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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연습>-두 곡이 연습곡으로 선정된 이유

많은 사람이 모여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그림이 그려질 때

by Roman

(그림 출처: ChatGPT로 그림)


다섯 번째 연습이 끝나자 조금 다른 흐름이 생겼다.

연배가 비슷한 네 명이 모여 근처 초밥집에서 회덮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두 분은 나보다 연세가 많았고, 나머지 한 분은 나와 동갑. 이렇게 50대를 넘긴 이들이 4명 모였다. 사실 이 나이쯤 되면, 데면데면한 사람과 식사를 같이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오늘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단순한 ‘수다’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노래방에서 3년간 발라드를 연습하며 자신만의 노래 취미를 키워왔다고 했고, 이제는 이것을 10년 이상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밝혔다.


그 말에서 묘하게 울림이 느껴졌다. ‘노년의 기세’라는 표현이 있다면, 이럴 때 쓰는 말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이야기했듯이 과학 및 의학 기술의 발전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에 50-60대의 나이는 생애의 중반기에 불과하다. 은퇴 이후 남는 수십 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앞으로 넷이 가끔 모여서 밥도 먹고 그게 가능하다면 따로 같이 연습도 하자가 제안이셨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과 기회가 닿는다면 같이 모여서 서로 피드백 주며 연습할 이들이 생긴 것이다.



'혹시 브런치에 글 쓰시나요?'

앞서 모임이 끝날 때 Tenor 파트 회식에 갔던 파트장님에게 전화를 했을 때, 내게 혹시 브런치에 글을 쓰는지를 물어봤다. “신기해서 읽었어요”라며 따뜻하게 격려해 주었고, 잘 쓰라는 응원의 이야기도 남겨주었다. 잠입해서 글 쓰는 언론사 직원도 아니고, 그저 취미일 뿐이니 혹 오해는 생기지 않길 바란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노래는 어려워졌고, 오디션은 현실이 됐다’

이번 연습에서도 중점은 그레고리안 성가곡 중 하나였다. 지휘자님은 이 곡을 오늘 가장 중점적으로 풀었고, 무엇보다 Soprano 파트 부분을 모든 파트가 정확하게 외워야 나머지 파트가 맞물려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곡은 계단식 구조가 아니라 기어장치 같은 구조였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전체가 흔들리는, 동시에 각 파트가 끼어들 부분이 Soprano의 노래를 외워야 파악된다.


그리고 각 파트가 각각 자신이 리드하는 부분을 하나씩 갖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그것이 모두 모여 하나로 결합되는 결말부에서 모두가 합심하고 협력해서 전 세계의 아이를 돕자는 "유니세프 후원자"의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곡을 선정했다는 뜻깊은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휘자님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공연 날짜가 잡히면, 오디션으로 파트별 공연자를 선발할 겁니다.” 프로그램 구조를 이해하는 것을 떠나서 ‘내가 부를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눈앞 현실이었다.


악보를 추출하려던 의욕은… YouTube로 풀렸다

지난주에는 ScanScore와 MuseScore를 이용해서 Bass 파트 음원을 뽑아보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간 부족, 악보 인식 오류, 변환 과정의 버그….


그걸 써서 제대로 다듬을 시간은 없었고, 결국 중단했다. 그런데, 연습 전날 우연히 “성가곡명 + score”로 검색해 본 유튜브 영상 중에 악보에 맞춰 파란 박자선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Bass 파트 연습 영상을 만들어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


3~8년 전에 올라온 영상이었고, 조회수도 수십 회 수준이라 돈 벌 목적은 아니고, 그냥 “이 곡을 많은 이들이 부르게 하고 싶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걸 찾고는 바로 Bass 단톡방에 공유했고, 다음 날 “그거 들으면서 연습해 왔다”는 분들의 말에 조금 뿌듯했다. 이런 게 진짜 의미 있는 공유 아닐까 싶었다.


다른 성가곡도 마찬가지였다

구조적으로 ‘돌림노래’ 형식이었다. 파트별로 교차하며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하나로 모이는 구성. 다른 파트들이 협업하며 하나가 되는 구조. 이 곡이 왜 선택됐는지도 이해가 갔다.


결국은 사람이다

이날 연습의 마지막엔 다시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Twinkle Twinkle Little Star”를 불렀다. 예상했던 대로, 그 두 곡이 이번엔 ‘쉽게’ 느껴졌다.


160km 강속구에 계속 삼진 당하다 150km 볼을 만나 정확하게 타격하는 타자가 된 것처럼. 다들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유지하면서 꽤 안정된 합창을 만들어냈고, 처음에는 흩어졌던 “Twinkle…”도 어느새 탄탄하게 하나로 묶였다.


어느 분은 "그 곡도 예전엔 그레고리안 성가곡처럼 어렵게 느껴졌었다"라고 했고, 나는 ‘우리가 점점 나아지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게 이 합창단의 진짜 힘 아닐까 싶었다.


경쟁이긴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가 ‘함께 노래 부를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의 힘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합창단의 수준이 같이 오르지 않는다면 의미가 적다.


단 한 번이라도 결석을 하면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훈련을 할 것이란 이야기가 지휘자님을 통해 반복되어서 아이의 경기 일정으로 빠질 수도 있는 사람인 나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긴 했다.


하지만 혹 불가피하게 빠지더라도 영상과 mp3를 들으면서 따라갈 수 있는 동영상이 있다. 기술은 때로 사람의 간절함을 도와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두곡의 악보와 파트음이 나오는 동영상이 전체 합창단 단톡방을 통해서 배포되었다. 나만 이런 것을 알게 될리는 없으니 모두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뿌려진 것이다. 흐뭇했다.


작은 후기

며칠 전, 상반기 회비를 어렵지 않게 냈다. 평범한 회사원의 용돈 수준에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선이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단복 문제인데, ‘턱시도’를 입게 된다고 해서 신경이 쓰인다. 인생 처음이다. 사려면 판가대가 어찌될지 조금 걱정이 되고, 빌린다면 신체 사이즈에 맞게 여러 벌 있는 곳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를 자격을 먼저 갖추는 일 아닐까? 그 자격이 단지 노래 실력만은 아닐 거라고 믿고 있다. 여기엔 사람을 구하기 위한 사람이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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