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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Jun 09. 2022

Ep23. 사표 내던 날, 회장실에 소화기를 내던졌다

야너두 할수있어


‘이걸로 다 된 걸까.

이대로 돌아서면 후회하지 않겠어?’

 

번뜩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다시 뒤돌아 회장실 문을 걷어찼다. 급발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이대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애써 페르소나 가면뒤집어쓰고  자리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은  업무를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그렇게 물러나면 설 팀장에게 사표를 처음 던지고 죄송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죄송하단 말이 나왔던 그날, 그 버스에서처럼 나 스스로의 자책감을 못 참을 것 같았다.


문을 발로 걷어찬 순간부터 이미 내 이성은 없었다. 응 눈 돈 거지.

첫 면접 때 신박하게 정신 나가보였던 변 회장의 표정만큼이나 그 순간의 내 표정도 거의 반 제정신 아닌 걸로 보였을 것이다.

'아-자랑스러워라. 얼마나 한방 먹여주고 싶었다고.'


아까는 꿈쩍도 하지 않고 굳은 자세로 의자에만 앉아있던 변 회장도 놀란 눈을 치켜뜨며 마침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뭐라뭐라 소리치듯 말을 시작한 것 같았으나

이미 이성의 마비 상태에 있는,  

언젠가부터 매일같이 꿈꿔왔던 이 장면,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온몸을 칭칭 휘감은 아드레날린이,  변 회장의 그딴 소음쯤 가볍게 무시하는 방어 스킬을 최대치까지 올려주었다.

그래, 원래 보통사람이 눈이 돌면 무서운 법이다.


일단.. 그동안 꿈꿨던 대로 뭐라도 하나 부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가능하면 와장창 소리가 나는 게 좋겠어.'

문 바로 옆 바닥에 소화기가 보였다.

건너편 유리창 건물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을 향해 소화기를 던진다.

분명 밝은 빛인데도 다른 빛과 달리 따뜻함 없이 늘 차가움만 담긴 저 빛이 싫었다.  


"깡그랑깡깡"  

나쁘지 않은 소리가 났지만, 깨지진 않았다.

요즘 빌딩의 유리는 참 단단하다는 생각이 그 짧은 찰나에 머릿속을 스쳐간다.

바닥에 나뒹구는 소화기가 보인다.

꽉 잡고 있을 걸.

다시 주으러 가는 건 좀 웃긴 거 같으니.. 음..


흘깃하는 눈동자를 따라 흘러가는 시야에 변 회장의 책상 위 명판이 보인다.

저 명판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린 직원들을 잘라냈을까.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명판을 검은색으로 만든 이유는 수많은 삶이 갈려나간 그들의 핏빛을 감추기 위함이 아닐까?

검은색은 웬만해선 어떤 색이 섞여도 검은색을 유지하려고 하므로.

이런 조금은 우스운 생각을 하며 그 혐오스러운 명판을 들어 넥타이가 하나 겹쳐 걸려있는 거울을 향해 내던진다.


"와장창왕창"

예쓰예쓰.! 이번에는 성공이다.  

거울이 박살 나는 소리가 마침내 나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소리처럼 찬란하게 들려온다.

거울의 파편이 밝은 별똥별처럼 흩어내린다. 흩어내리며 반사된 빛이 회의실 구석구석을 밝힌다. 그동안 회의실에서 차가운 빛만 느꼈는데, 저렇게 박살 나니 마침내 따뜻한 빛이 쏟아지는 기분이다.

신기한 게 이 모든 게 짧은 찰나에 벌어진 일인데, 영화를 천천히 돌리듯 한 장면 한 장면 참 임팩트 있게 머릿속에 각인되더라.


그리고 때마침 놀란 눈으로 회의실 안에 뛰어들어온  설 팀장과 문앞에 멈춰 선 서 부장의 얼굴이 보인다. 그나마도 달려와서 상황을 볼 수 있는 둘은 용감하기라도 하지. 그 뒤편 보이지 않는 듯, 들리지 않는 듯, 하지만 세상 궁금해하고 있을 게 뻔한 수많은 동료라 불렸던 사람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사람 하나 죽어나가야 그나마 움직일까? 인형 같은 사람들.


저렇게 수많은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함께 있지만, 결국 가장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여실히 혼자로 남는 공간.

그곳이 회사이고, 그곳이 사무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이미 이성은 마비되었다.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갈 때까지 가보자. 손을 올린다. 설 팀장의 뺨을 위에서 아래로. 45도 각도를 유지하며 힘껏 내려친다.

학교에서 폭력은 나쁜 것이라 배워왔지만, 사회에서 깨지며 배운 건 학교에서 배운 대부분은 사회에서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배운 대로만 살면 호구 취급당하기 딱 좋은 곳이 지금의 사회 아닌가?


그러나 저러나 이번에는 너무너무너무너무 속이 시원하다.  누누이 말하지만 보통사람이 눈이 돌면 더 무서운 법이다.

 

정신이 나간 듯 멍 때리고 있는 설 팀장의 코 앞을 코웃음 치며 지나  

이제 대미를, 큰 꼬리, 큰 마지막을 남길 때다.

중요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진중한 몸짓으로 재킷 오른쪽 안주머니에서 빨간 글씨로 적혀있는 세 글자의 봉투를 꺼낸다.

.

.

.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사직서를 가슴속에 품고 다니기 위해 정장 재킷을 입고 다닌다는 말을 한 사람이 기억났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방금 전 나에게 뺨따귀를 맞았다.


이쯤 되니 너무나 비현실적 상황이라 생각되는가?

꿈인가? 상상인가?

하지만 우린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우리네 실제 현실도

이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비현실적이란 것을.

 

사직서를 들고 변 회장 앞에 선다.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변 회장의 두 눈동자 앞에서 사직서를 갈기갈기 찢는다.

두 손을 모아 어린 시절 소중하게 모았던 반딧불이라도 날려 보낼 것처럼 정성을 담아 손에 담긴 한낱 종이 조각들을 변 회장의 얼굴에, 설 팀장의 면상을 향해 힘껏 날린다.

어두운 밤하늘 밝은 희망을 찾아 멀리멀리 날아가는 반딧불처럼,

언제나 너무 깨끗하고 밝아서 인위적인 냄새로 가득한 회장실 안, 이제는 내 자유를 찾아주겠다는 듯 사직서 조각들이 사방에 날아오른다.

나는 소리친다.


"니들끼리 다 해처 먹어라! 아주 좋은 날이네 그치?  

이 맛에 회사 다니고, 이 맛에 사표 던지고, 이 맛에 퇴사하는 거지.

니들은 앞으로도 그렇게 머리 조아리며 노예처럼 살아라. 난 더는 못해먹겠다. 이 거지 같은 것들아!"


회의실 안 그들을 향해 소리쳤지만, 그 소리를 가장 먼저 또렷이 들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 귀였던 것 같다.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냐고?

그럴 리가.

이 회사 입사 후 가장 큰 목소리였던 것 같고, 가장 속이 시원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놀라 멈춰있는 세 사람 사이를 차가운 썩은 미소를 흩뿌려주고 유유히 걸어 나온다.

회장실 문은 이미 고장 났는지 끼익 끼익 소리만 내며 간신히 매달려 있다.

'이딴 문 뒤에 그동안 잘도 숨어있었네.'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다.

회의실을 나오는데 저 멀리 오 차장이 소식을 들었는지 뭐라뭐라 소리치며 달려오고 있다.


"아니지 아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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