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듣는 귀 많으니까 입 닫고 듣기만 해. 여전히 고결한 척 오지네 이호랑? 그래도 이지랄 부탁이라 이 몸이 친히 와서 무려 말까지 걸어주는데 이딴 식으로 해? 여전히 구질구질하다. 너도 참. 니 언니 쿨한 거 봐라. 그때 그런 일 있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나한테 부탁하잖아. 이런 게 어른들의 비즈니스야 구질아.”
’재수없게... 이지랑은 또 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학교를 나서는 호랑의 귓가에 C의 목소리가 잔상처럼 남아있다. C가 이지랑 운운한 게 마음에 걸려서일지, 아니면 지워지지 못한 첫사랑의 미묘한 잔상 때문인지 헷갈렸다. 호랑의 발걸음이 집이 아닌, 순백의 벽으로 둘러싸여 빛을 번쩍이고 있는 창문들이 가득한 건물 앞에 멈춘다.
호랑은 병원이 끔찍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어떤 것보다 하얘 보이지만, 그것은 환자들의 찐득한 핏빛을 감추기 위한 것이요, 저렇게 번쩍이는 창들은 사실 수많은 생명들이 이 건물에서 꺼져갔다는 것을 반추한다는 섬뜩한 느낌만 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이곳에 없겠지만, 그들이 한평생 열심히 모았던 썩은 내 나는 돈은 잘난 이 건물을 더 높게, 더 번쩍이게, 더 희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그것이 싫었다.
’‘맞아.. 그게 싫어. 그런데 더 최악인 건...’
호랑의 아빠가 그 끔찍한 곳 구석 한 곳에 누워있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의식을 잃은 채.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