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슬픔 나무의 숲>에 도착한 은빛의 삼신과 붉은빛의 염라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슬픔 나무의 숲 전체를 휘감고 흩날리고 있는 이미 소멸한 엄마 천사의 빛의 가루들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어린 예랑과 그런 예랑의 앞을 막고 새까만 칼날모양의 빛의 고리를 온몸으로 움켜쥐고 있는 작은 악마 아이.
그리고 그들의 위로 한때는 아빠라 불렸던 새까만 눈동자가 폭주한 채 타들어가고 있었다. 염라는 순간 자신이 모시는 지옥을 관장하는 <어르신> 님이나 아니면 <해주신> 님께 보고를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옆에 있던 삼신은 이미 그 특유의 은빛으로 날아가 새까만 눈동자를 공격하고 있었다.
나중에 삼신이 말하길, 위대한 세 신은 신들의 대 전쟁 후 다른 신들은 물론, 천사와 악마, 인간까지 직접 소멸시킬 수 없는 제약이 있었기에 보고보다는 자신이 먼저 공격을 감행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염라는 삼신이 이 세계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묻진 않았다.
그렇게 검은 눈동자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지만 왜인지 삼신의 공격은 그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염라는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처절하게 버티고 서있는 작은 악마가 눈에 들어오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쟤가 천사를 매혹한 건가? 악마의 천성대로...? 그런데 천사도 매혹당할 수가 있는 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천사와 악마가 같이 지낸 것 자체가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므로.
‘저 쓰러져있는 어린 천사를 구하려고 저러고 버티고 있는 거 보면 의도적으로 매혹한 것 같진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친 건가... 그런데 저 대 천사 급 성체 천사가 어린 악마의 매혹 따위를 못 견딜 리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 이 모든 상황이 처음 있는 일이었으므로.
처음.
그것은 이 세상 어느 존재에게나 낯선 의문만 가득한 것이었다.
염라가 작은 악마에게 날아들어, 작고 새까매져버린 손에 들려있는 더 새까맣게 타버린 천사의 고리를 강하게 바닥으로 쳐낸다. 염라의 손길에 천사의 고리였던 그것이 너무도 쉽게 바닥으로 나동그라진다.
‘응? 기세가 그렇게 맹렬했는데, 내 손길에 이렇게 쉽게 힘을 잃는다고...? 여기가 지옥도 아닌데 대체...’
원래가 천사의 고리였으므로 자신의 손길이 닿으면 지옥의 존재인 자신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힘을 잃은 천사의 고리를 보자 염라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 고리를 움켜쥐고 버티고 있었던 작은 악마의 몸이 작은 천사 예랑의 옆으로 널브러져 쓰러진다.
‘이 작은 악마가 천사의 고리를 잡을 수 있었다라... 새까맣게 탄 천사의 고리라... 설마?’
염라의 눈에 순간 지옥의 염화와 같은 새빨간 불길이 한번 반짝인다. 염라는 눈을 들어 슬픔 나무들 위 공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은 눈동자와 삼신의 전투를 노려본다. 삼신의 공격이 여전히 검은 눈동자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고, 그 상황에 삼신은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정말 저 천사가 이 어린 악마의 지옥 불에 매혹된 것이라면...’
염라가 재빨리 검은 눈동자를 향해 날아든다. 삼신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아직 눈치채지 못한 눈동자를 향해 자신의 꼬리를 길고 날카롭게 세워 순식간에 찔러 넣는다.
제일 먼저 가장 거대하고 가장 새까만 가운데 눈동자를 향해, 그리고 자신의 꼬리를 수십, 수백 개로 갈라 주변 모든 눈동자를 향해 가시나무처럼 찔러 넣는다. 삼신의 공격이 무용지물이었던 것과 달리 자신의 공격에는 타격을 입었는지 거대한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하더니, 염라를 향해 멈춰 선다. 염라는 그 기세를 멈추지 않고 자신의 꼬리에 지옥의 화염을 방사한다. 지옥의 화염이 붙은 검은 눈동자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숲 바닥으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삼신이 공중에 흩날리는 빛의 가루를 향해 자신의 빛을 맹렬히 쏘아댄다. 삼신의 빛이 수많은 빛의 가루들에 반사 대며 천둥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검은 눈동자를 지지기 시작한다. 염라의 지옥의 화염에 타격을 입어서인지 삼신의 공격이 검은 눈동자에게 타격을 주는지 검은 눈동자가 새빨갛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삼신은 멈출 생각이 없다는 듯 자신의 은빛 단발을 흔들며 추락하는 검은 눈동자를 향해 빛으로 달려들 자세를 취한다.
