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눈발이 몰아치고 있는 슬픔나무의 정원 입구 어귀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는 작은 오두막이 보인다. 지붕 위 네모 굴뚝 위로 하얀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오두막 지붕은 물론, 주변에 언제부터 내렸는지 모를 눈이 두텁게 쌓여있다.
끼익-
오두막 안 지친 기색이 역력한 예랑이 작은 창을 살짝 열어 바깥공기가 실내로 들어오게 한다. 인간계라면 눈이 오는 날씨임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을 것이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와 바깥공기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눈이 내리고 있는데, 인간계의 그것과는 달리 차갑지 않다. 정말 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창을 연 예랑이 오두막 한편에 있는 벽난로에 투명한 나무토막 하나를 던져 불을 키운다. 천사이기에 추위를 느끼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오두막을 만들 때 벽난로를 굳이 만들었다. 혼자인 공간에, 벽난로 안 탁탁 타오르는 소리마저 없으면 언젠가 자신의 고독함에 스스로가 잡아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내야 하므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천사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늘 이게 문제란 생각이 든다.
천사는, 천사니까.
천사라서. 그래, 그 망할 천사라서 당연시 여겨지는 것이 너무 많다. 너무 싫게도.
예랑이 벽난로 불을 당겨 그 옆에 놓여있던 작은 주전자를 뎊히고, 주전자에서 우유빛깔의 빛나는 액체를 작은 찻잔에 따른다. 찻잔에서 모락모락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그 수증기의 온기에 기대어 한 모금 들이켠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습관처럼 그렇게 한 모금 두 모금 삼킬 뿐. 혼자의 고독을 꾹꾹 눌러 담는 심정으로.
마시던 찻잔을 공중에 띄운다. 인간계와 달리 밑으로 떨어지지도 쏟아지지도 않는다. 어릴 적엔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별로 기쁘지 않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 아닐까.
할 수 있는 건 많아졌지만, 그게 꼭 달갑지만은 않다.
멍하니 흩어지던 수증기를 보던 예랑은 문득 잊었던 게 생각난 듯,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선에 오두막 벽난로에서 좀 떨어진 옆 작은 침대에 잠들어있는 예꼬가 들어온다.
그래도 오늘 아침 병원에서 어렵게 받아온 약이 효과가 좀 있긴 한 건지, 기침이 좀 잦아들었고 잠든 모습이 제법 편안해 보인다. 예랑은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는 듯 예꼬에게 다가서 이마를 손으로 짚어본다. 다행히 열이 많이 떨어졌다. 비록 아까 그 의사가 영 못 믿음직스러웠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예꼬의 이불을 얼굴 아래까지 올려 덮어준 뒤 살짝 열어둔 창가로 다가선다. 벽난로 앞 아까 그 자리에 무심히 떠있는 찻잔을 손가락을 튕겨 끌어당겨 입가에 가져다 댄다. 여전히 식지 않은 온기가 눈앞에 피어오른다. 눈앞에 있던 수증기가 흩어지니 창밖으로 내리는 눈이 보인다.
“이 눈은 언제나 그칠는지... 지겨워...”
예랑이 나지막이 속삭인다. 예랑의 눈이 한번, 두 번 깜빡인다. 예랑의 눈동자에 오두막 오솔길 너머로 펼쳐진 정원 안의 슬픔 나무가 들어온다. 금방이라도 가지가 부러질 것처럼 두터운 눈이 나무 위에 잔뜩 쌓여있다.
어릴 적 예랑의 아빠가 공들여 돌봐 셀 수 없이 많았던 나무들이 있었던 숲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줄어버린 나무들만 정원에 남았다.
