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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Sep 19. 2021

디자이너와 마케터가 깜빡 속은 뇌과학의 거짓말

지식은 때때로 우리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조금 어렵고 길지만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이론' 또한 현재버전일 뿐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때문에 거짓말이라고 말했던 내용 또한 '알고보니 진짜' 였다는 엄청난 반전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습니다.

*다만 자연과학의 증명은 '반증이 나올 때까지 진실로 믿는다.' 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저는 일단  이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장.

지식은 때때로

우리를 배신한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디자이너나 마케터, 전략가, 컨설턴트, 영업직, 교육업계, 인사관리 직종에 계신 분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사실 모두가 원하겠지만.) 


들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 궁금해합니다. 명확한 근거를 통해 인간행동의 패턴이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놀라운 솔루션을 찾고 싶어하죠. 이런 갈망은 그들의 눈길은 '뇌과학' 이란 분야로 이끕니다. 이름부터가 멋있고 신비롭지 않나요?


이들은 나름의 공부(또는 검색)를 통해 뇌의 구조와 원리에 기반한 다양한 디자인 솔루션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메커니즘을 설계합니다. 이 때 대부분 복잡한 이름을 지닌 이론이나 도서, 구조화된 도식 등을 근거로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특히 구글이 알려주는 검색결과 중에선..진실과는 무관하게 인기에 힘입어 진실이 되어버린 친구들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지식들은 미디어에 의해 유명해지고 확산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이 구글과 네이버 검색결과창에 차곡차곡 쌓이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설'로 자리잡게 되죠. 우린 이렇게 인기투표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론들을 '정크 사이언스' 라고 합니다.(예를 들면 '황금비 이론' 같은)이들의 힘은 막강합니다. 다수의 힘을 등에 업고 진실인 척 행동하죠. 이쯤되면 학계의 의견은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렇다면 뭔가... 매트릭스마냥
거대한 거짓과 은폐된 진실이 있는건가!!??


음... 그냥 '너무 유명해져서 검색창을 도배했다.' 정도가 정확하겠네요.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비밀이 있거나 전문가들만이 공유하는 진실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린 생각보다 쉽게 진실을 파헤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검색해봐도 알 수 있죠. 심지어 저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단지 구글 검색창 상단에 뜨지 않았을 뿐.


우린 정보를 습득할 때 '에코챔버(Echo-chamber)효과' '단어의 위엄'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성당에서 소리지르면 메아리가 왕왕왕 울리죠? 이처럼 '미디어에 의해 특정한 정보가 계속 증폭, 강화되는 현상' 을 에코챔버효과라고 합니다. 단어의 위엄이란 '개념이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할 수록 신뢰를 갖게 되는 현상' 입니다. 잡지에 실렸다, 언론기사다, 외국학자가 말했다, 아침방송에 나온 의사가 말했다... 이런 공신력의 함정도 포함하죠.


그래서 우린 가장 상위에 뜨는 정보나, 인기있는 도서, 메이저 언론사의 기사내용을 굳게 믿습니다. 이것은 궁금증을 지니고 진실을 파헤치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쉬운 방법이죠. 매우 효율적인데다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기에 두뇌는 여러분들을 그저 내버려둡니다. 자신에 대한 가십조차 말이죠. 어쩌면 지식이 우릴 배신했다기 보단, 우리가 지식의 유혹에 순응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수도 있겠네요.




제2장.

전전두엽, 파충류뇌, 삼위일체 뇌,

인간은 우월해지고 싶었다.



거짓은 이렇습니다.


전전두엽은 이성을 담당하는 곳으로 감정을 제어하고 가장 고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삼위일체의 뇌. 인간의 두뇌는 파충류의 뇌'(뇌간), 감정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감정의 뇌'(변연계), 지능/운동 능력을 담당하는 '생각하는 뇌'(대뇌피질, 신피질)등으로 구성된다.

좌뇌는 논리적인 수리영역을 우뇌는 창의적인 상상력을 담당한다.

언어중추가 언어를 담당하고 있다.

사고와 창의력을 담당하는 곳이 존재한다.


