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Nov 18. 2015

<Freedom Plus>-시작하며

1999년부터의 창작물들을 다시 퇴고하다

이번엔 그동안 써왔던 창작물들을 다시 다듬고, 영화 리뷰나 책 리뷰 같은 타인의 생각을 읽거나 타인의 생각을 빌어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글들 뿐만 아니라, 온전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수필, 에세이를 다시 적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부로 이렇게 매거진을 하나 더 열기로 하였다. 마치 브랜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에서  브랜드를 하나 더 여는 것처럼. "Freedom Plus"라는 명칭을 붙여 본다.  


내가 아직도 웹상에서 이렇게 글들을 쓰면서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고는 1999년 7월 19일 "다음 칼럼"에 첫 에세이를 보란 듯이 띄웠던 26세의 나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때 내가 처음 쓴 글은 아래와 같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나름 자신만만한 기색으로 글을 올리는 듯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패러디 제목으로...

1999.07.19 11:44


안녕하세요!


삶을 추적하고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치부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젠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과거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지금이라고 생각하고요.


더운 여름 긴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칼럼을 하나 열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의 나이는 26세에 불과하고 아직 삶을 반추하거나 다시 정리해본다는 말을 해보기엔 오만하다고 느껴지게 될 나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각 개인에게 속해 있는 삶의 흔적들이 가장 개인적인 정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저는 이 칼럼을 통해서 '가장 개인적인 정보를 세상에 내보내고 싶습니다.


굳이 제가 아니라 해도 쓸 수 있는 글을 쓰거나 신변잡기로 끝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패러디하고 있는 대상은 마르셀 푸르스트가 쓴 시대의 고전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잃어버리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삶의 측면들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물론 원전이 갖고 있는 수준은 절대로 저는 능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계셨으면 좋겠군요. 다음 글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유 있으실 때 들려 주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인구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남아 있었던 시기였고, 50여 명 가까이, 피드백을 간간이 던져주고 모임을 가지게 되면 같이 맥주 한잔 마시러 나오는 적지 않은 내 칼럼에 대한 독자들이 있었다. 나도 그리고 그분들도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음은 "다음 칼럼"을 폐쇄했고, "다음 블로그"로 넘어간 이후 그 독자들과의 교류는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다.


그 "다음 칼럼"이 어쩌면, 이 "브런치"와 가장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공간이었다는 기억이 언뜻 든다.  그때의 "다음 칼럼"은 우수 칼럼니스트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동기를 유도했던 적도 있었고, "다음 블로그"의 차가운 커뮤니티 분위기와는 다른 좀 더 깊이 있고 가치 있는 문예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브런치" 역시 "작가"라고 하지, "블로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때만 해도 언뜻언뜻 나는 공인된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또는 좀 더 정확히 분야를 밝히자면,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전 생애를 걸쳐서 내가 썼던 소설은 딱 다섯 편이다.


첫 번째는 원본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두 번째는  온전한 상상을 통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기보다는 겪은 경험을 반추한 자전적인 소설이었으며, 세 번째 나 혼자만이 쓴 소설이 아닌 공동소설. 네 번째는  10년째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SF 공동소설, 마지막 하나는 쓰다가 멈춰 버린 뒤에 가만히 누워서 일어날 줄 모르는 상태다,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떠오른다. 여름 방학 때 바다에 떨어 뜨리고 온 비치볼처럼 정처 없이 기억 저편에서 떠다니고 있다.


1. 그늘 속으로 묻혀버린 빛

유년기의 삶을 기억해내서 쓴 내용이었다. 나름 불우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왔는데, 그럼에도 유년기의 어디엔가는 빛이 있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려 쓴 내용이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친구가 내게 문학적인 재능이 있을 것이란 환상을 불어넣어주었고, 그 최면에 걸려 미친 듯이 일주일 만에 800자 원고지 32매의 중편 소설 분량의 글을 다 써 내렸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퇴고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는 이 소설을 고맙게도 일일이 필사하며 퇴고해주었다. 검은색 파일철에 들어 있었던 그 원고는 수많은 이사와 신변의 변화, 해외 근무 등의 잦은 이동 속에서 어느 순간엔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그 소설 말고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관통하면서 썼던 모든 글들이 사라졌다.


어쩌면, 열정적이었던 문학 청년의 꿈이  그때 한풀 꺾였던 것 같다.


2. 도에 대해 아세요

이것은 실제로 1994년에 내가 대순진리회에 순진하게 따라가서 겪은 사이비 종교의 메커니즘을 살짜기 표면적으로나마 경험한 내용을 2000년도 초반에 가입했던 웹 위키 공동체였던, 이 역시 지금은 사라진, 한국 브라이트 넷에서 또 한번 최면에라도 빠진 듯 한 달여 만에 A4지로는 62장에 달하는 분량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3. 여름

웹 공동체에서 알게 된 그 당시의 필명은 난영음(난 영화 음악이 좋다)씨가 개인 위키 홈페이지를 열어서 헌터 D라는 필명으로 바뀐 뒤에 공동 소설을 작성하자는 제안을 했다. 처음의 구상과 몇 가지 에피소드는 헌터 D씨가 작성을 했고, 까르페 디엠씨가 퇴고를 해주는 형태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발동이 걸리기 시작해서 초중반 이후부터는 그냥 일사천리로 경험과는 크게 상관없이, 말 그대로의 상상의 산물인 소설을 처음으로 완성했다.


