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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y 15. 2022

<소셜 딜레마>-각각의 진실로 쪼개진 지구

SNS에 의해 파멸로 가는 인류. socialdilema.com

공론화를 요청하면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작품이기 때문에, 이 내용이 기억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이렇게 쓰고자 하는 욕구나 기억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기에, 나름, 사명감 비슷한 것을 지니고서 스포일러에 대한 경구 없이 쓰기로 했습니다.


"SNS로 뒤덮인 이 세계가 우리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주제"에 대해서 집중하게 된 이유는 이전에 제가 썼던 몇 가지 내용과 연결이 되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서 살아가야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단서를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가지고 있는 상황을 알아야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섬유 "마케팅" 일이며, SNS를 통해서 활발하게 제가 팔고자 하는 제품의 브랜드를 널리 알려야만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평균화된 제 또래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Facebook과 Instagram, 유튜브 등을 사용하고 있고, 따지자면, 이곳 "브런치" 또한 SNS 서비스의 분류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오고 있듯이 우리가 어떤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지 알아야, 벗어날 방안도 강구할 수 있고, SNS 본연의 순기능으로 바뀌는 것도 결국에는 기대할 수 있기에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일단, "넷플릭스"에서 이같이 강력하게 SNS를 비평 및 비판하고 있는 작품은 "돈 룩 업"이었고 이에 대한 감상평은 "<돈 룩 업>-진실에 눈 감게 하는 시대(링크 연결)"에 작성했었고,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대형 업체가 이미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를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다소 감각적으로 적은 "<지금 이 순간, 나답게 하는 것>(링크 연결)"도 있었지만, 그 해악을 좀 더 와닿게 설명한 다큐멘터리를 만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습니다. 2020년도에 나온 작품이었는데 왜 이제야 이것을 봤을까라는 후회가 몰려들 정도였습니다.


공리적인 차원에서 이 같은 다큐멘터리가 어쩌면 "넷플릭스"같은 플랫폼에 대해서도 자정의 목소리를 울리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인데도 계속 등재하고 있는 것이 일종의 "아이러니"같으면서도 영향력 있는 미디어의 책임을 수행하는 모습이라 다행스럽게도 느껴집니다.



떠오르는 중요한 포인트 몇 가지 만을 적는 것이 아마도 이 글을 볼 분들의 인내심이 제가 얻은 몇 가지의 내용을 끝까지 읽도록 만들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적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도 나오지만, "진실은 지루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 지루하지 않게 충격적인 영상과 더불어 만들어진 작품을 직접 보게 만드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구글과 페이스북, 핀터레스트, 유튜브 등에서 중요한 일을 하다가 나온 사람들이며, 자신들이 클릭 수로 대표되는 콘텐츠에 대한 조회 수를 파격적으로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다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증언하는 내용 속에 있는 진실의 무게는 상당합니다.


"통상 제품이라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고 이를 파는 과정의 연속일  있는데, 만약 누군가가 아무런 대가를 제시하지 않고 어떤 서비스를 무료로 주고 있다면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 , 우리가  제품이다".


페이스북과 구글 등의 SNS 서비스가 파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관심"이라는 제품이다가 설명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품을 사는 것은 그 관심에 맞게끔 자신들의 광고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수많은 이들의 필모 그래피, 정체성, 유형화된 소비자로도 분류된 수많은 이들의 정보이죠.


그런데, 이 수익 모델이 더더욱 무서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이 같은 소비자의 정체성과 행동 양식, 심리 등을 광고주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된 인터넷 기술뿐만이 아닌 심리와 행동 등에 대해서 수많은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익숙하게 알고 통제하고 조작해낼 수 있는 이 거대기업들의 이미 인공 지능화된 컴퓨터 엔지니어링 사이언스입니다.


광고주가 원한다면 그 막대한 기술력을 동원해서 1%의 변화라도 필요하다면 만들어낼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죠.


"그로스 해킹"으로도 유명해진 소비자로부터의 관심을 해킹해서 기업에 대한 관심으로 변환시키고, 이를 통해서 엄청난 비즈니스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기술 또한 이 오랜 역사 속에서 개발이 되었고, 이제는 현생 인류 개개인은 이 기술의 발달 앞에서 더 이상 무엇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도당하고 있는지 추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모바일 제품과 컴퓨터 스크린을 앞에 두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수천 명에 달하는 기술자와 거대 슈퍼 컴퓨터 시스템이며 하나하나의 개인은 이 같은 거대 기술 기업 앞에 취약한 정도가 아니라 그저 컴퓨터의 노드 하나로 분류되는 극소 단위의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이 같은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각 개개인의 관심사를 파악해서 이들이 SNS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클릭 수를 높이도록 유도할 수 있는 취향과 환경, 정체성에 맞는 정보를 가공해서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가짜 뉴스가 되건, 편향성에 치우친 극단적인 정치적 관심사가 되건 기업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인 "수익성 확대"라는 기준에서 디자인된 시스템은 그저 각 개인 앞에 구미에 맞는 정보가 나타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광고주의 광고를 넣음으로 해서 광고주의 매출과 수익이 늘어나는 것을 돕습니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그만큼 실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이나 현상의 이면에 있는 변하지 않는 진실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고와 논의를 통해서 파악하는 과정으로부터 각 개인이 멀어지고, 오로지 자신이나 자신이 유형화되어 분리되어 있는 집단이 접하는 정보만을 경험토록 함으로써 편향적인 사고에 빠져 버리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모바일 문명에 페이스북 등의 SNS가 접목되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의 유형이 통계와 더불어 나타나고 있다."


