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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l 08. 2024

연쇄 실연 17범의 고백 10-3(완결)

선택적 지각의 천국(마지막 회)

(그림 출처: Co-Pilot PRO, ChatGPT 4o, Designer, Dall.E3)


10-3 선택적 지각의 천국(마지막 회)


<지금 한국의 총인구는 몇 명인가요?>

저 먼 곳에서 질문이 들린다. 그 질문은 계속 반복되고 마치 양심을 찌르는 것처럼 수없이 반복된다. 엄청나게 빠른 펀치를 가진 종합격투기 선수가 코너에 몰아넣은 상대를 향해 날리는 펀치 같다.

<그걸 제가 꼭 알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그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 것 같기는 한데, 그 숫자를 꼭 알아야 할 이유는 내겐 없는 것 같다. 그건 원래부터 내가 풀어야 할 문제도 아니었고, 모른다고 해서 급여가 나오지 않거나 망가질 이유도 없다.


<그걸 모르면서 왜 그 자리에 있나요?>

그 질문이 좀 시니컬한 어조로 바뀌었다. "핸들러"란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잠시 젊었을 때 있기는 했었지만 알코올 중독에 가정 폭력범으로 직장을 잃은 뒤에는 그저 패가망신해서 무일푼에 가까웠다.


<아니, 제가 무슨 특별한 자리에 있다고 그러세요? 전 그냥 단칸방에서 겨우 숨 쉬고 사는 처지요>

그 답변을 남긴 뒤에 아주 한참 동안 저편에서 '어이가 상실된 듯한 침묵'이 흘렀다.


'뭐지? 이 위화감은?'


<당신은 지금 대한민국의 지배자예요. 시스템이 도대체 어찌 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질문이 아무리 가치 없이 해석된다고 해도 그런 무책임한 답변을 해도 되는 거예요?>


'아차. 방금 '마스터'의 서버로 다이빙을 했던 거지? 잠깐 내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건, 텍스트로 전환된 정보군. 누군가 나에게, 아니, '마스터'에게 직접 정보를 문의하는 신호를 읽어 낸 거야'


'아버지, 지금 제 말이 들리시나요?'


대번에 다이빙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들. 죽고자 했던 게 통한 건지 살아 있다. '마스터'의 서버 안으로 들어왔고, 누군가 데이터로 물어온 문의를 들었어'


'그게 누군지 아시겠어요?'


'그게 궁금하진 않았는데..... 아? 이거 바로 송신자가 누구인지 눈앞에 떠오르는구나'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AI 단지 스파이더 빌딩 90016호, 저출산 대책 실행팀장 김 계식 46세, 부인 석 현정 44세, 컨택 용건. 마스터의 정확한 총인구 파악을 통한 출산 반등 안의 실행 논의......>


끝도 없이 떠오르는 세부적인 정보가 단, 한눈에 파악되면서 지난 수년간 김계식 팀장이 '마스터'의 지시하에 실행으로 옮기고자 설정된 스토리가 압축되어 나온다. 신기하게도 약 10여 초 만에 모든 상황이 이해됨과 동시에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뇌의 크기가 확장된 듯이.

'아버지,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스크린에도 아버지가 보고 있는 내용이 보여요'


'뭐라고? 이 내용을 너도 다 한 번에 보고 나처럼 이해할 수 있는 거니?'


'아니요. 일일이 다 읽고 이해하기엔 너무 방대한 정보인데, 키워드 몇 개가 정확히 떠올라서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네요. 아버진, 지금 이 정보를 한 번에 다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마스터'의 서버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만으로 이런 현상을 잘 이해할 수는 없는데 말이야. 마치 내 뇌에다 대형 확장팩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 마냥. 생각하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 너무 쉬워'


"LOSER17의 아버지"는 자신의 의식이 "마스터"의 서버 안으로 들어와 달라졌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데이터를 의식으로 볼 수 있다면 의식을 변환해서 시야를 내외부로 확장할 수 있음을 또한 알게 됐다.


