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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May 26. 2022

Ep18. 내가 널 왜 안 자르는 줄 알아?

끝판왕 변 회장의 등판



" 팀장, 내가    자르는  알아?"


이런 막말은 익숙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의 설 팀장이 앉아있다. 며칠 전 회의실에서 주 과장과 마주 앉았을 때와는 180도 다른 표정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늘 그랬듯 70이 넘은 나이에도 얼굴에 알 수 없는 상기된 홍조를 띤 변 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잘 알 거야. 아니 넌 잘 알아야지. 근데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주 과장 승진?"


"예 회장님.. 아시다시피 저희 팀 직원이 계속해서 퇴사하고 있고, 희망퇴직도 많은 상황에서 열심히 하는 직원은 확실히 보상해준다는 어필을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말은 좋네. 회사는 인건비 좀 줄여보려고 직원 정리 들어가고 있는데 너네 팀은 승진시키자고? 서 부장이랑은 아예 얘기를 안 해? 회사 상황 몰라? 승진? 그럴 시간에 이 전염병 언제 끝날지, 그때까지 어떻게 수익을 내고 비용을 줄일지나 고민해 헛소리 말고."


"회장님.. 요즘 사내 분위기가.."


"그래 그 분위기가.. 당연히 안 좋겠지. 이 업계 다 무너지고 있는데 좋을 리가 있겠나. 근데 내 분위기는 파악 안하나봐? 후.. 그 분위기 좋게 만들 궁리나 하라고. 그러라고 니 월급 주는 거 아냐? 아침부터 기분 망치지 말고, 나가세요 그만."


"... 네.."


"아, 나가면서 함 전무, 서 부장 들어오라 하고"



'창립멤버라고 하나 남은 게 저 모양이니..'

국적 항공사에서 잘 나가던 변 회장이 유럽 거래처들을 믿고 젊은 나이에 이 회사를 차린 지도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 설립할 때 변 회장과 호기롭게 함께 나와 뜻을 같이 한 동료들은 다 떠났고 이제 하나 남은 게 저 설 팀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모임에 나가면 사람들이 이따금씩 물어오는 게 대체 저 설 팀장을 왜 곁에 두고 있냐는 것이었다.


' 안자르냐고?'

20년 넘게 직원들을 뽑고 자르고 나가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남은 건 상처뿐이란 생각만 남았다. 능력 있는 놈은 아무리 대우해줘도 능력이 좋으니 더 좋은 회사로 가고, 능력 없는 놈들은 다른 좋은 회사와 끝없이 비교하며 회사에 불만만 쏟아낸다. 설 팀장을 아직 쓰고 있는 이유는 그래도 저 놈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하려야 못하겠지.. 저 나이쯤 되면, 저 정도 직책을 맡게 되면 그리고 저렇게.. 능력이 없으면 다른 회사로 가려야 갈 수가 없다. 갈 의지도 없고, 받아줄 회사도 당연히 없지. 아무리 심하게 대해도 저 놈은 그만둘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핏덩이 같은 아이와 가족들 생각에 무작정 나간다 할 수도 없겠지.. 그렇게 결국 이곳에 남을 수밖에.


이런 걸 이용하는 내가 나쁘다 생각하고 싶진 않다. 나는 어쨌든 월급을 따박따박 주고 있다. 그것도 지 능력보다 훨씬 더 많게. 그리고 언제든 필요가 없어지면? 그땐 그냥 어떤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그만 나오라 하면 그만이다.

그런 역할로라도 붙어있겠다고 하는 걸 쟤도 알고, 나도 안다. 서로 말하지 않을 뿐.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거다. 회사 초창기 나는 궁금했다. 어느 책에서 물었듯,

과연 직원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이 회사에 온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다음번 월급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직원들의 꿈도 물어보고, 같이 밤새며 해외 거래처와 협업해서 대형 사업도 따내고, 그렇게 사장으로서 없는 형편에도 최대한 직원들 입장에서 배려하며 잘해주려고 노력했음에도.. 결국 돌아오는 건.. "이 회사는 본인들과 맞지 않는다"는 한없이 상처가 되는 말과 덩그러니 남겨진 책상 위 사표들 뿐. 그렇게 능력 있어 떠나거나 능력 없어 남거나. 그런 세월이 계속되니 굳은 신념 중 하나가 된 것은 안타깝게도 위 질문의 후자였다.


그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월급날만 기다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같이 일하고 싶었고, 월급날이 오는 게 무서웠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회사가 개판이어도 직원들은 다음번 월급만 쥐어주면 또 한 달을 살아간다. 물론 개 중엔 그게 싫다고 떠나는 직원도 있었지만,

괜찮다.

그저 또 뽑으면 그만인 것을. 어차피 인건비는 지출해야 하고,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A직원이 B직원으로 바뀔 뿐. 책정된 인건비가 부족하다면? A, B직원 다 정리하면 그만이다. 그들 한 둘 빠져도 회사는 돌아가고, 나중에 필요해지면 또 그 월급만 보고 달려드는 다른 A와 B를 또 뽑으면 그만이다.

월급에 찍히는  숫자 앞에   A, B들은 넘쳐난다.

변 회장은 이런 차가운 자본주의 논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해하도록 돼버렸달까?



"회장님, 함 전무, 서 부장 왔습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있던 변 회장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들여보내"

함 전무와 서 부장이 샤르륵 문을 열고 들어와 먼지보다 가벼운 몸짓으로 회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앉으세요. 보고할 거 먼저 하시고"


역시 좋은 소식은 없었다. 사업을 운영해온 그동안 IMF를 맞았을 때도 나름 선방해서 잘 버텼고, 화산이 폭발해 화물 운송의 불안정이 폭발했을 때도 순발력 있는 대처로 오히려 사업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었다. 전쟁이 터져도, 강대국 간 무역 경쟁 틈바구니에서도 3자, 다자 무역의 기회를 포착해서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운영해왔다고 자부해 온 변 회장이었지만, 이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전염병에 대해선 어떨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 업계 대부분은 이 위기도 곧 끝난다며 지금 힘들어도 사업 후 손해만큼, 아니 손해보다 더 큰 이익을 끌어당길 테니 지금만 잘 버티면 된다 믿는 눈치다.

‘글쎄.. 과연 그렇게 금방 끝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운영총괄 서 부장은 지금의 회사 자금으로 적어도 1-2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안심시키려 하는것 같지만.. 회사의 주인인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또 이 사태는 단기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비용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직원이 불쌍하다..’는 감정만 지우면 운영상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인 직원 감축을 더 크게 하면 재정 여력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만 남는다.


“그래 오늘 보고는 여기까지 하고, 희망퇴직자들 최대한 빨리 정리하는 쪽으로 밀고 나가세요.

아, 그리고 설 팀장이 주 과장 승진 추천하던데 어떻게들 생각해요?”


“글쎄요.. 갑자기 승진이요? 참 나.. 임원회의 때 그런 말 없었는데.. 설 팀장은 무슨 생각인지 대체..”

함 전무가 고개를 저었다.


“주 과장이 퇴사한다고 하니까 잡으려고 하는 거 아닐까요 회장님? 그 팀 직원들 연달아 나가고 있어서..”

서 부장이 말을 이었다.


변 회장과 함 전무의 눈에 순간 당혹감이 당겨졌다.

“뭐?!! 사표? 주아인이?”

알 수 없는 배신감으로 물든 그들의 눈빛에 직격으로 얻어맞은 서 과장도 놀란 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설 팀장님이 보고 드린 게.. 아.. 하하.. 아니었나.. 요..?”

놀란 토끼 눈의 크기와는 정 반대의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잇는 서 부장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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