이런 내용들이죠. 파충류뇌 가설을 인용하는 마케팅 서적에선 "감정을 공략 해야한다, 생각하는 뇌를 속여" 는 등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디자인 영역에서도 "파충류 뇌가 행동의 근거가 된다"던가, "기억이 어떤 형태로 '저장' 된다."는 식의 공식을 주로 언급합니다.특히 UX디자인이나 서비스디자인 영역에선 거의 이것들이 정설로 받아들여집니다. 여기에 어려워보이는 의학영단어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론을 좀 섞어주면 꽤나 그럴싸한 과학적 근거처럼 포장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든 내용은 이미 많은 신경학자들로부터 배척당한 이론이자, 실제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닌 '구조화된 가설' 내지는 '상징적인 모델'불과합니다.


하지만 당장 구글로 돌아가 '삼위일체 뇌'를 검색해 보시겠어요? 이 이론은 대학교재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이론입니다. (교과서에 실렸다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저도 해봤습니다. 참고로 일본의 교과서에는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실려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렸다는 사실이 신빙성을 증명하진 못합니다.)




추상적인 이론이
그럴싸한 논리를 갖추면
신화가 됩니다.

이제 그 신화의 기원을 좀 파헤쳐보죠.



재밌는 건 이 파충류뇌 이론은 플라톤 때부터 존재했던 가설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정신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기 다른 곳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성은 뇌에, 감정과 공포는 심장, 욕망은 뇌는 간, 창자에 있다고 말했죠. 이를 삼위일체(triune)설이라고 부릅니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웠던 것 같네요. 인간의 뇌가 창자에 있을리는 만무하지만, 당시엔 지도자, 군인, 노동자 계급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유가 컸을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너희 동물들이 차마 지닐 수 없는 '영장류의 뇌'를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원숭이에 비해 전두엽이 크다느니, 전전두엽이 감정을 제어한다는 식의 생물학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명제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삼위일체 뇌 가설은 1970년 MacLean에 의해 정립되었고 1990년대 공식적으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이 등장하고 난 이 후 즉각적인 학계의 비판과 논란이 있었죠. 삼위일체 뇌 이론은 실험결과를 근거로 했는데... 이게 파고들어 보면 좀 재미있습니다.


일단 MacLean씨는 수컷 원숭이의 뇌에서 파충류의 뇌와 비슷해보이는 조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파충류뇌'라고 일단 이름을 붙였죠. 그리고 이를 잘라내보았습니다. 그러자 수컷원숭이의 공격적인 움직임이 멈췄네요. MacLean씨는 파충류의 특성을 '공격성'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죠. 아, 이 부위는 파충류의 두뇌처럼 생겼고, 공격성을 지녔으니 이건 파충류에서 비롯된 뇌겠구나.


실험과정의 일부입니다. 사실 이 실험의 문제는 시대적인 실험방법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또한 재실험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포유류와 파충류의 성향을 미리 규정하고 이에 맞춰 결과를 해석했던 터라 실험 자체의 허점이 많았죠.


그는 우리가 파충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파충류뇌'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위에 새로운 뇌 구조를 발달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또는 적어도 그런 모델을 제시했죠.


지만 이 부분은 그리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 반박 당했습니다. 파충류도 이미 피질을 지니고 있는데다(하다못해 물고기조차), 진화의 방식은 과거의 것을 유지한 채 그 위에 외장재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진화는 '추가'의 방식이 아닌 '변이'의 방식을 택하죠. (물론 MacLean이 말했던 것은 정말 무지개떡처럼 뇌가 차곡차곡 성장하는 그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은 모델링과정에서 단순화된 이미지였겠죠.)


더불어 변연계가 지닌 감정이론. 즉 변연계가 감정을 담당하고 있고 A라는 자극이 왔을 때 그에 따라 어떤 감정이 발현된다는 주장. 즉 감정이 변연계에 어떤 완성된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는 이론은 현대에 와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최근의 연구에선 '감정이란 외부자극에 의해 신체의 변화를 감지했을 때 이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감정은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레이블을 붙이듯 의미부여되는 것이라는 얘기죠.