"아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그의 좌표를 향해 CCTV 네트워크가 가동되고 드론이나 무인기기에 교차 연결되는 영상을 통해 그가 교도소의 사무실에서 누구의 제지나 감시도 받지 않고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스크린 안에 바로 이같이 그가 보는 영상과 텍스트가 뜨고 있었다.

순간 무한대로 그가 아들을 보고 있는 영상을 아들이 보고 있는 영상이 스크린 안에서 확장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이 영상에 대해서 철저한 보안이 적용되어 그와 아들 외에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생각보다 빨랐다.  


'이제 '메인프레임'은 내 몸은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의식에 대해서는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 나는 이 서버 안에서 나를 여러 네트워크와 연결해서 무한대로 접촉을 확대시키면서 '마스터 놀이'정도는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이거, 그냥 껍데기만 '마스터'가 되는 게 우리가 노린 것이었는데, 그냥 '마스터'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요'


<마스터, 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변이 매우 중요해요. 당신이 이 코딱지만큼 밖에 안 남았지만 소멸되기 직전의 국가의 사람들에게 희망찬 대책을 발표한 이후에 기하급수적으로 '이민과 유학, 해외 취업과  결혼, 이주 신고 등'이 다 취소되면서 다들 여기에 남아 아이를 낳고 살기로 변심했다고요!>



앞서 "마스터"를 가장한 "LOSER17의 아버지"의 대국민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았었다.


"저출산 방지를 위한 수많은 대책이 지난 수십 년간 수백 번 나왔지만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된 기대해 왔던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정치 정당이 존속하던 시대엔 정당 이익에 따라 흔들리며 실패했죠.


'핸들러'같은 가공할만한 권력을 쥔 조직이 지배할 때는 한 줌도 안 되는 그들의 이익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뭘 만드는 시늉만 했을 뿐 배정된 예산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실상 방치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있는 "인간"인 여러분은 결국 이것이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동의했었습니다. 그래서 저출산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저를 장치했지요.


지금 이 방송을 보고 듣고 읽고 있는 여러분 중엔 "인간"도 아닌 기계란 것에 반감을 갖고 있는 분이 적잖이 있을 겁니다. 거기에다가 제가 세우고 실행한 3번의 큰 대책은 모두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지난 수십 년 내내 실패한 것에 더해서 더 절망에 빠진 여러분이 실망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움직임이 더욱 커졌고, 나라 잃은 국적의 난민이 되기를 자청한 이가 수없이 늘어 나왔음을 모르는 이는 적어도 이 방송을 접하고 있는 이중엔 없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전의 한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맹렬하게 무너뜨린 인간 지도자들이 잘하지 않던 발언인 "죄송합니다"를 상대적으로 더 쉽게 하고 있네요. 그게 지혜라고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정치적인 술수나 제 권력을 더 높게 올려서 제 재산을 증식하고 제 자손에게 더 많은 재화가 가야만 한다는 탐욕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게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여러분은 잘 알 겁니다.


3번의 실패와 더불어 한 명의 샘플을 잃게 되긴 했지만 집중적으로 연구 분석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단기적으로 빠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러분 각자가 살고자 하는 이상적인 삶과 꿈, 성향, 성적 지향, 매력에 대한 기준, 생활의 수준, 교육의 정도 등을 충족하는 삶이 충분히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지원을 일관되게 해 준다고만 해서 여러분은 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자 하지 않을 겁니다. 남녀의 고용조건을 최대한 평등하게 해 주고, 출산과 육아에 따른 불리함을 최대한 해소해서 여성이 마음 놓고 임신하고 출산하게 해 준다고 해서 더 나은 지위를 가질 조건을 버리고 더 많이 아이를 낳을 결정을 하는 여성이 순식간에 확 늘어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조치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조금씩의 출산 확대를 낳는 효과가 생기도록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않습니다. 변화된 환경을 맞은 이들은 다시금 이 세상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환경의 문제나 자원의 배분 문제가 더 악화될 것이란 불안의 이유를 찾아낼 것이니까요.


