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사회를 망치다> 2편입니다.
남자 직원 둘은 20대처럼 보였다. 아무리 봐도 아르바이트생 같았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식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결혼도 안 해 봤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마이크 세팅, 조명과 음향 조절, 스탭 관리를 도맡았다.
물론 결혼 여부가 전문성을 가르진 못한다. 기혼자라고 무조건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심했다. 복장 불량, 식전영상 송출 망각, 시작 시각 미준수는 약과였다. 식이 진행될수록 점입가경, 첩첩산중이었다.
이번 예식은 화촉점화를 생략했다. 그래서 미리 초에 불을 켜놓아야 했다. 식 시작 직전에 여자 직원 둘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초에 불을 켜기 위해서였다. 그때 남자 직원끼리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아, 이번 타임은 화촉점화가 없나 보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경악했다. 화촉점화가 있는지 없는지도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심지어 자기들 손에 대본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 종이에 다 적혀 있어요! 미리 확인도 안 했단 말입니까?
해당 예식장은 신부가 입장하는 방식이 좀 특이했다. 먼저 계단 위에 신부가 등장한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면 버진로드 앞에 선다. 신부는 아버지와 함께 입장한다. 두 사람은 내 멘트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사전에 예비부부와 조율하여 완성한 대본은 이랬다. 짧은 멘트를 한 뒤에 "신부, 입장"이라고 하면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식 시작 5분 전에, 직원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두 단계로 쪼개 달란다.
먼저 "신부, 등장"이라는 말을 하란다. 그러면 신부가 계단에서 버진로드까지 내려온단다. 그때 음악이 나오는데, 그동안 두 줄의 멘트를 쳐달라는 거다. "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같은 거 말이다. 알겠다고 했다. 5분 뒤, 식이 시작되었다.
약속한 것처럼 "신부, 등장"을 외쳤다.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이 나왔다. 음악 소리가 너무 컸다. 동시에 멘트를 쳤다. '음악 소리에 내 목소리가 다 묻힐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원래 예식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사회자는 정해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알고리즘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또 다른 직원이 나를 제지했다. 음악이 나오고 있으니 멘트를 치지 말라는 거다. 신부가 신부 아버지와 만나면 그때 다시 멘트를 치란다. 자기가 신호를 주겠단다. 누구는 멘트 치라고 했다가, 누구는 치지 말라고 했다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뇌를 비웠다.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신부와 신부 아버님께서 버진로드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아닌가! "신부, 입장"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신부는 이미 1/3 지점을 넘었다. 지금 와서 "신부, 입장"을 외치면 더 어색해진다. 황당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신호를 주겠다던 직원이 사라졌다.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정신 차리자! 다음 멘트는 뭐지?
식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신혼부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마쳤다. 이제 혼주와 신랑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할 차례다. 약속된 대본은 이것이었다.
"... 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인사드리겠습니다. 양가 부모님, 그리고 신랑 신부, 인사"
보통 결혼식 대본은 사회자가 짜지 않는다. 신혼부부가 짠다. 그럼 두 사람은 대본을 어디서 구할까? 일반적으로 결혼식장에 샘플을 달라고 한다.
우리도 그 과정을 거쳤다. 예식장에서 받은 샘플을 기초로 대본을 짰다. 사전에 예비부부와 내가 만나 조율했다. 완성본을 다시 식장으로 보냈다. 그게 뭘 의미할까? 식장에서도 저 멘트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차분히 대본을 읽었다. "감사드리며 인사드리겠습니다."까지 읽었다. 이제 하이라이트다. "양가 부모님, 그리고..."
대본을 읽던 중간에 고개를 들었다. 눈을 의심했다.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혼주와 부부가 인사를 마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일일까? 정답은 바로 이것이다.
"... 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때 인사해 버림) 양가 부모님, 그리고 신랑 신부, 인사"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중간에 인사를 해버린 혼주와 부부 잘못 아니냐고? 결혼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날 당일은 정말 정신이 없다. 그래서 식장 직원이 분주히 챙겨줘야 한다. 일어서라고, 나가라고, 인사하라고, 안아주라고 말이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을 가르쳐 주듯 해야 한다.
저걸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원 한 명이 앞에서 수신호를 주면 된다. 손바닥을 펼쳐서 대기하라고 하다가, 내 멘트가 완전히 끝나면 인사하라고 시늉을 하면 된다. 대부분의 예식장이 이렇게 한다. 대부분의 어린이집 선생님도 이렇게 한다. 초등교사인 나도 1학년 학생들 학예발표회 지도할 때, 무대 앞에서 수신호 엄청 했다. 물론 하객 및 관객들은 그들의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이 역할이다. 밑을 지켜 주는 든든한 그림자가 있기에 무대 위가 밝을 수 있는 거다.
인사가 끝났다. 이제 공연 시간이다. 신랑의 친구가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신랑도 기타를 직접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1절이 끝나고 간주 부분이 되었다. 여기가 하이라이트였다. 장범준의 노래였는데, 간주 부분에 결혼행진곡이 활용된다. '딴 딴따다' 그거 말이다. 그걸 신랑 혼자 기타 독주를 했다.
