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기 좋은 이상적인 세상이 아닌 실질적인 생활이 되어야 한다.
둘째 딸이 태어나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더니 신생아실에 아기 바스켓에 누워있는 아이의 수가 5명이었다. 분명히 한 달 전에만 해도 산전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의 13명 정도의 산모들은 모여서 왁자지껄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거짓이었나 싶을 정도로 소수의 산모가 산후조리를 했었다. 그때가 2017년 6월이었다. 조리원에서 뉴스를 보는데 그 당시 한 주의 출산 인원은 0명이라는 기사도 나왔었다. 내가 바로 출산의 현장에 있었는데 꼭 허구 속 이야기 같아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이라고 이웃나라 일본보다도 출산율이 낮은 한국의 상황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 비혼주의, 딩크족의 증가. 왜 결혼하지 않으려고 할까? 출산을 왜 안 하지?라고 질문을 던져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사실 그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답답할 따름이다. 정부에서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시행하고 많은 사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그 효과가 단기적이거나 일회성이라서 정작 미혼여성, 기혼여성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대에 출산한 엄마들’에게 ‘아기 낳아보니 어때요?, 아이들을 키우는데 어때요?’에 관한 질문에 한결같이 “힘들다” “육아는 어렵다”라고 반응한다. 첫 대답에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해요”라고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 좋아요.”라고 하는 대답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우리나라 어린이집의 보육 서비스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월등하다. 몇몇 문제시되는 어린이집이 매스컴에서 나와서 상당히 좋지 않은 인식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보육 서비스를 통하여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진 성과는 분명히 있다. 오히려 외국의 보육시설들을 막상 가보면 생각보다 어두컴컴하거나 교사가 친절하지 않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깊이 들여다보면 교사가 정말 친절하지 않다기보다 ‘우리나라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친절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생님들처럼 아이들을 밀착해서 보육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것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평가인증제도에서 ‘상호작용’에 대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작용이란, ’교사는 영유아를 존중한다’라는 지표를 바탕으로 영유아를 대할 때 민감성과 공감능력, 언어적 & 비언어적 표현 읽어주는 관계에서 나오는 반응을 말한다. 교사라면 다 평가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고 그 내용은 기본적인 편이다. 오죽하면 평가항목에 상호작용이란 영역이 있을까도 싶지만, 교사의 자질을 갖고 있다면 그 결과는 잘 나올 거라 대부분 수긍하며 평가에 임하게 된다. 이런 항목들을 통과한 우리 선생님들이 출근해서 퇴근까지 얼마나 아이들을 잘 보육하는지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공장에서 뚝딱 제조하면 되는 사물들이나 주어진 입력신호대로 나오는 로봇이 아니고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human being, 人間]’을 케어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힘든 부분이다.
이런 양질의 사회적인 보육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출산한 엄마들’의 반응은 어떤가. 대부분 경제생활을 하고 있던 여성들이 출산으로 인해 ‘본인의 직업, 일’에 대해 일차적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출산휴직은 3개월, 육아휴직은 1년에서 2년 사이로 정해져 있는데 복직을 앞둔 때는 아이들은 거의 돌을 갓 넘은 상황이니 이 아이를 두고 복직이 가능할지, 복직한다고 했을 때의 근무 시간이 어린이집 운영시간과 맞지 않았을 때 베이비시터를 이용하는 등의 그에 맞는 대비를 한다거나 아팠을 때를 대비하여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아예 일에 대해서 그만두는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그래서 최근 남편들의 육아휴직 사용에 있어서 관심을 받았지만,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남편들의 이야기지, 실제 업무상이나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여기서는 배제하기로 한다. 1차 고민을 한 우리 엄마들은 그 판단에 따라 만족적인 생활을 하면 걱정은 없겠지만 또 2차, 3차 고민과 위기들을 겪어야 한다. 개별차이는 있겠지만 어린이집 적응 문제, 낮아지는 엄마의 자존감 문제, 둘째 아이의 임신과 출산 등등. 항상 위기에 위기라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육아의 환경’은 의식적으로 만들어 준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나와야 한다. 함께 하는 육아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 또한 중요하겠지만 ‘육아의 세상’이란 단어는 공간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며 이상적일 뿐이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소통과 협력으로 인한 실천력을 끌어내는 ‘생활’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생활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최근 지인의 아들이 기차를 너무 좋아해서 열차의 '영유아 동반석'을 예약해 탑승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영유아 동반 손님이 없는 만석 칸에 아이가 소리를 낼 때마다 오히려 눈치가 보였다는 것이다. ‘아니, 영유아 동반석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해?’ 그러다 보니 카페의 '노키즈존'과 열차의 '영유아 동반석'은 누구를 위한 구분일까?
쏟아져 나오는 육아서들에서 아이는 부모(양육자)를 통해서만 길러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곤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프랑스식 육아법, <프랑스 아이처럼>에서는 '프랑스라는 나라 안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다양한 육아법 간의 충돌이 별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주도적인 아이, 기본 인성과 올바른 생각 주머니를 키워나갈 수 있는 '인간의 성장'을 모든 어른이 상당 부분 동의하고 육아에 대한 기본원칙이 존재했으며 서로 존중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육아는 한결 편안하고 협력적인 양상을 보인다는 분위기란다.
우리나라가 품어야 할 우리의 아이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기본은 ‘사회적으로 아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다. 아이의 반응에 유난스럽지 않고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는 부모의 육아 태도가 확실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 아이의 신호에 대해 민감성을 발휘하여 연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존중해 주는 문화가 밑바탕에 존재해야 아동수당과 육아 급여정책의 힘이 더욱 강화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