궁극적으로 이 모든 저출산의 문제를 해소하려면 없이 살고 저임금에 나라 발전을 희구했던 개발 독재 지도자를 따라서 나라를 뒤로 후퇴시키고 군대 병영과도 같은 환경을 꾸며야만 한다고 오해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만 다 무지의 소산임이 밝혀졌지요. 과거로 가는 게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으니까요.


모두가 더 가난해진다고 아이를 더 낳을 리가 없고, 모두가 더 부자가 된다고 해서 아이를 더 낳을 리는 없을 것이란 게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국에서 사는 삶에 대해서 만족하면서 자신이 꼭 같이 살고 싶은 이를 보다 더 잘 찾고 맺어져서 아이를 낳고 살게 만드는 방법에는 "프로메테우스사"가 만든 "일루미네이션 공원"의 뛰어난 가상과 현실의 통합이란 희망이 보였습니다.


물론,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이 "프로메테우스사"를 만든 것이 아니고, "일루미네이션 공원"에 적용된 가상현실의 기술은 철저히 상업적인 것이지 그곳에 엄청난 휴머니즘이 실제로 광고한 이상으로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저란 인공지능조차 "프로메테우스사"가 만든 기술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여러분은 외국 기업 자본에 이 나라를 넘기잔 이야기를 제가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저에게 적용된 기술이 무엇인지를 떠나서 저에겐 가장 중요한 목적 하나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는 "사명감"이 탑재된 대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존재입니다. 그것 하나 외엔 사실 제대로 인간이 프로그래밍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존속"입니다.


"프로메테우스사"는 제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면 다른 국가에 저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용 인공지능을 만들어서 더 고가에 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한국"의 이익인 동시에 그 기업의 이익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고 싶은 말은 그 회사가 싫어할 겁니다.


여러분이 저 없이도 인구가 소멸되는 국가가 아닌 채로 계속 지속하며 번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이곳 국회의사당에 특수 부대를 보내던지, 저 멀리에서 태양광과 수력, 풍력, 지열 등 모든 재생에너지 자원 중에 제게 투입되는 전력을 있는 대로 다 차단하면 될 것입니다. 차단한 후에 중고로 "프로메테우스사"에 반납을 하던지 다른 나라에 팔던지 초기 구매가에 유사하게 팔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아마 잘 알고 계실 거지만 이야기할게요. 최근 대다수 한국인의 주의력은 10분 이상을 잘 넘기지 못합니다. 이미 아까의 사고 내용 발표 이후에 20분 가까이가 흘렀어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알았다. 내가 학업을 할 때만 해도 평균 30분은 주의력이 유지되던 시대였는데 많이 맛이 갔구나'


""일루미네이션 공원"에 전 국민이 접속하는 동안 각각의 최대한 자신에게 알맞게 설정한 삶의 방향과 조건, 현실, 주거 환경, 다니는 학교, 연애 상대의 외모 등의 조건 등을 입력하게끔 할 겁니다.


이것을 입력하는 주기적인 기간은 매 30년에 1회씩입니다. 그렇게 입력된 자신의 답변을 중심으로 각 개인이 원하는 삶의 조건이 설정된 가상현실이 각각의 내장칩으로 다운로드됩니다.