그때는 슬픔 나무의 숲으로 불렸던 이곳도, 슬픔 나무의 정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물론 예랑은 ‘인도자’로서 여전히 이곳에 데려온 인간의 영혼을 인도하며 나무들로 안내하긴 하지만, 그 영혼은 물론 이곳 천국 누구도 이곳이 더 이상 이곳을 숲으로 보지 않는다. 숲이라고 하기엔 3천 년 전 그 일로 나무가 많이 타버려 사라졌다. 그때 그 사건 이후, ’지극히 천사답게 ‘ 예랑이 나름 열심히 돌봤지만, 소멸한 찬사의 빛에 타 들어가 죽기 시작한 나무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당시 혼자 남은 어린 예랑은 다 타버린 슬픔 나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슬픔 나무의 숲에서 그날 벌어졌던 아빠와 염라, 삼신의 공방의 후유증은 컸다. 보고를 위해 떠났던 삼신은 결국 숲에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숲은 모른다는 듯, 뉴스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잘만 나오면서 유독 이곳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삼신에 예랑은 딱히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은빛 단발 그 낯짝을 본다고 예랑 자신에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에 염라는 그래도 가끔 이 숲에 들러 자신을 돌봐줬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이 숲이 천국에서 가장 멀고, 지옥과 가장 가까운, 인간계의 땅 밑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천국의 저 깊은 곳에 있는 삼신보다, 지옥의 염라가 이 숲을, 자신을 더 돌봐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염라는 자신의 등 뒤에 선명하게 남아버린 지옥불의 상처를 지속적으로 치료해 주었다. 상처는 깊게 남았지만, 흔적은 옅게 흐려졌다.
그때의 어린 예랑은 이곳에 그렇게 홀로 남았다.
다 타버린 숲,
그치지 않는 눈.
계속해서 타들어가는 나무들,
분명 천국임에도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잿빛 하늘,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아침에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믿기 싫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형제라 불렀던 주랑까지,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숲에 덩그러니 예랑은 혼자가 되었다.
지옥의 악마였다면 거기서 좌절하고, 슬퍼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분노하고. 그렇게 될 대로 되라며 자책만 하고 망가져갔겠지만, 천사인 예랑은 달랐다. 달라야 했다.
눈물을 멈췄고, 슬픔도 잠시였다.
원망은 숨겼고, 저주는 어울리지 않았다.
천사는 응당 그런 것이었으므로.
천사란 지옥 속에서도 천국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 배웠으므로.
아빠도, 엄마도 분명 그리 했을 것이므로.
그렇게 예랑은 타들어가는 나무들의 불꽃을 잠재우고, 아직 살아있는 나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심었다. 아빠도 엄마도 사라진 현실에서 슬픔 나무의 숲을 지켜야 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소명이라 생각했다. 그거라도 부여잡아야 했다. 홀로 남은 어린 예랑은 뭐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왜인지 지옥의 악마처럼 마음속에서 불길한 빨간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불편했지만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악마인 주랑과 함께 지내온 세월 때문이겠거니 하고 말았다.
그래야지만 모든 상실을 잠시라도 잊고, 존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매일, 매 순간, 천년의 세월이 넘도록 슬픔 나무의 숲을 어렸을 적 봤던 푸른 숲으로 살려 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렇게는 되지 못했다. 아빠, 엄마가 열심히 임무를 수행할 때, 숲 어귀에서 눈으로 오리나 만들며 뒹굴거렸던 어린 예랑은 슬픔 나무의 새싹을 새롭게 피어내는 법을 몰랐다.
알려줄 천사도 없었다.
다 타버린 작은 그곳엔 예랑뿐이었으므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 심은 나무들은 그래도 잘 자랐다. 물론 아빠의 숲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작은 정원으로 남아버렸지만.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되자 예랑은 아빠, 엄마, 주랑과 웃고 지내며 같이 살았던 숲의 입구에 있던 집을 빛의 가루로 부숴버렸다. 물론, 옮긴 나무들로부터 거리가 좀 멀어 불편하다는 아주 표면적인 이유를 댔지만, 홀로 남은 그 순간부터 그 집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등 뒤 자신의 상처가 터져 찢기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밖에서 안으로 찢는 느낌이 아니라, 자신의 몸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길게 찢겨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함께일 때는 늘 행복뿐인 곳이었지만, 혼자 남은 그 곳은 예랑에겐 지옥으로 남아버렸다.