삼위일체 뇌 가설은 과장된 단순함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가 구분한 영역은 추후 다양한 이론의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포지스의 다미주이론' 등이 그렇죠. 그러나 포지스는 다미주 이론은 삼위일체 뇌가설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다미주 이론은 온전히 해부학과 계통분류학에서 그 근거를 찾았죠. 물론 다미주 이론 또한 많은 비판과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지스의 객관적인 실혐결과와 무관하게 '사랑과 지속가능성의 뇌'라는 식의 멋진 이름을 붙여 미주신경 만능론으로 확장시킨 각종 책, 매거진, 기사들이 더욱 문제였달까요. 어찌보면 삼위일체 뇌 가설과 다미주 이론은 비슷한 길을 걷는 듯 합니다. 기본 개념도 비슷하고, 미디어에 의해 과장된 해석이 덧붙었다는 억울함까지도 말이죠. 하지만 가설의 증명과정을 살펴봤을 때 MacLean의 이론은 느슨함의 책임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두뇌의 신비함과 미스테리함은 많은 철학적 문제의 숨겨진 열쇠처럼 여겨졌을 겁니다. 1912년 독일의 한 논문에서 언급된 '현생인류의 전두엽 급팽창' 개념은 인간 전두엽이 원숭이 등의 영장류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는 식의 주장을 합니다.


잠시 재밌는 얘길 하나 해드릴게요.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렸다가 삭제된,
많은 디자이너들이 믿고 있는 황금비율 이야기.


많은 증거들을 통해 황금비의 신화는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황금비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앵무조개의 껍데기 지름비와, 파르테논 신전의 비율, 모나리자, 신용카드의 가로세로비가 황금비율 (1:1.618)이라는 얘길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어떻게 밝혀졌을까요.


'재봤거든요.' 재보니 아니었어.

앵무조개의 껍데기는 한바퀴 돌 때마다 안쪽 껍데기 지름의 3배씩 증가합니다. 흔히 얘기하는 피보나치 수열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숫자죠. 파르테논은 1 : 2.25비율을 지니고 있습니다. 1.618의 황금비와는 오차를 고려해도 완전히 다른 비율입니다. 그냥 재면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사람들의 딱딱 맞아 떨어지는 우연의 조합을 좋아합니다. 그래야 "예측"할 수 있거든요.  피보나치 수열은 알고리즘을 설명할 때 재귀함수 파트에서 등장하는 신기한 수열입니다. 이 친구는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는 프랙탈 이론과 연결되는데 나뭇잎의 갈라짐이나 눈의 결정 등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근거를 넘어 엘리어트 파동 이론(Elliott wave theory)처럼 다소 철학적으로 들리는 이론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음모론 철학, 과학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이런 이론들은 꽤나 섹시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잠시 삼천포로 빠졌네요.
이 이슈도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원숭이의 뇌 크기는 인간보다 작습니다. 만약 원숭이의 뇌를 인간 두뇌 크기로 키우면 대뇌피질의 크기는 거의 동일해집니다. 인간은 전두엽의 급팽창으로 똑똑해지지 않았습니다. 크기가 지성을 좌우한다면 똑똑한 사람들은 죄다 목디스크를 지니고 있을 지도 몰라요.


이 이론은 인간의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한 선입견이 개입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두뇌는 명백히 '네트워크'의 복잡성에 의해 다양한 일을 수행합니다. 또한 이 복잡성은 인위적인 배양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사고능력이 엄청나게 특별한 생물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라, 뇌신경망이 복잡해질수록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관점.

물론 이는 1970년대 이 후 시냅스 가소성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진 다음에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겠지만요. 


또한 전두엽이 '이성과 논리, 지성'을 담당하는 영역이라는 것도 널리 알려진 신화 중 하나입니다. 뇌는 '왼쪽 상단 부분에서 창의력을 담당하고, 가운데 부분에서 청력을 담당하는 식' 으로 영역이 딱딱 분할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부를 할 때 갑자기 이마에 불이 켜지거나, 언어중추가 언어만을 담당하는 것도 아니죠.


언어중추라느니, 분노회로라거나 하는 등의 명칭은 명백히 두뇌를 실험하는 관찰자 입장에서 붙여진 이름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과학자가 인간의 언어 습득관련 실험을 하고 있었고, A450이라는 뉴런조직이 언어에 관여한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아 이건 언어중추야.' 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죠.