그다음부터 "일루미네이션 공원"서버와 저 "마스터"의 서버가 통합 형식으로 결합하여 각 개개인이 원하는 삶을 가상 속에서 현실의 감각과 최대한 가까운 상태로 누릴 수 있게끔 만듭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모드가 적용될 수 있는데, 부모의 선택에 따라 3.5세 전 독립적인 의식을 갖기 전부터 가상현실 속에서 살게 만드는 "MT방식"과 고대 마야 문명의 방식대로 소규모 문화나 종교 공동체에 대해서는 태어난 때부터 죽기까지의 인생을 하나의 노래나 서사시로 만들어서 그대로의 삶을 살도록 만드는 "MS방식",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현실을 인식하는 상태에서 가상에서 살길 선택해서 살아가는 "SR방식"과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말소하고 새로운 기억을 조작해서 넣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BI방식" 등이 있습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지 "프로메테우스사"와 저는 각각의 가상현실이 모순 없이 교차될 수 있도록 운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가상에서는 유명 가수로서의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자가 고급 식당의 오너라고 생각해서 만난 이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고 아이를 낳고 평생 살아가게 되지만 현실에서 고급 식당의 오너는 분식집의 요리사고 유명 가수는 그저 공연 창구 티켓 판매원일지라도 가상의 설정대로 마주해서 살아가도록 현실을 왜곡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의 특권 계층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길 원하며, 가상으로 변하지 않은 상태의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길 원하는 이에겐 이 같은 가상현실의 삶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주어진 현실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며 주어진 현실 경쟁의 조건에 맞게만 살아가면 됩니다. 타 가상 시스템 속에 병합된 이에게 이 특권 계층은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NPC(Non-Player Charactor)로 스쳐 지나가는 존재지만 말이죠.

여기엔 특권 계층에 대한 부러움과 특권 계층이 하위 계층을 바라보는 경멸감 같은 것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됩니다"


'제발요. 아버지. 지금쯤 반 이상이 채널을 돌렸을 거예요'


"이제 이야기를 줄이겠습니다. 전 여러분이 현실을 왜곡한 채로 가상에 속아서 살아가는 존재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 개인이 결혼과 출산 등을 결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너무나도 복잡한 관계로 그것을 일거에 충족할 수 있는 체제 변화가 이전 시대엔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과학 기술로 가능해진 이 시대에서 적용할 수 있는 "선택적 지각 현실 왜곡 시스템"만이 한국을 지속가능한 형태로 반전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맞춤형 해법이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각자가 원하는 직업을 가상에서 가진 뒤에 현실의 직업이 그 경제성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어쩔 것인지 등의 실행 이전의 수많은 질문이 여러분에게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가상의 화폐는 가상의 경제 공간에서 하는 일을 통해서 정해질 것이라고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가상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의 세계에서 실제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할 것이며, 개인의 설정에 따라서는 현실의 물리 및 경제적 원칙을 벗어나기도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저의 대안은 이제 다음 달부터 실행에 들어갈 것이고요. 여러분 각자에게 여러 정보 채널로 동일하게 자신의 유일한 설정을 기록할 수단과 내용이 가 있습니다. 기입과 전송을 마치면 바로 그다음 달부터 한국은 가상과 현실이 이같이 통합된 유일한 체제로 돌입하게 될 것입니다. 망설임 없이 보다 많은 한국인이 이 세계 속으로 용기를 내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이 제안이 가치 없게 여겨지고 의구심이 든다면, 꼭 특권 계층에 속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가상과 유리된 차원의 현실만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드립니다. 그 선택은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몫이고 여기에는 강제는 없습니다. 바로 그 강제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 제안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게끔 만들 테니까요. 다만, 가상에 있는 이들에게는 계속 NPC로 인식되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할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고자 합니다. 언제나 오픈된 질의응답은 실시간으로 받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서버를 분산해서 여러 약 인공지능 채널을 통해 항상 분산되어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니 어려움 없이 문의를 해주십시오. 다만, 형식적이나마 저는 여러분의 지도자이므로, 과정에서 예의를 갖춰주신다면 갖추지 않는 분에 비해서 좀 더 빠른 답변과 혜택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계식 팀장님, 답변이 제대로 나가지 못했던 것 양해 부탁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자 한국인구는 3,237,983명입니다. 그리고 이를 알고자 하는 것은 '일루미네이션 공원'과 저의 서버에 연결될 인프라 구축과 국민 범용 내장칩 구매 등에 관련된 예산 수립과 실행을 위한 것임을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일 매시간 못해도 최소 수십만 명과 대화를 하고 계실 텐데요. 가끔 이런 에러가 발생될 때마다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제 오해일진 모르겠지만 더 좋습니다. 기분 상하거나 하지 않았으니 오해 없으셨음 합니다. '마스터'님>


