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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Feb 29. 2024

Ep12. 5분, 천사에겐 먼지 같은




“엄마... 너무 힘들어... 으앙!!!!! 컹컹. 컥컥.”

예랑의 귀에 어린 여자 아기 목소리의 큰 울음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아기천사인 예꼬와 똑같은 개 짖는 소리 같은 기침소리에 화들짝 놀란 예랑이 고개를 돌린다. 아까 그 여자 아이다.


‘도대체 저 아이의 순번은 언제인 걸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하! 정말 답도 없다…‘


예랑 자신도 천사인데, 천사가 같은 천사조차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간들이 매일 아니 매 순간 하늘을 향해 신을 저주하며 숨 쉬듯 내뱉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으니.’의 그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슬프다. 천사는 왜 이렇게 슬픈 감정을 쉽게 느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또 슬퍼진다.


“컹컹. 으앙~~~”

예랑의 품에 안겨 있던 예꼬가 언제 눈을 떴는지 그 여자 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병원에 온 아기들은 한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이 따라 울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한 아기의 울음이, 그 옆에 다른 아기에게, 또 그 옆의 아기에게, 또 다른 아기에게 빠르게 전염되고, 안 그래도 어수선한 병원 안은 울음바다가 돼버린다. 울음인지 절규인지 난장판이 돼버린 이 병원을 위대한 세 신은 알기나 하는 걸까? 그들은 예랑 자신처럼 천사를 맡아 키워본 적이 없으니 알기는커녕, 관심도 없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 눈물바다를 그냥 이렇게 방치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어.. 차라리 내가...’

예꼬의 비명 같은 고통의 울음을 끌어안고 있는 예랑은 예꼬가 아픈 게 다 부모인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다.

자책하고,

미안하다고 슬퍼하고.

그렇게 슬퍼한다고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는데도, 또다시 자신을 자책한다. 아기가 아픈 게 다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자기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서. 부모인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띵-

<예꼬 천사님 1 진찰실로 입장해 주세요>     

울고 있는 예꼬를 달래던 예랑이 병원에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드디어 예꼬의 차례다.

새벽 오픈런의 피곤함과 오랜 시간 대기로 인한 지겨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다. 간신히 날개를 가지런히 등뒤로 숨긴 예랑이 경박하지 않은 빠른 걸음으로 진찰실로 들어간다.


<아기 천사가 아픈 거죠? 그쪽에 아기를 안고 앉아주세요>

막 진찰실 안으로 들어선 예랑을 향해 그 인기 의사 천사가 탁한 목소리로 말한다. 예랑이 그의 말을 따라 예꼬를 품에 안고 앉는다. 왜인지 의사 천사의 은빛 안경이 눈에 거슬린다. 삼신의 은빛 단발을 떠올리게 하는 은빛이다. 왜 의사 천사들은 하나같이 삼신 같은 은빛 머리에 은빛 안경을 즐겨 쓰는지 이해가 안 된다.


‘삼신이 자기랑 비슷하게 코스프레라도 하라고 명령했나 쯧.’

의사 천사가 예꼬에게 손을 댄다. 인간 아기의 형체를 유지하던 예꼬의 모습이 순식간에 본모습인 스무 개 남짓의 눈동자로 풀려버린다. 예랑은 아무런 안내도 없이 예꼬에게 손을 대고, 본모습으로 변하게 만든 의사 천사의 무례한 손길이 거슬린다.

“그 병이네요. 아시죠? 일단 빛으로 된 약을 좀 처방해 드릴게요. 먹여보시고, 차도가 없으면 다시 오세요.”

너무 뻔한 답을 뻔뻔하게 내뱉는 은빛 안경의 의사 천사의 말에 예랑은 순간 분노가 치민다.


“그 약을 먹으면 낫는 건가요?”

하지만 의사 천사처럼 빛을 조절할 수 없는 흔한 천사 중 하나일 뿐인 예랑은 자신의 분노를 숨긴 채, 어쩌면 또다시 뻔한 답이 돌아올 질문을 묻는다.

그래도 인기 의사 천사로 유명하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치료법은 현재 딱히 없어요. 잘 아실 텐데요.”

은빛 안경 너머 의사 천사의 눈동자가 한심하다는 듯 예랑을 내려다본다. 그 악마 같은 천사의 눈빛에 예랑은 질 수 없다는 듯 강렬히 째려본다.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흠... 그냥 일단 이 약 써보고 증상이 멈추면 다행이고요, 안되면 조금 더 센 약 써 보는 거고요. 그렇게 계속 찾아보는 거죠 뭐. 다 그래요. 삼신님의 매뉴얼에 따라서 말이죠. 저희도 딱 치료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뭐 현재는 별 수 없네요. 흠흠. 자 그럼...”