실제로 두뇌는 같은 단어라도 이곳 저곳에서 정보를 조합(Assemble)합니다. 서로 다른 신경세포가 같은 결과값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죠. 이를 축중(degeneracy) 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언어중추도 가끔 청각정보를 처리하고, 심지어 복잡한 사고나 감정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두뇌는 그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입니다. 무언가가 저장되는 저장장치라거나, 역할이 딱 분담된 공장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전기신호와 신경전달/조절물질로 시냅스를 변형(Eric R. Kandel. 시냅스가소성)하고, 가지를 뻗거나 소거하는 거대한 그물망이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두뇌의 그림은 대부분 이해를 돕기위해 지나치게 추상화, 단순화된 모델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했던 그런 창의력 가득한 소우주 느낌, 또는 사령탑의 이미지이기도 하죠.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두뇌는 인간을 우월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데다, 두뇌의 본래 기능은 고등적 사고와 감정의 통제가 아닙니다. 신체자원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감각을 처리하는 기관이죠.




제3장.

거짓이 신화가 되다.


황금비는 거짓으로 밝혀졌고, 삼위일체 뇌 가설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은 '가설'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들은 무서운 세력에 의해 지켜지는 어둠의 비밀같은 게 아닙니다. 허무하리만치 '쉽게' 거짓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다, 그리고 이해하기에 어려운 내용도 아니죠.


그런데 이게 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리더십, 경영컨설팅, 교육업계, 디자인, 마케팅 이론에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진실은 그리 재미가 없어요.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더 재밌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이란 숫자는 굉장히 직관적입니다. 게다가 경영이론, 마케팅, 리더십 이론에선 무언갈 3개로 쪼개는 것을 매우 좋아하죠. 칼같이 쪼개진 개념은 뭔가 명확한 이론처럼 보입니다.



과학자들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데다 특히 두뇌에 대해선 '많은 부분이 미지에 쌓여있다.' 라는 결론이 주를 이룹니다. 진실은 어그로를 끌지 못합니다. 결국 '잘 포장된 가설'이 일련의 마케팅 파워를 등에 업고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그 과정은 이러했죠.


가설에 불을 붙인 것은 저도 존경하는 과학자인 칼 세이건의 역할이 컸습니다. 칼 세이건은 1977년 그의 책 'The Dragons of Eden' 에서 삼위일체의 뇌 가설을 소개합니다. 삼위일체의 뇌의 핵심인 파충류뇌와 변연계, 신피질을 언급하고 이 신피질의 발달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언급했죠. 제가 칼 세이건을 좋아해서 쉴드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그는 좀 억울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The Dragons of Eden' 에서 그는 삼위일체 뇌 가설을 100%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MacLean의 가설이 '만약에 맞다면' 이란 표현을 썼으며, 'a metaphor of great utility and depth.' (거대한 능력과 깊이에 대한 메타포)라고 덧붙였죠. 하지만 어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듣기나 했을까요. 당대 최고의 과학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그의 말에 '삼위일체 뇌 가설' 지지자들은 환호했을 겁니다.


이 후 미국의 작가 하워드 블룸의 책 'Lucifer Principle' 에서 다시 한 번 그 가설이 언급되고, 글린다 리 호프만의 책 'The Secret Dowry of Eve' 엔 삼위일체 뇌 가설을 기본으로, 더욱 과장된 형태인 '전전두엽(훌륭한 친구)'과 '편도체(불안한 친구)'의 협응이 인류 발전의 열쇠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더불어 2012년, 미국의 유명한 과학저널 Scientific American 엔 'Revenge of the Lizard Brain' 라는 제목의 게스트 블로그로 삼위일체 뇌가 자세하게 소개되었습니다.




미디어와 도서의 '인용가설'로
자리잡은 파충류뇌 개념은
이제 '돈냄새' 를 찾아갑니다.


뉴로마케팅를 믿는 집단에선 소비자의 구매심리와 두뇌의 활동을 연결시켜 이론화하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예를 들면 '컬러가 소비를 결정한다.', 'FMRI실험을 통해 뭘 자극했더니 여기가 붉어지더라.', '보상/처벌 기제를 통해 고객에게 어떤 자극을 줘야 한다', '광고를 보며 두뇌의 활동을 관찰하는' 의 실험과 결과치를 근거로 마케팅 전략을 구축했습니다. 이들에게 파충류뇌 이론은 '감정과 이성'을 분리시켜 접근할 수 있단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 했을 것입니다. 매우 단순화된 파충류뇌 모델에선 아주 정확하게 구조화된 이론들을 도출해 낼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 당장 고객의 변연계를 자극해라!'


