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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Jun 16. 2022

Ep25. 퇴사일이 정해지니 왕따가 되더라.

수동적 왕따가 된다는 건



며칠이 지났고, 아인은 여전히 출근중이었다.

그날 회장실에 덩그러니 사직서를 놓은 이후,

회사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분명 아인의 주변으로 무언가 변해있었다.


일단 변 회장은 아인과 마주치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 피하지 않는 한 그렇게까지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들려오는 소문들. 퇴사 예정자를 향해 남겨지는 가시 돋친 씁쓸한 뒷담들.

변 회장이 틈날 때마다 아인과의 예전 카톡메시지를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아인의 욕을 그렇게 한다고 한다. 뭐라더라.

배신자라나.

본인과 얘기할 때만 해도 회사를 위해 남을 것처럼 하더니 자기가 그렇게 배려해줬음에도 그날 사표로 뒤통수를 쳤다고. ‘주’ 씨 성을 가진 놈들은 다 그렇다나. 우습다.


같은 상황 안에 있었어도

서로 기억하는 것은 이렇게나 다르다.


뒷담 하는 변 회장 앞에서 아인의 동료라 불렸던 이들 대부분은

“회장님 말씀이 맞으십니다. 주 과장이 그렇게 살면 안 되죠”를 그렇게 남발하며,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어필하기 위한 무조건적인 충성만 쏟아낸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서 부장만이 아무 말없이 묵묵히 듣다가, 한 번씩 변 회장이 서 부장을 콕 집어 물어보면 아인을 옹호하다 한 마디씩 듣는다고.

아인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서 부장을 찾아가거나 하진 않았다. 퇴사예정자인 본인이 가까이할수록 서 부장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는 걸 아인은 잘 알고 있었다.

서 부장도 그런 아인을 이해한다는 듯 예전처럼 애써 살갑게 굴거나 하지 않았다.

진짜 동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한다.


아인은 사표를 놓고 온 그날 텅 빈 마음처럼, 그런 소문들이 들려와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저 본인 스스로 앞으로, 통상 관례적으로 그랬듯, 앞으로 2주 그러니까 그 14일만 출근하고 남은 연차를 다 쓰는 걸로 해서 더 이상 이곳에 나오지 않겠다고, 그때까지만 버티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본인이 맡은 업무를 회사에 피해가 남지 않도록 인계해서 남은 마지막 책임을 다 하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14일 후 그날까지만 나오겠습니다. 제 업무 인계는 사 대리한테 하면 되겠죠?"

이러다가는 아무한테도 인계도 못하고 떠나게 될 분위기였다. 물론 아인은 전혀 상관없었지만 본인이 그래도 아꼈던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날 이후 대놓고 아인을 피하는 설 팀장을 애써 붙잡고 아인이 말했다.


"팀장님, 저 못 받아요. 사람 무조건 먼저 뽑아주세요."

옆에서 듣던 사 대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질색한다. 팀장한테 눈치 보는 것 없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가당찮은 용기는 칭찬해줄 만하다. 그거뿐이라는 게 문제일 뿐.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은 어느 조직에나 꼭 하나둘씩 있는것 같다.

조직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본인이 그런 사람은 아닌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 알았어. 퇴사 날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

그놈의 나중에 나중에.  

참 끝까지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장의 뒷담 때문일까. 아니면 퇴사 예정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일까.

그래도 직장 동료라 불렸던 이들이 아인을 피하는 게 느껴진다.

수동적 왕따가 된다는  이런 건가.

사직서를 통보한 날부터 회사를 떠나는 그 14일 동안 퇴사 예정자는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수동적 왕따가 된다. 마치 그와 말이라도 섞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 "남는 자"들은 아인을 피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인도 그랬기 때문에.

아인이 존경했지만, 결국 회사를 떠났던 그때의 선배 퇴사 예정분들에게 아인도 그랬던 것 같다.

떠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가서 뭐라고 말이라도 걸고 싶었지만, 떠나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위로하는 것도 이상하고,

잘 떠나시는 거라고 응원하기는 더 이상한.

그래서 내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상황이 그 사람을 피할 수밖에 없게 만든달까?

그러다 퇴사 당일이 되면, 떠나는 엘리베이터 안에 선 퇴사자에게 많이 아쉽다는 표정만 잔뜩 보여주면.. 그뿐.


어쩌면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시작했던 관계에 

애정과 따뜻함 가득한 끝을 기대하는게  우스운거 아닐까, 아쉽지만.


"주 과장. 퇴사한다며?"


이제야 퇴사한 선배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인이 탕비실에 홀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입사 동기인 고 대리가 들어오며 말을 건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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