함께였던 곳에 혼자 남는다는 건, 끔찍한 일인 것임을 예랑은 어렸던 그때 배웠다.
예랑이 자신의 거대해진 날개를 활짝 펴 한번 휘두르니 집이 순식간에 빛의 가루가 되어 눈앞에 흩날렸다. 행복했던 빛의 가루는 왜인지 여전히 그치지 않는 잿빛 눈꽃들에 섞여 다 타버린 숲 위로 흩날렸다.
그 이후로 이제는 아빠만큼 성체가 된 예랑은 끝없이 내리는 눈을 그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왜인지 멈추지 않았다. 힘을 줘서 몇 번을 시도해도 깃털같은 눈꽃들이 빗방울로 주륵주륵 바뀔 뿐,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 매일같이 눈을 멈추기 위해 시도했지만 예랑은 언젠가부터 눈을 그치려는 시도를 멈췄다. 그래도 비보다는 눈이 낫다 생각했다.
주룩주룩 변해버린 빗방울은 예랑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 같았고, 그럴 때면 마음 속 그 빨간 불길이 더 커져 자신을 집어 삼키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냥 두었다.
가끔 놀러오는 염라에게 눈을 멈춰달라 부탁해봤지만 실패했다. 대신 이 곳을 지옥으로 바꿔주냐 웃으며 농담하기에 그쯤하라고 했다. 어쨌든 자신이 이 정원의 관리자였고, 천국가 가장 멀긴 해도 어쨌든 이 곳은 천국이었으니까.
아 물론, 언젠가 딱 한번 삼신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눈을 그쳐달라고 넌지시 말해봤으나 삼신도 왜인지 눈을 멈추진 못했다. 그저 특유의 씁쓸한 미소로 알아보겠노라 말만 남겼을 뿐.
그뿐이었다. 삼신은 늘 그런 식이었다.
머물 곳이 필요해진 예랑은 빛의 가루로 날려버린 집을 대신해 옮긴 나무들이 심겨진 정원 근처에 지금의 작은 오두막을 지었다. 어렵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천국답게 빛이 흘러넘치던 때였으니까.
아빠, 엄마, 주랑, 인간과 달리 망각이 없는 천사이기에 그들의 존재를 생각만 하면 단번에 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잠자리에서 잘자라며 자신의 등뒤 날개를 토닥여주던 아빠의 손길과 인간계의 이야기를 신비로운 동화책처럼 들려주던 엄마의 숨결,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침대에 누워 그 모든 걸 같이 느꼈던 주랑의 미세한 떨림까지.
어쩌면 인간이 행복한 건 망각이라는 잊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처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선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천사에게 인간의 망각은 너무나 부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천사에게 인간의 그 능력은 허락되지 않았다.
한참 생각에 잠겨 창밖 눈을 바라보던 예랑이 찻잔을 입에서 떼고, 옛 생각을 털어내려는 듯 손을 뻗어 탁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창을 닫는다. 왜인지 오늘따라 창밖 흩날리는 눈꽃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딸랑-
오두막 처마 밑에 걸려있는 풍경소리가 울려퍼진다.
“벌써 때가 되었나...”
예랑이 걱정스런 눈길로 예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린다. 오늘따라 풍경소리가 처연하게 들린다. 물론 이 슬픔 나무의 정원에 바람같은 게 있을리 없다. 그저 오늘 처리해야할 임무를 수행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줄 뿐.
“예꼬는 어쩌지… 이대로 두고 가긴 좀 그런데.. 하!“
걱정어린 표정의 예랑이 작은 한숨을 내쉰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번째 손가락을 펼쳐 예꼬를 향해 자신의 빛을 펼쳐 예꼬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빛을 두른다. 예꼬의 몸이 침대 위로 둥실 떠오르는가 싶더니 예랑의 등 뒤 날개 사이로 날아와 붙는다. 마치, 어린 아기를 등에 업은 인간의 모습같다.
“방법이 없네, 방법이... 아직 어리긴 하지만 같이 가는 수밖에...”
오두막 집 문을 나선 예랑이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크게 펼쳐 날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