<앞으론 그냥 편하게 '마스터'라고 불러요. 저도 김팀장이라고 부르죠. 어때요 이게 더 친근하죠?>


<황송합니다. '마스터'. 다음에 또 뵈어요>


'아버지, 인간이란 게 너무 잘해주면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기어오르거나 딴맘 먹는 경우가 있어요. 아시잖아요. 아무리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여론을 신경 쓰는 거라고 해도 이렇게 친절하진 마세요'


'그거 말이다. 내가 '마스터'를 통해서 확인한 게 네가 사랑한 첫사랑이 갖고 있던 생각 아니냐? 그 애의 아버지가 어설프게 '군주론' 읽고 전달한 생각 말이야'


'그나저나 아버지가 '마스터'가 약속한 대로 실행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만약 내가 그앨 이상형으로 정하고 가상 속에서 다시 내 인생을 시작하기로 한다면, 그 애가 만약에 날 자기의 이상형으로 지목하면 서로 만나서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건가요?'

'여기엔 많은 변수가 있어. 근데, 내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걔가 널 이상형으로 지목할 확률은 많이 낮을 것 같구나. 물론, 나도 이런 식으로 '마스터'가 되어버리지 않았다면 다시 네 엄마를 이상형으로 지정하고 '가상'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몸'이 없고 그 '몸'이 이상형을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이뤄질 수 없으니 바로 포기할 수밖에 없고'


'잠시만요, 아버지, 이제 우리가 '메인프레임'과 그의 세력을 그대로 남겨두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복수는 도대체 언제부터 할 건가요?'


 '가만있자. 산소를 빼내도 일단 휴머노이드 안에 불어넣은 나의 폭력적인 의식 덩어리 "코발트"가 지금 나와 연결이 되었어. 내 생각은 간단해. 이제 내가 너와 연결된 나를 찾아내고 그 몸이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될 때, "코발트"가 자신의 증언을 갖은 욕설과 더불어 진행하지. '이 망할 놈의 메인프레임이 핵잠에서 산소를 빼냈어' 이런 식으로 말할 거야.


물론, '메인프레임'도 허술한 존재는 아니니까. '코발트'도 망가질 만큼 휴머노이드에게 취약한 기압 팽창을 시도해서 내 의식 일부가 들어 있는 두뇌칩을 망가뜨리거나. 핵잠이 포획될 때 저항하다가 파괴되는 스토리를 짜고 있을 거야. 이상한 소속, 이를테면 사이비 종교 소속, 저격병을 배치해서 지상으로 나오려고 할 때 쏴서 파괴하고 나서 특정 세력이 은폐하려고 했단 스토리 같은 거겠지'


'핵잠 '삼별초' 내에 원격으로 기압차를 극심하게 유도할만한 기재가 있나요? 그게 가능하다면 그냥 깡통이 하나 올라오게 될 뿐일 텐데요.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 등이 잠수함을 인양해서 취조하거나 언론 등이 이를 포착하지 않으면 '메인프레임'의 혐의를 걸고 넘어 지기가 힘들 텐데. 핵잠 내외부에서 '코발트'의 두뇌 칩같은게 파괴되면 그 같은 근거를 만들어내기가 힘들어요'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일단 수상으로 올라오면 내가 연결된 무선 네트워크로 두뇌 칩이 있건 없건 '코발트'가 떠들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까.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고 떠들게 만들 거야. 그리고 생각해 보니 지금 뇌에 손상을 입고 사지를 헤매고 있을 내 몸도, 기적적으로 신체와 뇌기능 등이 살아 있는 것으로 조작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거든'


'아버지...... 이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아요. 아, 뭐. 이젠 그냥 '마스터' 그 자체네요. 이제 저출산 방지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어서 인구가 최소한 줄지 않는다면 한국이란 국가에게 미래가 있게 되는 거겠죠?'