거대 SNS 기업에 근무했던 이 인터뷰이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같이 각 개인의 정보가 양극화되거나 극단화됨으로써 오는 "내전 발발"의 가능성과 "지구온난화"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같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인류의 위기에 대해서 제대로 인류가 대응하지 못하고, 실제로 벌어지는 위기 앞에 취약하게 노출됨으로써 공멸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이 아무런 변화 없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서비스가 독재자나 권위주의적인 인물에 의해 통제되고 이용된다면 "민주주의"라는 것은 궤멸할 것이며, 지구는 보다 빠른 종말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는데, "페이스북"을 전 국민이 필수적인 어플로 맹신하여 사용하던 "미얀마"가 페이스북을 통해서 살포된 무슬림 소수 민족에 대해서 행했던 편견과 선동의 살포로 인한 로힝야 족의 대량 살육과 축출 등의 내용이나 미국 선거판에 개입하기 위해 미국의 SNS에 영향력을 가해서 미국민의 분열을 촉진했던 러시아의 "푸틴"이 행한 해악도 그려지고 있습니다.


'20년의 이 작품은 어쩌면 오늘날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예견하고 있는 작품인 듯해서 일면 간이 쫄깃해지는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또한 미국 내의 10대 소녀들의 자살률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SNS가 모바일 문명에 접목된 그 2000년 초 경의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그래프로 정확히 나타나고 있어, 필터 앱이나 여러 SNS 서비스에서 왜곡되게 나타나고 있는 수많은 10대의 가공된 자랑질과 뽐냄에 주눅이 들고 우울증 발발 확률이 늘어난 그들이 처한 불행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또한 드러냅니다.     


미국의 10대 소녀의 실제 삶과 연결된 데이트를 실제로 하는 비중도 파격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내용은 SNS 서비스가 실제 사용자의 행복과는 무관한 서비스를 확장 중인 사실을 도드라지게 드러내 줍니다. 현실 속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져 우린 점점 더 SNS에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도록 통제 당하며, 이것은 마술 내지는 마법과도 같은 수준의 기술 격차에서 오는 유도이기 때문에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제품을 사는 자들을 사용자(User)라고 부르는 대표적인 산업은 마약과 SNS다"


여기에서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듯이 SNS를 사용하며 그 중독의 해악을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가상 가정이 등장합니다. 3남매와 부부로 구성된 이 가정은 SNS의 해악을 인식한 부인과 큰 딸에 의해서 스마트 폰을 저녁 시간 동안이라도 사용하지 않는 초강수를 두고 저녁을 함께 먹으려 합니다.


그러나 가장 취약한 심리를 가진 막내딸이 스마트 폰이 들어가 있는 타이머로 잠금 처리가 된 유리병을 깨뜨리고 자신의 스마트 폰을 다시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그 같은 중독을 막는 것이 어려운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SNS에서 중역 일을 하고 나왔다고 하는 한 인터뷰이는 자신이 모바일폰에 중독되어 잃고 있는 행복을 다시 찾기 위해서 직접 중독을 벗어나기 위한 앱도 만들고 퇴근 후에 폰을 차에 두고 내리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봤지만 여의치 않았던 현실을 고백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인터뷰이들은 SNS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그 해악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스마트 폰을 통해서 해당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게끔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대략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 좋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SNS 서비스를 놔두면 인류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이러한 비관적인 위기의식을 모두가 동일하게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에는 서비스에 대한 규정과 규제를 재편하고 수익 모델에 대한 변화를 추구한다면 이 해악을 줄이거나 없애고 다른 양상으로 갈 수 있을 것이란 강력한 낙관성을 드러냅니다.


그런 낙관적인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서 어쩌면 자신의 경력의 폭을 축소시킬지도 모르는 인터뷰에 솔직하게 응할 수 있었을 것이겠죠. 그 덕분에 실제로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는 개인 정보 상용에 대한 규제안을 일부 만들고 개인 정보 사용에 대한 설문과 변화를 조금이나마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근본적인 변화에는 이르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작품의 끝에 바로 지금 행동으로 취할 수 있는 내용을 여럿이 이야기해주는데, 그것은 모든 SNS 서비스 앱으로부터의 "알림"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첫걸음이 시작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주었지요. 저도 이 글을 마치는 동시에 일단 제 모바일폰을 들고서 각종의 알림을 모두 끌 생각입니다.     


금융권 앱에서 조차도 쓸데없이 오는 광고성 메시지를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제가 체크할 생각을 하고 일단은 모두 끌 작정입니다. 제가 선택하지 않는 정보가 저에게 와서 제 삶을 망치는 것을 막는 것만이라도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이니까요.


인터뷰이 중의 한 분은 "SNS 서비스를 끊어야 할 10가지 이유"란 책을 썼던 분인데, 일부 소수가 되더라도 이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고 단절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해당 회사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다소 현실적인 인터뷰를 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SNS가 망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이 그나마 이 지구의 인류를 보존하는 길이라는 현실적인 조언에 맞춰 이제부터 다르게 행동해보려고 합니다. 더 늦지 않은 타이밍에 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일을 위해서 SNS에서 진행해야 할 활동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과제도 하나 더 갖게 됩니다.


양날을 가진 검인 양 SNS는 잘 쓰면 인류를 돕고 개인의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언론의 탈 중앙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수단도 되지만 이같이 "수익 모델"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서비스가 단지 그 목적을 위해서 인류를 망가뜨릴 수 있는 쪽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이 잘 그려진 작품은 현재까지 이 이상의 작품은 없는 것 같습니다.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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