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힙한 0세가 달님께.

비나이다비나이다

by 빨양c


나는 지금 공중에 둥실둥실 떠있다.

그래 평소 솜뭉치가 몽실몽실 공중에 떠다니듯 그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구? 음. 그건 나도 몰람!! 그냥 언젠가부터 그랬다.


분명 내 귀여운 3등신 몸뚱이는 바닥에 고이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있는데,

그 몸뚱이에서 뭔가 쑤욱 공중으로 올라가는 기분. 그 기분 좋은 잠깐의 느낌이 지나고 나면 이렇게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누워있는 내 몸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상태는 내 이마 위 대천문의 가느다랗고 하얗게 빛나는 작은 실과 연결이 되어있어서 다시 몸으로 내려갈 때 그 실이 확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든다. 다른 신생아도 이런지는 모르겠다. 조리원 동기들 빼고 다른 신생아는 만난 적이 없으니까. 걔들에게 물어봤었는데 "응애응애"만 해대길래 그냥 소통을 포기했던 아련한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언제 적인가. 세월 참 빠르군 흠흠.

확실한 건 아빠엄마장모님은 불가능하단 거다. 어른은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저 실이 견디질 못할 것 같긴 하다. 나처럼 솜털 같은 0세만 가능한 것 같다 이 말씀! 헤헿!


아! 그리고 이 상태에선 솜뭉치와도 소통이 잘 안 된다. 어디 지금 한번 해 보까?

“야야! 솜뭉치!! 나 보여? 안 보여? 야 바부야!!”

보이지? 아무리 소리쳐도 내 몸뚱이 옆에서 같이 잠들어있는 솜뭉치는 반응이 없다.


고로, 내가 생각한 결론은 이 상태의 나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뭔가 혼자만의 은밀한 비밀이 생긴 것 같아 괜히 기분이가 좋다. 헤헿. 그리고 이 상태의 좋은 점은 대천문과 연결된 저 실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자유로이 둥실둥실 떠다닐 수 있다는 걸 거다.

하루 종일 천장만 보고 누워 있는 저 내 몸뚱이에게 자유가 허락된 이 기분! 이해할 수 있겠는감요? 히힣.


그래서 나는 이 상태로 다른 방에 누워 유축하고 있는 엄마를 몰래 훔쳐보기도 하구,

3교대 끝나고 퇴근하셔서 암흑 같은 커튼 뒤 곤히 잠드신 장모님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리고 아빠는 뭐. 항상 내 옆에 있으니까 굳이 이 상태가 아니어도 매일 지겹게 보구 있어서 팻스! 에베베~


신기한 느낌.

몸은 자고 있는데 다른 투명한 몸은 떠있는 느낌이랄까.


'자! 그럼 오늘은 뭘 해볼까?'

오늘은 장모님 집을 벗어나 저 창밖으로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활시위를 당기듯 대천문의 하얀 실을 최대한 팽팽하게 당겼다가 휙 반대쪽으로 둥실 몸을 던져본다.

이런! 창에 부딪힐 뻔했지 뭐얌.

그렇게 두세 번 시도해봤으나 아무래도 밖으론 못 나가는 듯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문득 창문 앞에 둥실 떠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난 하늘 보는 게 좋다. 얼마 전부터 낮밤 구분이 가능해져서 지금 이 깜깜한 건 밤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러고 보니까 얄밉네 이거!

요새 내가 너무 밤에 잠을 잘 자주는 것 같다. 모로 이불이 내 몸을 딱 지탱해줘서 푹 잘 수 있어 좋긴 한데, 너무 쉽게 잠들어주니까 저 내 몸뜡이 옆에서 코 골며 자는 아빠가 괜히 얄밉다.

나를 만만히 보는 거 같애 아빠 사람!! 빽! 소리쳐보지만 역시 이 상태론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내 잠든 몸뚱이두 아무 반응이 없다.

이 난리를 치는 둥실 몸과 달리 장모님 집은 고요하다.

라디오만이 고요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지금은 '적재'라는 가수의 '별 보러 갈래'라는 신청곡이 흘러나온다. 나도 언젠가 크면 신청곡이란 걸 보내보고 싶다. 이왕이면 재밌는 사연을 보내봐야지 헤헿.


음.. 별이라..

아빠는 저 밤하늘에 있는 반짝이는 내 애기 손가락 만한 것들이 다 별이라고 알려줬다.

처음 내 눈엔 낮하늘과 달리 밤하늘엔 왜 저렇게 구멍이 숭숭 나있나 했다.

