의 진위 유무를 아는 것이고, 그 실상(實)의 옳고 그름을 알아야 비로소 그 흔적(跡)의 옳고 그름도 보이게 될 것이다. 지나간 일의 흔적(跡)은 모두 일찍이 그 실상(實)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이다. 그런즉 실상(實)이 없는데 흔적(跡)만이 있는 경우가 어찌 있을 수 있겠으며, 실상(實)만이 있고 흔적(跡)이 없는 경우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또한 실상(實)은 옳으나 그 흔적(跡)이 실상과 다르고 틀린 경우가 어찌 존재하겠으며, 실상(實)이 그른데 그 흔적(跡)이 사리에 옳거나 그 실상과 맞는 경우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는 모두 최선을 다하여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 노력의 부족함에서 나온 결과다.
-구사맹(具思孟, 1531~1604), 『팔곡집(八谷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