이런 식으로 말이죠.


뉴로마케팅이 가장 과장되어 적용된 곳은 마케팅/경영컨설팅과 더불어 '교육업계'였습니다.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신피질을 자극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과도한 행동과 본성(파충류뇌)을 어떻게 조작해야 한다는 식의 아티클들이 학부모의 눈을 자극했을 겁니다. 신피질 기능을 올려준다는 드링크제도 잘 팔렸겠죠.


더불어 이러한 두뇌가설이 각종 주요언론들의 '정치, 사회적' 현상설명의 근거로 쓰이면서 그 공신력은 힘을 더해갔습니다. 더불어 각종 강사들의 '경영/리더십' 강의에선 어떻게 조직과 인재를 관리해야 하는 지에 대한 리더의 고민에 '삼위일체 뇌 가설' 이라는 매력적인 단서를 제공했죠. 리더들에겐 한줄기 희망같은 모델이었을 겁니다.


적절한 전문용어와 명쾌하게 이해되는 쉬운 모델은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쉬웠습니다. 생소하지만 적당히 지적으로 보일 수 있고, 이해를 마친 청중들의 끄덕임과 박수를 받기에 꽤나 유용했으니까요.





제4장.

그는 우릴 속인 것인가!


글쎄요. 삼위일체 뇌 가설이나, 좌뇌우뇌 구분설 등을 생각해보면 분명 현재 인정받지 못하는 가설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무용' 한 것은 아닙니다. 


MacLean은 삼위일체 가설을 통해 변연계가 감정과 연관이 있단 사실을 밝혀냈고, 심리학적으론 파충류/원시뇌 이론이 인간이 두려움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모델로 꽤나 유용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가설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물론 비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과학이론들은 가설을 검증하고 반증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때문에 검증과 비판의 과정만으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가능성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과학사 관점에선 '좋은 시도였다.' 정도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크사이언스를 만드는 건 과학자라기 보단 그 개념을 확장하고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다른 영역과 결합시키는 미디어나 비판없이 '그런 것이 있다더라.' 를 수용하는 학습자일지도 모릅니다.



보통 우린 언론에서 제시한 아티클에 '파충류뇌' 이론이 등장했을 때 '아 이런 이론이 있구나!!' 라며 신기해하고 자세히 읽어보며 습득합니다. 그러나

왜 인간에게 파충류뇌가 존재하는가? 인간은 포유류인데? 이게 진화적으로 옳은 주장인가?'

를 따져보며 파충류의 신피질 존재유무를 살펴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좀 피곤한 일일겁니다. 



다만, 어떤 지식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거나 몇 줄 만으로도 쉽게 이해가 된다면 한 번쯤은 자세한 내용을 찾아보는 것이 좋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오랜 시간동안 삼위일체 뇌 가설은 인터넷에 '진실'로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게 '과학적진리'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해서 갑자기 부끄러워하거나 가설을 비난할 필욘 없습니다. 분명 삼위일체 뇌 가설은 일정 부분 이해하기 쉬운 '은유'로써 두뇌모델을 제시했고, 사회과학이나 신경정신의학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MacLean은 뇌과학 분야에 큰 공헌을 한 과학자이자 의사입니다.


사실 거짓말을 한 건 MacLean이 아닌 미디어와 비과학자들이죠.


제가 '거짓말' 이라는 언어를 쓰긴 했지만 사실 거짓말을 한 건 MacLean이 아닌 미디어와 비과학자들이죠. 


그들은 이 이론에 논란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새로운 이론을 업데이트하는 데에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중들이 쉽게 좋아할 만한 개념들을 그럴싸하게 '필요에 의해' 써먹었을 뿐이죠.


어찌보면 MacLean이 원했던 그림은 이런게 아니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린 그의 가설을 부인하기 보단, 그의 가설에서 어떤 것을 이해해야 하는 지, 다른 의견들은 어떤 것이 있는 지. 흥미를 지니고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 올바른 근거를 지닐 수 있고, 직업적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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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a Feldman Barrett,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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