저 까만 밤하늘 뒤편에 밝은 낮하늘이 숨어있어서 구멍 난 밤하늘을 뚫고 낮하늘의 빛이 새어 나오는 줄 알았다. 근데 아빠 사람이 날 안고 밤하늘을 하나하나 설명해준적이 있는데, 그때 저 작은 구멍은 별. 왕따시만한 큰 구멍은 달이라는 걸 배웠다.


오늘 밤하늘에 달은 아주 동그랗고 밝게 빛나고 있는 보름달이다.

“민아정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함께해주고 계신 지금은 밤 11시 3분을 넘어가고 있는데요. 이제 내일이면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다들 가족 친지분들 만나실 생각에 설레신가요? 저도 무척 설레는데요..”


아! 내일이 그 추석인가 보구나. 그래서 달님이 둥글둥글 한 모양이다.

아빠가 얼마 전에 날 재우면서 추석에 대해 알려줬었던 기억이 난다. 뭐랬더라.. 여러 가지 말해줬는데.. 흠.. 아! 달보고 소원 비는 거랑 그래 송편!

그래서 아까 저녁에 엄마아빠장모님 둘러앉아 쿵떡쿵떡하면서 송편을 빚었나 보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냄새가 엄청 좋던데엥~! 내심 맛볼 수 있을 기대감에 들떠있던 나였지만, 신생아인 내게 허락된 건 없다고 저 얄미운 아빠 사람이 내 기대를 깨부섰다. 얄미웡!!!

그리구 또 뭐라더라? 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아이를 낳는다고? 하지만 난 보고 말았다.

아빠가 빚은 떡이 하나같이 멍탱이망탱이같이 엉망이었던 것을. 그 꼬락서니를 보면서 내 얼굴 어떡해.. 송편이 저모냥이면 내 예쁜 얼굴 설마...!? 엄청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수호천사 엄마가 송편을 어쩜 그렇게나 예쁘게 빚던지. 아빠 사람 엄마한테 평생 감사하라구. 흥칫뿡.


그래서 지금 식탁에 송편이 저렇게 잔뜩 쌓여있다.

내일 다 같이 둘러앉아 저 송편 먹으면서 오순도순 재밌게 또 하루를 보낼 생각에 설렘 설렘 하다.

“다만 이번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 한편에는 이번 태풍 피해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소중한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분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 것도 사실입니다. 부디 너무 많은 이들이 눈물 흘리지 않길.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복구되어 오늘 밝게 빛나는 밤하늘처럼 모두에게 행복한 한가위가 되길 빌어봅니다.”


음.. 태풍? 어젯밤에 비가 많이 왔다. 창문을 뿌수는 줄 알았지 뭐야.

아빠도 장모님 창문이 혹시나 부서질까 봐 X자로 긴 테이프를 붙여놓았었다.

잠에 빠지면 하염없이 쿨쿨 자는 나도 어젯밤에는 바람소리에 뒤척였던 걸 보면, 태풍이란 녀석은 여러모로 나쁜 녀석인 게 분명하다. 라디오 사연을 듣자 하니 그 태풍으로 인해 힘들어진 사람들이 많아진 모양이다.

왼쪽 가슴이 갑자기 찌릿해온다. 엄마아빠장모님 우리 가족은 멀쩡한데 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슬퍼한다는 말에 내 마음이 저려오는지 모르겠다. 기분 나쁜 지릿지릿 느낌 으~~~ 실타.

아빠는 추석이면 가족들 오랜만에 만나모여 앉아 맛있는 송편 먹고 달님 보며 소원 보는 행복한 날이라고만 했었는데, 그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그런가 싶다.


저 멀리 누워있는 내 몸뚱이가 뒤척이는 게 느껴진다. 응. 그 말은 곧 이 대천문의 실이 둥실 떠있는 나를 끌어당길 거라는 신호지.

나는 서둘러 달님을 향해 가만히 눈을 감고 소원을 빌어본다. 본 건 있어서 아빠가 젖병에 분유섞을 때 하는 비나이다 비나이다 손 동작도 따라해본다.

“이 세상에 평화와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평안을 주세요 달님. 그리고 높으신 해주신 어르신.”

응? 높으신 해주신 어르신? 그게 뭐지? 나도 모르게 달님에게 소원을 비는데 나와버렸다.

저세상에 있을 때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삼신과의 계약서 때문인지 100일이 다가올수록 그때의 기억들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나중에 솜뭉치한테 물어봐야지.

윽.

대천문 실이 새하얗게 빛나며 팽팽해진다.

둥실 대던 내가 누워있는 몸으로 강하게 당겨지는 게 느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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