하객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신랑의 손가락을 향했다. 내 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멜로디가 들려왔다. 오직 신부만을 위한 신랑의 세레나데였다. 흐뭇한 표정으로 감상하던 중, 옆에서 직원의 지시가 들려온다.
"간주 부분이 너무 적막하네요. 박수 유도 좀 해 주세요."
귀를 의심했다. 박수 유도? MR 음원도 아닌데? 신랑이 직접 기타를 치고 있는데? 그것도 결혼행진곡을? 오직 신부를 위한 세레나데 중인데 거기서 내가 멘트를 치라고? 이 순간에 내 목소리를 끼얹으라고?
그 직원들 말을 들었다가는 예식을 다 망칠 판이었다. 이제 나는 뇌를 비우지 않기로 했다. 내려놓았던 자아를 다시 챙겼다. 여긴 정글이다. 운전대를 내가 잡아야겠다.
"죄송하지만, 저건 신랑이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에요. 오직 신부에게 들려주기 위해 밤낮으로 연습한 곳이라구요. 박수 유도는 하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내 의견을 전달했다. 직원은 멋쩍어하며 물러났다. 아마 자기도 잘해보려고 그런 것이겠지. 결혼식을 망치려는 의도는 없었을 거다. 그런데 세상에는 T.P.O라는 게 있다. 그땐 멘트 치면 안 되는 타이밍이었다.
신랑 공연이 끝났다. 다음으로 신랑의 어머니께서 공연을 하셨다. 어머님의 친구분들께서 단체로 무대 위로 올라오셨다. 다들 장구 하나씩 들고 나오셨다. 심벌즈 같은 것도 있었다. 신명 나는 가락이 울려 퍼졌다. 나도 신나게 박수를 쳤다. 이 타이밍은 손뼉 쳐도 되는 타이밍이다. 트로트잖아. 그때, 등 뒤에서 믿지 못할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공연은 왜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그치?"
이해 안 될 수도 있다. 보통은 신랑이 축가 부르고 끝이니까. 이해가 되고 안 되고는 자유의 영역이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객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 남직원 둘과 나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심지어 내 바로 옆에는 신랑 측 부모님도 앉아 계셨다. 내가 들었다는 소리는 신랑 아버지도 들었다는 뜻이다. 어머님은 못 들으셨을 거다. 신나게 공연하고 계셨으니까. 물론, 그 직원도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마음속에 있는 말이 튀어나왔겠지.
불쾌함을 꾸역꾸역 참았다. 이제 남은 건 신랑신부 행진이다. 끝이 좋으면 다 괜찮다. 신부와 신랑이 뒤를 돌아봤다. 버진로드를 향해 섰다. 신랑은 가볍게 뒤를 돌았다. 하지만 신부는 다르다. 드레스를 입었기 때문이다. 뒤로 돌자마자 행진을 하면 드레스 자락에 걸려 넘어진다. 직원이 와서 정리해줘야 한다. 난 그동안 대기하고 있었다.
남직원이 또 다가왔다. 시간이 촉박하단다. 다음 타임에도 식이 있기 때문이란다.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들이 늦게 시작한 건 생각 안 해요?' 하지만 불쾌함을 드러내진 않았다. 이 행사의 주인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감정은 최대한 눌러 집어넣었다.
드레스는 정리가 좀 더 필요해 보였다. 직원이 나를 재촉했다. 빨리 멘트를 쳐 달란다. 두 번이나 거절하긴 애매했다. 예정되어 있던 멘트를 쳤다. 그러니 드레스를 정리하던 여자 직원이 나를 쳐다본다. 멘트를 중지해 달란다. 총체적 난국이다. 조금 더 기다리니 비로소 드레스 정리가 끝났다. 멘트를 처음부터 다시 쳤다. 아, 후회된다. 그 남직원 말 듣지 말고 내 판단대로 할걸.
예식은 어떻게 잘 끝났다. 이제 사진촬영만 남았다. 5일 전에 신랑에게 물어봤다. 요새 사진 찍을 때 친구들이 휴대폰 플래시 많이 쓰던데, 너희도 쓰냐고 말이다. 신랑이 그걸 알아보고는 나에게 알려줬다. 폰 필요하단다. 나도 멘트를 추가했다.
"직장동료 및 친구분들께서는 사진을 찍을 때 휴대폰을 지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도 사진을 찍으러 단상에 합류했다. 사진기사님께서 오셨다. 부케를 던지는 장면을 찍었다. 이제 플래시 차례인가? 폰을 꺼내기 위해 손을 호주머니로 가져가는 순간
"네, 다음으로 신랑신부 직계 가족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다들 플래시 켤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부와 신랑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양가 부모님께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그렇게 단상에서 내려왔다. 사진사가 예식장과 연계된 사람인지, 아니면 신랑신부가 따로 고용한 분인지는 모르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부족해서 결혼식을 망친 것만 같았다. 2년 전에 첫 사회를 봤을 때보다 훨씬 맘에 들지 않았다. 두 번째라서 연습을 덜 한 것은 아니냐고?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세상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문득 첫 사회를 봤던 2년 전이 떠올랐다.
3편에 이어집니다.
사진: Unsplash의Eastman Chil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