“삼신 멈춰! 소멸시켜선 안돼!!”
염라가 그런 삼신을 향해 크게 소리친다.
“멈출 수 없어! 천국에 한 순간도 지옥불이 피어오르게 하면 안 된다고!! 그게 내 임무 중 하나라고!!”
삼신이 소리치며 은빛 섬광을 바닥에 내려앉은 검은 눈동자를 향해 발사한다.
“안돼!!!”
염라가 삼신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자신의 날개를 펼쳐보지만 이미 늦었다.
삼신의 은빛 섬광이 기어코 검은 눈동자 한가운데 꽂힌다. 그러자 새까만 눈동자가 새빨갛게 타오르며 새빨간 불똥이 가루가 되어 슬픔 나무의 숲 곳곳에 흩날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슬픔 나무의 숲 전체에 소멸해 버린 엄마 천사의 새하얀 빛의 가루와 지옥의 화염에 타버린 아빠 천사의 새빨간 가루, 삼신의 은빛 섬광의 여운과 염라의 날개에서 휘날리는 검은 깃털이 뒤섞여 흩날린다.
슬픔 나무의 숲 속 나무들이 타들어가며 검은 연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빛을 갑자기 많이 쏘아대서인지 삼신이 나무 한편에 기대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러는 동안 염라는 눈을 번뜩이며 타들어가는 나무들 밑으로 널브러져 있는 예랑과 주랑을 낚아채 빠르게 날아오른다.
‘설마... 다 본건 아니겠지...? 분명 의식을 잃었었는데...’
염라가 예랑을 낚아챌 때 왜인지 예랑의 눈이 떠있었던 것 같아 찝찝하단 생각이 든다.
두 아이를 양손에 걸친 채 불타오르는 숲을 벗어날 생각에 높게 날아오르던 염라가 무언가 잊은 것이라도 있다는 듯 공중에서 갑자기 멈춘다. 그리고는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최대한 높게 치켜든다. 숲을 다 덮을 만큼 거대한 날개가 한순간에 펼쳐진다. 염라가 힘을 줘 날개를 휘두른다. 천사의 날개 깃털과는 달리 갈가리 찢기고 말라버린 염라의 날개 속 깃털들이 휘날린다. 삽시간에 타들어가던 숲의 나무들의 불길이 꺼지고, 새까만 연기들이 일순간 사라진다.
몇몇 나무들은 염라의 날개의 풍압을 못 견딘 채 송두리째 뜯겨 날아간다. 그렇게 염라는 자신의 날개를 몇 차례 더 휘둘렀다. 그러고 나니 슬픔 나무의 숲에는 정적이 남았다. 숲이라 부르기 민망해질 정도의 적은 나무들만이 남았고, 숲이라 불렸던 그곳에는 여전히 새하얀 빛의 가루들이 눈꽃처럼 내리고 있었다.
‘흠... 역시 지옥의 날개는 천사의 빛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는 모양이네. 어쩔 수 없지, 나머지는 삼신한테 맡기고 일단 이 아이들부터...’
염라가 빠른 속도로 숲의 입구의 작은 빛의 건물로 들어선다. 그리고 뒤따라 도착한 삼신이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두 아이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한다.
“좀 어때?”
아까 삼신의 무모한 공격 때문인지 탐탁지 않은 목소리의 염라가 묻는다.
“안 좋네. 젠장. 저 악마야 악마여서 그렇다 쳐도, 얘는 천산데 왜 내 빛이 소용없는 거지? 아까 처음에 그 아빠 천사에게 타격을 못주던 거랑 비슷해. 미치겠네 진짜!!!”
