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유지장치의 삑삑 소리가 고요한 라디오 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는 창백한 병원의 입원실 안, 여섯의 인간이 침상에 누워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병원 건물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온 예랑이 날개를 접고 병실 한가운데에 멈춰 선다. 여섯의 침상 위 누워있는 환자들을 살피던 예랑에게 자신이 머무는 <슬픔 나무의 정원> 오두막 처마 끝에 달린 풍경 소리의 그것과 같은 처연한 음으로 시작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삼풍이 무너진 날 하늘도 슬피 울었지,
미군 장갑차에 깔린 효순이와 미선이
억울하고 분해서 가슴에도 못 묻었지,
진실을 제발 알려달라 또 묻고 물었지만
...
세월호가 가라앉네 눈앞에서 처참히
꺼내 달라 외쳤지만 사라지는 뱃머리,
끊어진 성수대교 저 아래로 여전히 강물은 흐르고
대구 중앙로역의 안으로 통곡의 벽이 세워져도
...
늘 철저히 묵살 돼버린 진상 규명의 목소린
이 시대의 자화상 가슴에 핀 슬픔 덩어리
고통과 행복 다 모두 인간이 하는 짓들
왜 듣지 못할까 이내 가슴을 두드리는
시름시름 병들어 끙끙 앓는 눈물의 신음
...
우리는 죽어간 자들을 세기 위해서 숫자를 배웠나,
사람 목숨 돈 되니까 자본주의를 세웠나>
왜인지 귀에 꽂히는 노랫말이 거슬린 예랑이 왼쪽 두 번째 손가락을 살짝 들어 여섯 환자의 보호자 중 하나를 가리킨다. 그러자 그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꺼버린다.
“쉽군. 인간계 라디오쯤이야... 천국 라디오는 왜 못 끄게 해 놓은 건지...”
음악 소리가 잦아들자 병실엔 다시 생명유지장치의 삑삑 소리만이 고요히 울린다. 예랑이 등뒤에 붙어있는 예꼬를 살핀다. 다행히 약기운 때문인지 새근새근 잠들어있다.
“자... 어디 보자... 이 인간인가...”
예랑이 침상 위 누워있는 중년 여성의 앞에 선다.
사고를 당한 건지 머리를 감싼 새하얀 붕대에 핏물이 가득 배어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터운 깁스를 한 다리를 공중으로 묶어 고정시켜 두었다. 그녀의 몸에는 삑삑 대는 의료기계와 연결된 라인들이 잔뜩 붙어있다.
예랑이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눈꺼풀 너머 눈동자에 자신의 숨결을 한번 불어넣는다. 그리고는 날개를 살짝 펼쳐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띄워 얼굴을 마주한다. 예랑의 머리 위 천사의 고리가 한번 강하게 빛을 뿜더니, 인간의 형상이었던 예랑의 모습이 순식간에 본래의 수십 개의 눈동자의 모습으로 바뀐다. 가운데 커다란 눈동자가 깜빡이고, 그 눈동자의 위, 아래, 좌, 우로 작은 눈동자 수십 개가 띠의 형태로 가운데 있는 눈동자를 둘러싼 형태이다. 가운데 거대한 눈동자를 둘러싼 작은 눈동자가 띠의 형태 그대로 세차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작은 바람이 일고, 공기가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가운데 눈동자 위 떠있던 천사의 고리가 세차게 빛을 뿜어내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두려워말라.”
예랑의 가운데 눈동자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3천 년 전 그때부터 셀 수 없이 많이 했던 다섯 글자임에도 예랑은 이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이 인간이어도 당연히 이런 수십 개의 눈동자를 보면 무서울 것 같고 누가 과연 천사라고 생각할까 싶다. 오히려 지옥의 징그러운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태초신>은 왜 천사에게는 이런 기괴한 눈동자의 모습을 주고, 악마에게는 인간이 한눈에 현혹될만한 아름다움을 준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예랑이 본 악마는 딱 하나뿐이긴 했지만.
어린 시절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에도 악마는 정말 모두를 현혹시킬 만큼 아름다운 본모습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염라도 지옥에서 왔는데, 본모습을 본 적이 없네. 나중에 한번 보여달라고 해볼까...’
예랑의 거대한 눈동자가 크게 세 번 꿈뻑인다. 그러자 세차게 돌아가던 주변 수십 개의 작은 눈동자들이 돌연 멈춘다. 예랑이 떠있는 공중 아래 의식 없이 누워있던 중년 여성의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된다. 그리고는 여느 인간들이 그러하듯이, 제일 먼저 여전히 누워있는 자신의 육체를 신기하다는 듯 내려다본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앞에서 두려워말라는 말을 반복하는 거대한 눈동자를 놀란 눈으로 올려다본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은 지옥에 갈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하겠지...’
여느 인간과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그녀를 보던 예랑이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랬다. 예랑의 본모습인 거대하고 수십 개로 둘러싸인 눈동자를 마주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천사인 자신을 악마취급 하며 지옥에 가기 싫다고,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빌어대기 일쑤였다.
왜 인간들은 처음 본 천사를 악마 취급할까.
