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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Dec 31. 2023

연쇄 실연 17범의 고백_1-3

사랑에 빠진 두 핸들러

(사진출처: Photo by KS KYUNG on Unsplash)


1-3 사랑에 빠진 두 핸들러


"난, 이젠 오빠 외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어"

갑자기 "LOSER 17"의 전두엽 속에 큼직한 여자 얼굴이 나타나서, 진지하게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는 영상이 나타났다. 입술의 가장자리를 깨물면서 파르르 떨리는 경련까지 나타나는, 약간 신경질적인 표정이 보인다.


"나도. 너 말곤 그 누구도 떠올릴 수 없어."

감동이 어린 목소리에 열정적인 욕망이 이글거리는 눈을 가진 남자가 그를 마주하며 단호함이 가득한 눈빛을 쏘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 남자는 "LOSER 17"과 얼핏 닮아 보이기도 했지만, 더 작은 키에 더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의 팔다리, 선이 훨씬 굵은 외모에 눈 위쪽으로부터 뻗어 내려오는 단호한 콧날과 더 크고도 깊은 검은색의 동공이 반짝이고 있는 눈을 갖고 있다.

(빙챗, Dall.E로 그림)



"이게 뭐야? 이게 뭐가 데인 이야기라는 거야?"

"마스터"가 예측했던 방향과 다른 이야기와 더불은 의식의 영상이 나타나자 "LOSER 17"이 자신의 의식의 목소리인지 아닌지 눈치채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그의 의식에 외치듯이 이야기했다.  


"불에 타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지는 연애 실패 이야기가 아니라 왜 갑자기 사랑에 빠진 부모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원래 내 생각하는 방식이 온천지를 다 돌고 돌아서 결론까지 가는 거잖아. 참. 나. 일단, 이걸 왜 당황스러워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지만..... 결국에는 원한대로 데인 이야기가 나올 테니 입 좀 닥치고 들어"


"LOSER 17"은 자신이 자기 자신과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금 두 사람 이야기를 먼저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거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던 내용을 다시 떠올려서 상상을 보태면서 떠올리고 해석해 본 거지. 두 사람 각각에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이다 보니, 기억을 거슬러 가는 동안 점점 더 구체적인 이야기의 형태를 지니게 된 거라고"


"마스터"는 "LOSER 17"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금씩 진정되었다. "LOSER 17"이 말하는 대로, 그 이야기는 곧 데인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었다.


"아. 그렇구먼. 그래, 기억을 떠올리고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 나란 걸 잠시 잊었어. 계속해. 그대로. 원래 하던 대로"

(빙챗, Dall.E로 그림)




"전에도 계속했던 이야기지만, 우리 엄마는 이른바 '천민자본주의의 화신'이야. 오직 돈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행복의 기반이자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어."


"알아. 당신의 집안이 얼마나 부자인지, 그리고 그분의 돈 욕심이 저 하늘을 찌른다는 것도. 하지만, 우린 엘리트 공무원인 핸들러들이라고. 퇴직해도 계속 정부와 연계된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알아, 하지만 엄마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지만, 엄마는 당신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우리가 샐 틈 없이 함께라면,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야."


"그…. 럴 수 있을까? 어떻게?"


남자는 여자의 손을 꼭 잡고, 미래를 약속하는 눈빛을 비추며 “샐 틈 없이 하나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렸다.




대통령과 장차관, 국회위원의 수도 최소화 되고 법관이나 판사, 검사, 기타 선출직 및 피선출직 공무원 등의 직업이 "AI"로 무섭게 대체되어 온 한국에는, AI에 의해서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마저 통합 및 최소화되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권력자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불신이 팽배해서 최대치가 되었고, 국민 투표가 벌어지는 사안 중에 국가 중요 의결 기관 인원의 AI 대체는 항상 높은 득표율로 찬성표를 얻었다.


그렇게 능력은 없는데 인기 좋은 사람, 여기저기 줄을 잘 서서 자리 하나 잘 챙기는 사람, 지역주의나 연고주의 등을 잘 활용하는 사람 등이 결국 자기 능력이나 실력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그같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자리에,


"자기 이기심"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 외에는 좀 더 생각할 능력도 지능도 인간을 이해할 감성도 없는 주제에 많이 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우여곡절 끝에 가장 먼저 도착한 나라가 "한국"이었던 것은 커다란 "기회"와 더불어 "위험"도 같이 낳았다.


AI가 만사를 결정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의사결정"을 항상 모든 곳에서 모든 일에 대해서 발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서 깨달았지만, 급변이라는 말조차 표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바뀌는 세계 속에서


"국가로서의 생존"이라는 최소한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치 정당"이라는 불완전한 의사 결정 구조를 계속 이어가는 조직에 있는 인간이 모두 AI로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에 거의 100%의 국민이 동의했다. 적극적인 동의였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다만, 완벽하게 범국가적 의사 결정 구조가 AI로 통합되어 입법권과 사법권, 행정권의 삼권분립이란 개념마저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데이터상의 오류나 물리/비물리적인 해킹 등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엘리트 집단"이면서도


"유능함"을 계속 유지하면서 부패하거나 타락하지 않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기관이 필요했다. 그것이 "핸들러"라는 "공개 추첨"을 통해서 선정되는,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각종의 오류 수정"만을 하는 집단이었다. 각 주요 기관의 수뇌부를 와해시켜서 통합한 형태였다.


일정 이상의 자격을 갖기 위해서 최소한의 기준점을 통과한 이 중에 오로지 "추첨"을 통해서 선정되는 이었고, 국내외의 그 어느 집단이나 개인에게 휘둘려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거나 방치할 마음을 갖지 못할 수준의 급여 등의 복지 조건과 더불은 권력이 주어졌다.


연령과는 상관없이 매년 수많은 이가 "핸들러"로서 "추첨" 대상이 되기 위한 각종 교육을 받았고, 이중에 1만 명 정도가 기준을 넘어 "추첨" 대상이 되었으며, 이 중에 300명이 추첨을 통해 업무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


그들은 이른바 "행운아"였기에, 처음에는 선출직도 아닌 이에게 권력을 주는 것을 거부하는 흐름도 있었고, 반발이나 저항도 있었지만, 전국을 확실하게 커버하는 CCTV 네트워크와 연결된 드론과 로봇, 무인 물리력을 대량으로 보유한 "한국"에서 각 국민의 일상을 모두 관찰하고 분석해서 데이터화할 수 있을 만큼 AI기술이 발달한 바,


"의사결정기관"이 결정한 내용을 평범한 "인간 집단"이 뒤집는 것은 거의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또한 인구가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전국적인 단위의 집단 항의나 시민운동의 힘은 매년 축소되어 왔다.



이 두 남녀는 그렇게나 대단한 "핸들러"로 추첨받은 국가 최고의 기관에서 만나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마치 히말라야의 최고봉과 한국의 변두리 야산 정상의 고도 차이와도 비슷할 정도의 커다란 "부"의 차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이 이뤄질 확률은 매우 낮았다.

(빙챗, Dall.E로 그림)

다만, 그들의 뜨거운 사랑은 이미 결실을 잉태하여, 여자의 몸속에선 "LOSER 17"이 자라고 있었다. 그의 인생이 결국에는 제대로 된 사랑과는 먼 삶을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인지도 잘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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