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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r 25. 2017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

아직도 이 이야기는 유효하다. 존재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유명한 영어 문장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은 또는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햄릿"의 대사이다. 이 내용은 여러 영국 배우들에 의해서 무대에서 공연된 동영상을 통해 다시 조명되기도 했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을 포함한 각각의 영화 속 유명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와서 각자 자신만의 엑센트와 강세로 대사를 다시 되풀이하면서, 단지 한 문장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과 생각이 "존재"하며, 그 표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려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TR__LiueM


각각의 배우들은 서로 다른 강세와 표현을 가지고 대사를 읊으며 언쟁을 하며, 각기 다른 주장으로 고집을 부린다. 아이들처럼 순진하게 서로들 이 문장을 이야기해 가는 과정은 정말로 재미있다.


서로 웃고 웃기는 흥겨운 무대이지만, 그만큼 배우와 연출자 등이 한 문장에 있어서도 저마다의 다른 양상의 연기를 보여주게끔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드러내 준 것이다. "Or(또는)"에 강세를 주면 "선택"이 "Question(문제)"가 되고, "Not To Be(죽느냐)"에 강세를 주면 "죽음, 없음"이 문제가 된다. 문장 전체를 잘 발음한다면 물론 생과 사, 진행과 진행하지 않는 것 두 가지에 대한 딜레마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이 극을 마치 사회적 합의처럼 해석하는 공통적인 내용이긴 하다. 결국 "딜레마"가 Question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공유된 해석을 벗어난 논쟁 포인트가 많다. 결국 하나의 단편적인 문장으로 극 "햄릿"을 해석코자 하는 것을 비록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이 문장은 결국 "To Be(사는 것, 존재하는 것, 진행하는 것)"에 대한 복합적인 고민과 성찰을 요구하는 극 전체의 내용에 대한 정말로 핵심적인 사유를 요청하는 중의적이고도 다층적인 문장이며 극을 가로지르며 생생히 관객들을 끌고 가는 핵심적인 문장이 분명한 것이다.


이 표현의 대중성에 착안하기라도 한 것일까? 나치의 공노 할 만행을 경유하면서 생을 살아간 신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To Be"에 강세를 둔 마냥. "To Have or To Be (소유냐 존재냐)"라는 제목의 책을 써냈다. 이 책은 결국 햄릿의 문장의 한 곳 "To Be"에 강세를 둠으로써 장대한 극의 진행을 "존재"의 문제에 대한 성찰로 몰고 가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햄릿이라는 극 자체가 이 존재의 문제에 대한 강렬한 성찰을 다룬 극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더 이상 인류는 급여를 더 받고 경제적인 상황을 호전시키며, 과학 기술과 마케팅을 발전시켜 기업의 이익을 늘려가는 것 외에는 신경 쓰지 말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공간으로 이 지구를 진화시켜왔다. 이 극단에 이른 것은 결국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인공지능의 개발이며, 이에 대응하는 기본 소득이라는 정치적인 쟁점을 낳는 개념조차도 결국에는 "To Have (소유)"의 문제에 핵심을 두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일단 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행복의 개념이 그것에만 멈춰있다는 것이다.


존재의 영역마저도 어쩌면 인공지능이 다 가져가 버릴 수 있는 것이 미래의 모습인양 그려지기 때문이다. 우리 대신에 우리가 존재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인공지능은 나아갈 것이며, 저 멀리 우주와도 연결되고, 유한한 능력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영역까지 다가갈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 사회에 이르러 우리가 소유의 문제에만 천착함으로써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 허무하고 텅 빈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좀 더 원래 인류의 모습답게 존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 시대는 지금으로부터도 40년 전인 1976년이다. 문제가 제기된 뒤에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그의 사상에 열광하면서 1900년대 말까지도 그의 사상의 생명력은 나름 영향을 끼쳐왔지만, 지금은 그러한 영향력은 사그라들고 요가나 명상 등의 또다른 상품화된, 소유 구조 안에 파생되어 있는 제품 정도에 그쳐 있다. 적어도 내 눈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결국 그가 의도하고 원했던 대로 세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물론, 티베트나 부탄처럼 마음의 평화와 더불어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의 사회를 가진 극소수의 국가들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이상향이라기보다는 그저 다른 소수로 분류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른바 직함과 기능, 권력, 돈, 매력 등을 소유하는 것에 천착하는 사회로부터 보다 존재하고 나누고, 공유하며, 사랑하는 사회로 방향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에리히 프롬이 했지만, 이와 같은 내용들은 열심히 활자화된 성찰들을 읽으며 존재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의 극에 스토리화 시켜서 사람들 속에 내재화되어 있는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을 유지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 의미로는 "상품화"되어서 살아남아 있을 뿐인 듯하다.


세계는 "소유"하기 위해 전력을 쏟는 사람들로 뒤덮인 그 예전의 상태 그대로 수십 년이 더 흘러왔다. 생존하기 위한 소유의 선까지 만을 추구하고 나머지의 삶을 존재하기 위한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제대로 삶의 양식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소수에 대비해서 말 그대로 존재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저 "잉여"라는 표현으로 비하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존재라는 개념의 파워는 상당히 커서 "지속 가능한 개발 (Sustainable Development)"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라는 등의 방식으로 거대한 소유자가 사회를 위해서 이바지해야만 한다는 다른 의미로는 존재 양식을 내재한 사람들의 심리를 건드려 또 다른 소비를 유도하고 소유에 천착하게 만드는 숨은 동기를 포장시키는 방식으로 거대 기업들에게 이익을 내기 위한 적정 수준의 비용을 투여하도록 만들고는 있다. 그런 의미 외에 존재하고자 하는 삶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추진코자 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이유는 직장생활을 그냥 해 나감으로써는 발견되기 어렵다.


유베이스라고 하는 "좋은 사람, 좋은 회사"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전면에 두고, 사람 중심의 기업 문화를 가진 회사에 적지 않은 시간 머물러 일을 해왔었지만, 이를 멈추고 효성으로 원래 해왔었던 Textile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이직을 했다. 그 결론을 내린 이유는 그 안에서 내가 처했던 모순에도 있었다. 다시금 이 업계에서 나 자신으로서 적지 않은 고객사들과 함께 인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비즈니스도 잘 해나갔었던 기억도 나를 이끈 또 다른 이유이다.


다만, 덜 존재함으로써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에 이만 종지부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제는 다시금 존재하면서 사는 삶. 나와 다른 이들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살아갈 길에 서고 싶어 진 것이다. 물론, 이 선택은 상대적으로 좀 더 존재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생활양식으로써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괜찮은 취미생활을 소유하고 있다고 뽐내거나 "잉여"로 사용할 만큼의 에너지와 여유가 남아 있다고 과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이 나답게 살아 있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뿐이다. 여기에 쏟는 시간은 일주일에 채 한시간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읽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간에도 정확한 세부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유무와는 크게 상관없이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위 "나를 바꾼 책"이다. 변화와 더불어 엄청난 파고를 넘어서야 하는 우리에게 아직도 이 책은 유효한 삶의 양태를 그려주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소유의 신장에 대해 막다른 길에 이르러 힘들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삶도 더 기대에 차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이 책의 울림은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2~30년이 지나도 당신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


To Be, 곧, 존재할 수 있다면, To Have, 곧, 소유하지 못하는 것도, Not To Be, 곧, 죽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그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삶에 대해서는 사실 자원 자체는 무한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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