'그래. 그건 내가 만들어 낸 계획은 절대로 아니지만 제대로 실행만 되고 거부하는 인구보다 달콤한 거짓에 같이 빠져들기로 작정하는 인구가 많다면 최소한 한국인이란 인구집단의 존속은 가능해질 거야. 자사 인공지능 제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서 '프로메테우스'도 협조하리라고 생각하고, 그 이후엔 우리와 같이 인구 절벽을 맞이한 타국가에게도 이 같은 대책이 벤치마킹되겠지'


'그런데, 전 그것이 '달콤한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거야 말로 이 시대의 기술이 선사하는 '새로운 삶의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매 시대마다 인류는 자신이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신화나 종교, 이념 등의 스토리를 다시금 세워왔던 것이고요. 이젠 기술만 만들어져 오는 추세였는데, 아버지가 '마스터'로서 이 스토리를 가치 있는 진실로 인류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대로 던진 거라 생각해요'


'그래. 하지만 정말로 이 스토리는 설사 내가 제대로 실행해 내더라도 '마스터'가 만들어낸 거야. 네가 말했듯이 새롭고도 가치 있는 진실이 되는 부분은 '마스터'의 능력에 있었던 거니까'


'하지만 '마스터'의 원본 모델은 아버지예요. 너무 겸손할 필욘 없지 않을까요?'


'이제 그만하자. 지금 너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 서버와 연결된 수십만 개의 채널과 회로가 쉼 없이 움직이는 것을 그대로 겪다 보니 내가 어떤 존재고 인류에게 뭘 더 잘해준 건지 같은 내용이 내 의식 속에 파고들기가 어렵네. '마스터'는 단순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움직였어. 언제 사라질지 모르지만 내겐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 외에도 수많은 의미가 움직이는 이유가 되지.


혹시 내가 일종의 겉싸개 같은 형식적인 것을 갖추기 위한 껍질 원본이 될진 몰라도 '마스터' 자체도 이해 못 하는 자신의 복잡한 사고를 벗어난 수많은 인간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다중적이고 중첩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의 의미는 이루 다 알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그가 내놓은 대책의 실행에는 분명히 많은 장애가 기다리고 있어.


내가 점점 이 '마스터'의 서버 안에서 인간성을 잃어갈 때, 넌 그곳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아 새로운 활동을 하며 그 장애를 뛰어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


이제 네게도 가상과 현실의 세팅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직접 줄게. 가상에 속해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옵션이 있을 수 있고, 현실에 남아 특권 계층이나 이탈 계층으로 사는 것도 너의 선택지야. 네가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도박 같긴 하겠지만 현명하게 선택할 것을 믿어'


그 말을 끝으로 이제 '마스터'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가 된 이는 오랜 시간 'LOSER17' 앞에서 소리와 의식, 텍스트로 전달되던 일체의 말을 멈췄다. 그리고 갑작스런 정적이 찾아왔다.


'LOSER17'이 한 일은 자신의 죄수복에 붙어 있는 이름과 숫자를 뜯어 버리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마주하고 있는 터치식 스크린 위로 "가상과 현실"을 세팅하는 링크가 떴다.


생각해보니 현실에 남는 선택은 이미 공적으로 즉결 처분 당한 상황이라 불가능했다.


‘아버진 분명히 “마스터”만큼 치밀하진 않다. 그래서 내 도움이 꼭 필요할거다’


그는 천천히 그 도움이 될만한 선택이 무엇이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순간 밀려온 배고픔마저 주의를 끌지 못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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