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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Feb 09. 2024

<카를로스 곤: 그는 왜 도망자가 되었나?>-무한탐욕

자기중심주의자의 끝 모르는 탐욕과 주변 사람이 보는 피해에 대한 무감각

(사진 출처: IMDB)


브런치에서 연재하는 브런치 매거진 "영화 찔러보기"에서 "카를로스 곤의 이상한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내용을 적었다(링크 : https://brunch.co.kr/@rpyatoo/479).


이 작품은 애플 TV의 4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과 비교하자면 "카를로스 곤"을 보다 유럽 문명적인 관점에서 더 두둔을 해준 작품에 가깝다.


최소한 3번째 에피소드에 이를 때까지는 애플 TV의 다큐멘터리도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와 일부 비슷한 논조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일본"의 배타성과 독재 국가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열악하고 "무죄추정"같은 개념도 사라진, 이미 혐의가 있는 것만으로 먼저 "범죄자"로 만들어 가두고, 언론에서 매장시키는 사법 체계의 무지막지함을 보여준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된 그 같은 사법 체계 하에서 재판이 진행될 경우에 10년가량의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카를로스 곤"은 자신이 70세가 넘은 뒤에 "무고함"이 밝혀지더라도 다시 재기할 수 없게 됨을 "자신이 법망을 벗어난 탈출"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십억의 보석금을 내고 일단 교도소가 아닌 외부 가택 연금을 선택하게 되는 조건으로 "일본 검경"이 "곤"의 재혼한 아내와의 연락을 금지하는 것이 "일본 사법 체계"가 서양대비 매우 후진적이고 비 인권적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내용으로 나온다.


이것은 넷플릭스의 다큐의 논조와도 같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에서 언급되는 "혐의가 입증되기 전에 언론에 터뜨려서 망신 주면서 기정사실화된 범죄자"로 만들기와 교도소 내에서의 척박한 인권 등에 있어서는 "일본"과 유사한 사법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도 기능하고 있고, 얼마 전에 한 배우의 자살 선택을 강요했었다.


이런 이유 등이 "탈출 시도"를 꽤 설득력 있게 합리화했기 때문에 이후에 그의 먼 친척의 인맥을 통해 연락이 된 전 "네이비씰" 출신의 "인질 구출" 등을 해온 이가 멋지게 "곤"을 악기 상자에 넣고 통관을 거쳐서 전용기에 태워 레바논으로 이동시키는 내용은 스펙터클 한 탈출 드라마처럼 "통쾌함"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출처: The Wallstreet Journal)


그러나 애플 TV의 다큐는 이전의 단편으로 한정되었던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가 약간 "일본"과 "곤"의 양비론 같은 느낌으로 흘러갔다면, 이와는 다르게 "배신감"을 정말로 "닛산"을 포함한 "일본"과 "프랑스", 그리고 그의 탈출을 도왔던 이, 시청자에게도 제대로 전달하고 있음을 마지막 편에서 드러냈다.


"일본"같은 나라가 갖고 있는 "사법시스템의 후진성"이 결단코 "곤"이 회사돈을 통해서 정당한 연봉이 아닌 자신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 불법적인 유령 회사를 차려서 결탁된 상대에게 간 돈이 다시 자기에게 오도록 만든 것을 합리화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과 친지와 더불어 회사돈으로 일과는 상관없는 여흥을 위해 고급 페리선 등으로 여행한 것 또한 인정받을 수 없는 공적 자금의 사적 유용임이 너무도 분명했었다. 이를 변명하는 "곤"의 말도 보다보면 가증스럽고 궁색하기 그지 없다.


그가 경제 위기 때 국내외 여론에 뭇매를 맞고 당시 일본의 자동차 회사 경영인으로서는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반으로 줄인 뒤에 이를 땜빵하려고 했다는 것이 정황 평가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절한 수준이나 방법을 넘어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다수의 나를 포함한 시청자에게 그가 보다 더 가증스러운 "사이코패스"로 느껴지는 부분은 그를 구하기 위해서 애썼던 구출팀의 아버지와 아들이 미국에서 체포되어 일본으로 범죄자로 인도된 뒤에 "고문 수준"의 처우임이 분명한 독방 생활을 수년간 하다가 건강 악화와 장애로 인해 풀려난 뒤의 박대다.

(출처: Bloomberg.com)

선구출 후사를 생각하고 우선은 "곤"의 목숨을 살려냈다고 생각하고 탈출을 시켰던 이가 그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고초를 당하고 풀려났는데, "곤"과 그의 아내는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고, 보석금 등으로 입은 손해에 대해서 도움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 묵묵부답했다고 한다.


범죄나 범죄자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으나, "같은 레바논인이고 먼 친척을 통한 인맥"도 이유였던 나름 통쾌했던 "후진적 사법 체계"로부터의 탈출이 의미 없이 그저 한 명의 "사이코패스"가 부정축재한 재산을 제대로 쓸 수 있게 해주는 일에 불과했었던 것이 열받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후진적 사법 체계에 대한 비판도 최근 힘을 잃게 된 것이 “르노”를 통해 “프랑스” 역시 “곤”에게 재판을 요청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도 “곤”은 아직도 자기가 피해자라고만 주장한다. 가장 가증스럽고 사악한 가해자이면서.


(출처: Car and Drive)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가 세계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강행했던 강도 높은 근로가 필요했던 높은 성과 목표 때문에 "프랑스 르노"에서 근로자가 자살한 것에도 제대로 된 애도 같은 것이 없었다는 이전의 넷플릭스 다큐 내용에 더해서 "곤"은 "닛산"에서 자신의 밑에서 일했을 뿐인 무고한 캐나다 직원의 인생도 망가뜨렸다.


다큐에서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닛산"과 "르노"의 근로자와 관련자가 그로 인해 실추된 기업 이미지 때문에 또한 고통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겪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중에 단 한 명에게라도 미안함을 느끼고 자신이 적법하지 못한 방법으로 지은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긴 할까?


극의 끝에도 이미 결론은 너무 명확하게 보여서 더 이상의 질문이나 답변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는 끝까지 "곤"일 것이고 그로 인해 그보다 훨씬 큰 희생이 더 많은 사람에게 벌어지고 심지어 죽고 다친다고 해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 등에게 일어난 피해가 아니라면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이코패스"에게 한 조직의 수장을 맡기고 수많은 희생을 기반으로 한 실적 개선이 숫자로 나타나면 비즈니스계와 언론은 통상 칭찬을 한다. 그리고 그 "사이코패스"는 정당한 대가라며 인센티브로 엄청난 보수를 받아간다. 이로 인해 회사가 망하든 사회가 무너지든 그게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그를 존경하고 롤모델로 생각하고 여러번 인정하는 글을 썼던 지난 20여 년의 세월을 다큐 몇 편을 보면서 이제야 부끄러워하고 있다. 앞으로의 긴 세월 속에서 난 또 이와 같은 또다른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자"이자 "이기주의자"에게 농락당했음을 알게 될 것이고, 더 당하기도 할 것이다. 내 선택과도 무관하게.


그렇지만 그것에 회의를 느끼고 그냥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겠다. 최소한 이런 인간을 늦게라도 확실하게 발견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소극적인 방법이라도 멈추지 않고 그의 본모습을 알리겠다. 그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나와 우리가 그나마 중장기적으로 피해를 적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되리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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