이제 그만 귀찮게 하고 나가라는 식의 의사의 대답에 예랑은 당장이라도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터져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분노와 피곤함을 꾹 누르며 다시 한번 말을 걸어본다.


“그래도...”

원래 부모란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자신이 깔보이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도, 의사가 이제 그만 물어보고 나가라고 ‘흠흠’ 헛기침을 해대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렇게 해서 아기가 아프지만 않을 수 있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지푸라기를 옭아맬 수 있는. 그렇게 아기를 아프지 않게 하고 싶은 게 부모고, 당연히 예랑도 예꼬를 위해서라면 그런 것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방법 없습니다. 돌아가셔서 약 먹여보세요.”

인기가 있다던 은빛 의사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답한다. 그런 의사의 태도에 예랑의 마음속은 이미 지옥의 그것만큼이나 화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지만, 예랑은 꾹 참은 채 예꼬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진찰실을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그때, 예랑의 눈에 의사의 책상 구석에 버려진 듯 구겨져 있는 종이 한 장이 눈에 스친다.


<최첨단 의료장비 도입!! 인간계의 전문의학 최초도입!! 최고의 아이 전문의 출신!!

천국의 복잡한 절차와 대기는 더이상 그만!!

지옥의 근거없는 의료 지식도 그만!!

신속, 혁신적인 의료 서비스로 천국과 지옥의 모든 불치병을 고칩니다.

-별빛당빌리병원의료진일동>


‘별빛당…빌리…병원..?’

예랑의 눈길이 구겨진 종이 마지막에 적혀있는 글자에 멈춘다.


"혹시... 저건 뭔가요?"

예랑이 은빛 의사를 향해 묻는다.


"네? 어떤 거요?"

의사 천사는 귀찮다는 듯 대꾸한다.


"거기 책상 위에 구겨진 종이.. 아이 전문의.. 불치병..별빛당 빌리 병원.."

예랑이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듯 중얼거린다.


"이거요? 이거 쓰레긴데요.. 요즘엔 이런 허황된 말로 쓸데없는 광고나 해대는 곳이 있더군요. 천국과 지옥의 모든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니. 누가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에 현혹되기나 한다고. 한심하죠 참. 자, 그럼 대기 환자가 많으니 그만... 흠흠!"

의사 천사가 싸늘한 목소리로 이제 나가라는 최후통첩을 날린다. 예랑은 눈앞에 의사가 쓰레기라고 표현한 그 광고 종이를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한 채 예꼬를 품에 안고 진찰실에서 쫓기듯 나온다.


문 밖을 나오고 시간을 보니 딱 5분이 지나있었다. 수천수만 년을 사는 천사들에겐 먼지 같은 5분의 시간이건만. 도대체 그 5분을 위해 새벽부터 몇 시간을 초조해하며 기다린 건지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 5분의 시간 덕에 약을 처방받았고, 이 약이면 그래도 예꼬가 조금은 나아지겠지, 고통을 조금은 줄여줄 수 있을 거란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그렇게 묘한 감정이 뒤섞인 채 예랑은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 구석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랑의 눈에 아까 그렇게나 엄마를 찾으며 울던 여자 아기 천사가 자신이 방금 막 나온 1 진찰실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아... 내 다음 순번이었구나... 언제 진찰받나 걱정했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긴 시간 대기하던 자신도 진찰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앞에 천사들이 왜 이렇게 진찰실에서 안 나오는지 짜증이 났었는데, 막상 자신도 진찰실에 들어가 의사를 마주하고 보니 아기 걱정에 이것저것 계속 물어대서 저 여자 아이 천사가 늦게 진찰을 보게 된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든다.

그러면서도 왜 이런 것까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천사는 도대체 어디까지 천사여야 하는 건지, 당장이라도 위대한 세 신에게 따져 묻고 싶다.


<일주일치 약이에요. 하루 세 번 꼭 먹여주시고, 상태 호전 없으면 다시 오세요>


은빛 안경의 의사 천사가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한 다른 천사로부터 약을 손에 건네 든 예랑은 터덜터덜 병원 밖으로 걸어 나온다.


‘결국 이 약 받으려고... 뭐? 치료법이 없으니 이 약 먹여보고, 안 맞으면 다른 약 또 먹여보고, 다 그런 거라고?’

하얀 약 봉투를 구겨 든 예랑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도대체가 이 세상 누가 아기 천사들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

도대체 누구에게,

어디에,어떻게 묻고 따져야

이 천국에 아기 천사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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