4. 조율

같은 위키 홈페이지에서 이번에는 대여섯 사람이 시작했던 SF 소설이었는데, 갑자기 발동이 걸려서 잔뜩 글을 써 놓았더니 다른 분들이 모두 흥미를 잃어 전진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쓰기 시작하면 너무 많은 양을 쓰는 천성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공동소설 같은 이벤트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는 그런 분들도 사라진 듯하고.


다만, 가끔 돌아보면 2000년도 초반에 쓴 소설인데도, 마치 모바일 문명에서 벌어지는 내용들을 그린 것처럼 텔레파시를 통해 대화하는 소설 속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의 스마트 폰을 들고 메신저로 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고, 써 내린 정치적 상황도 현 시대의 내용과 닮아 있다. (물론, 그런 스토리는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공각기동대도 있고, 스타트랙도 있으며,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분들도 공공연히 예언하고 창조해왔던 것들이다)


5. 털 없는 새

이 소설은 "그늘 속으로 묻혀버린 빛"이라는 소설을 잃어버린 원본의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작성하면서 범죄 스릴러물로 각색해서 장편으로 만들고자 10여 년 전부터 시작했던 소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엔가 미완성 상태로 남아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아주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면 저절로 쓰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기는 한데. 그게 언제 올진 잘 모르겠다.


그럼, 왜 나는 이렇게 소설 나부랭이를 쓰고 싶어 해왔던 것일까? 그것은 내 이름이 주는 숙명 때문이다. 나의 본명은 Roman이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영어 이름이다. 월남 전에 참전했던 아버지는 영어 통역관으로 근무했었고, 전역한 후에도 미국 회사에 잠시 몸담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어머니와 결혼한 뒤에 나를 낳게 되었다.


족보에 따르자면 내 이름은 "순"자 항렬로 이름 끝에는 꼭 "순"자가 와야 했는데 중간에 "대"자가 들어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이런 "대순"...... 거꾸로 하면 "순대"라는 이름은 너무 가혹하잖아.'라고 생각했던 부모님은 다른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고, 아버지가 좋아했던 미국 작가인 "노먼 메일러"와 발음이 비슷한 "로만"을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 여기에 아버지의 기획이 있었다.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Roman은 사전에서 명사로 Person In Rome, 곧 로마 사람이라는 뜻과, 형식과 체계를 갖추기 전의 낭만적인 소설을 일컫는다는 의미에서 동의어로 Novel, 곧 소설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름의 숙명에 따르자면 나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맞다. 그게 오래전부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소설가가 돼야 하는 숙명은 유보되었지만 다른 숙명은 그대로 나를 덮쳐왔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롯데에서 출시한 소시지의 브랜드가 "살로만"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별명을 "살로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동양의 "순대"를 벗어난 줄 알았던 나는 어느새 서양의 "순대"인 소시지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왜 문예창작학과나 국문학과를 안 간 것인지는 또한 "어른의 사정" 때문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1992년에 대한민국의 마지막 학력고사를 보기 전에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을 주셨지만 학비도 제대로 나올지 알 수 없었던 그 당시 집안 사정을 보았을 때, 나는 꿈보다는 생활의 안정을 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지금 나는 섬유업계의 나름 이름이 알려진 기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직이 잦았으나 그 경로에는 나름 일관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일을 마치고 나면, 달에 가끔씩 하루나 이틀,  단 1~20분 밖에 시간이 없어도 생각이 나면 영화 감상문이나마 수시로 남겨 왔고, 소설책을 포함한 다종 다양한 책을 읽고 어떻게 하면 더 의미있는 글을 남길 수 있을까 틈틈이 고민도 해본다. 


이렇게 쓰다 보니 왠지 "위대한 개츠비"라도 된 듯하다. 그러나 항상 매일 이렇게 나름 모범적인 나날들만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니 크게 어긋난 삶은 아니지만 뭔가 내 삶에는 나에게 사명으로 주어진 것이 하나 크게 빠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창작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게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글로 창작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사업을 기획하고 숫자를 메만져야 하는 사람이다. 현실을 떠난 세계를 너무 힘을 기울여 마주하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위험한 일이다"라는 불안감도 있다.


그래서 중간 지점에서 타협을 보는 개념으로 에세이의 성격으로 적었던 글들도 가끔 하나씩 이 공간에 다시 적어 올려보고자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써나가다보면, 나의 마음과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동시에 채울 수 있는 글이 씌여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글들로써 읽힌다면 아마도 잃어버렸던 글과 관계된 소통이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처럼 꿈과 현실의 영역을 오가는 삶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