아니, 애초에 <태초신>은 왜 인간들을 이렇게 이기적이고 무례하게 만들어놓은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들의 뻔한 레퍼토리를 지켜보던 예랑은 중년 여성의 영혼을 향해 다시 한번 천사의 고리를 깜빡인다. 그러자 누워있는 여성의 육체에서 작은 솜뭉치 하나가 따라 튕겨져 나온다. 삼신이 처음 인간을 인간계에 태어나게 할 때부터 그 인간의 안에 살며 삶과 죽음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수호령이다. 천사인 예랑은 그 수호령을 통해 그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원하는 만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에 별 관심이 없는 예랑은 그다지 수호령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눈동자를 보고 놀라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인간의 영혼을 달래는데 수호령만큼 효과가 있다는 걸 알고는 그저 뻔한 의식처럼 끄집어낼 뿐이었다.
백일이 되기 전 갓난아기였을 때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수호령과 잘만 놀았으면서도 인간은 삶을 사는 동안 수호령의 존재를 잊고 산다. 하지만 수호령은 그 인간과 생사를 같이 하며 살아왔기에 그렇게 평생을 같이 한 존재이니 처음 본 악마 같은 눈동자를 굴려대는 천사보다는 익숙할 것이었다.
‘그래도 천사의 빛을 띠는 걸 보니, 악한 삶은 아니었나 보군.’
중년 여성의 새하얀 수호령을 가만히 응시하던 예랑이 눈길을 걷어 그녀의 영혼 앞에 자신의 거대한 눈동자를 고정한다.
'응? 근데 뭐지 이 영혼은? 분명 지옥 가기 싫다거나 살려달라고 빽빽 소리를 질러대야 할 것인데...?'
예랑은 자신과 마주한 영혼이 여느 인간과 달리 아무런 말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여전히 예랑의 천사의 고리가 빛을 내고 있다. 그 사이에 그녀의 수호령이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며 여성의 영혼 주변을 떠다니고 있다.
“드디어... 제가 죽은 건가요...?”
여성의 영혼이 예랑의 눈동자를 향해 지친 목소리로 묻는다.
‘드디어라고? 꼭 죽고 싶었던 사람처럼 말하는군. 뭐, 사연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 얼른 돌아가야겠어. 이상한 영혼과 엮여서 좋을 건 없으니.’
평소 여느 인간과 다른 반응에 조금 의아했지만, 예랑은 그저 평소처럼 영혼의 물음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가져가고 싶은 게 있느냐?”
예랑은 임무 수행의 절차를 따라 마지막으로 영혼을 향해 묻는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 질문에 '돈'을 말한다. 그럼 천사는 원하는 만큼 챙기라고 말하고 천국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인간은 천국으로 돈을 가져간다. 당연히 그곳으로 가져간 그따위 인간의 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지옥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주황색... 교복 명찰...”
중년 여성의 영혼이 힘없는 목소리로 예랑에게 말한다.
‘명찰이라고? 흐음... 학생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 교복이라...’
여전히 이상한 답을 내놓는 영혼에 의아해진 예랑이 수호령을 향해 눈짓한다. 수호령은 그녀가 말한 ‘명찰’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잠시 모습을 감추더니 주황색 그것을 가져와 그녀의 손에 쥐어준다. 물론 실체가 있는 게 아닌 천국의 빛으로 형상만 보이는 명찰이다. 그것을 손에 건네받은 중년 여성의 영혼이 왜인지 부르르 떨린다.
‘윽. 저러다 죽기 싫다고 소리치며 울어대겠지. 인간들은 의미 있는 물건만 쥐어주면 왜들 그리 울어대는지. 빨리 이동해야겠어. 귀찮아지기 전에.’
예랑의 거대한 눈동자 위 천사의 고리가 처음 그때처럼 하얀빛을 강렬하게 뿜는다. 빛이 잦아들자 예랑이 어느새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있다. 예랑이 등뒤에 붙어있는 예꼬를 확인하고는 중년 여성의 수호령을 향해 자신의 천사의 고리에서 작은 빛을 쏜다. 수호령에 닿은 예랑의 빛이 인간의 영혼으로 연결된다. 그 즉시 예랑의 몸이 새하얀 병원 바닥을 뚫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예랑의 천사의 고리와 연결된 수호령과 인간의 영혼이 따라 당겨진다.
“살고 싶지 않아요... 드디어 죽는 건가요...”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리는 인간 영혼의 소리가 빛의 속도로 아래로 끊임없이 내려가는 예랑의 귓가에 닿는다.
그녀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불편해진 예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빛의 속도를 높인다. 빛으로 엮인 새하얀 띠가 예랑과 함께 쏜살같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렇게 빛의 띠가 바닥으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예랑의 손길에 움직여 라디오를 껐던 한 남성이 다시 라디오를 켠다. 아직 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인간에게 예랑의 천사의 빛이 보일리 없었음에도 그 남성은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양, 예랑의 빛이 사라진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마치 무언가를 다 알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는 죽어간 자들을 세기 위해서 숫자를 배웠나.
사람 목숨 돈 되니까 자본주의를 세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