정말 오랜만에 다급한 소리를 내는 삼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염라는 왜인지 웃음이 날 것 같았다. 꽤 오랫동안 삼신과 함께 지내면서 나름대로 감정 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면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은 척척 잘 해내던데, 악마들은 그게 잘 안된다.
아 물론, 악마가 웃고 있다는 것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쩌면 슬프다는 의미이다. 천사와 악마는 반대다. 천사는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지만, 악마는 기쁘면 울고, 슬프면 웃는다. 그렇게 인간을 속이고 매혹한다. 물론 인간들은 이걸 몰라 우는 악마에게 그렇게 잘 속지만. 거기다 악마 특유의 아름다운 외형을 곁들이면, 열에 아홉의 인간은 매혹된다.
왜인지 삼신만큼이나 초조해진 염라가 두 아이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작은 악마를 바라보던 염라는 엉망이 되어있는 아이의 손과 복부, 날개와 꼬리를 향해 자신의 손을 펼쳐 지옥의 힘을 살짝 넣는다.
지옥을 관장하는 <어르신>님 다음으로 지옥의 권능을 갖고 있는 염라이기에 어쨌든 지옥에서 온 악마에게도 효과가 있는지 빠른 속도로 상처가 사라지는 게 보였다. 어느새 아이의 숨결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역시... 어디... 근데 이 천사는 왜 삼신의 빛이 안 통하는 거지? 천국의 존재 중 삼신의 빛이 안 통하는 존재가 있을 리가 없는데...’
아빠와 엄마의 소멸을 경험한 천사 최초의 정신적 고통 때문인지 무척 힘들어 보이는 숨결을 간신히 내뱉는 아기 천사를 내려다보던 염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의 눈에 아기 천사의 등뒤에 깊게 파인 날카로운 상처가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서보니, 아직 꺼지지 않은 지옥의 작은 불꽃들이 서서히 날개를 향해 타오르고 있었다.
‘지옥의 불꽃이 분명한데... 이래서 삼신의 빛이 들지 않았던 건가. 그렇다면 어디 한번…“
염라가 다시 한번 손길을 들어 예랑의 상처 부위를 어루만지며 작은 바람을 일으켜본다. 효과가 있는지 치직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날개에 붙어있던 작은 불꽃들이 사라진다.
“어쭈? 너도 지옥에서 왔다 이거지? 이제 되려나? 비켜봐, 염라.”
사그라드는 불꽃을 같이 본 삼신이 염라를 밀치더니 다시 한번 자신의 빛을 예랑을 향해 쏘아낸다.
“쯧. 제대로 흡수하질 못하는군. 언제까지 내가 내 빛을 넣어주고 있을 수도 없고. 아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예랑의 다 꺼져가던 작은 빛의 고리가 아주 천천히 반짝이기 시작하는 걸 확인한 삼신이 염라를 향해 말한다. 빛을 쏘고 있는 삼신 옆에 있던 염라가 자신의 지옥의 숨결을 예랑에게 불어넣어 본다. 예랑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빛의 고리가 아주 빠르게 새하얀 빛으로 반짝거린다. 그렇게 수십 번 반짝이더니 안정을 찾아 은은한 빛을 띤다.
“뭐야 염라? 너 고치는 방법을 알고 있었어?”
눈이 휘둥그레진 삼신이 염라에게 따지듯 묻는다.
“아... 아니, 아까 그때도 삼신 너의 빛 다음에 내 지옥불 지피니까 먹히는 거 같길래 해봤는데... 이게 되네. 크크.”
염라가 당황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더듬는다. 삼신이 그런 염라를 미심쩍은 눈길로 훑어본다.
“천사인데 지옥불이 있어야 치료가 된다라... 알 수 없는 일이군. 알 수 없는 일이야... 어서 보고해야겠어. 나 <어르신>님께 보고하고 올 테니 그동안 애들 좀 봐줘. 갔다 올게! <해주신>님은 계시려나, 어휴 짜증 나!”
순식간에 삼신이 사라지고 그의 은빛 가루만이 반짝인다. 천국에 홀로 남은 이 상황이 익숙지 않은 듯 염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면서도 예랑 등의 상처를 쓰다듬는 걸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